파울루 벤투 감독은 유럽 2연전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지난 17일(한국시간) 밤 오스트리아 마리아 엔처스도르프 BSFZ 아레나서 열린 카타르와 A매치 평가전서 2-1로 승리했다.
여러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2019 아시안컵 8강서 탈락 아픔을 안긴 카타르에 설욕했다. 역대 A매치 통산 500승을 거뒀고, 황희찬의 역대 A매치 최단 시간 득점(16초)도 터졌다.
어려운 유럽 원정길이었다. 부상 악재에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덮쳤다. 김민재(베이징 궈안), 김영권(감바 오사카), 박지수(광저우 헝다), 조현우, 홍철(이상 울산), 김진수(알 나스르), 이용(전북), 김문환(부산), 김승규(가시와 레이솔) 등 수비수들이 대거 이탈했다.
벤투 감독은 수비진의 판을 완전히 새로 짰다. 멕시코전엔 스리백을 실험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정우영(알 사드)과 원두재(울산)가 후방으로 내려와 권경원(상주)과 함께 뒷마당을 지켰다. 대표팀의 후방 빌드업을 담당하는 김민재와 김영권이 빠지자 문제점은 더욱 도드라졌다.
벤투호는 멕시코의 강도 높은 전방 압박에 쩔쩔맸다. 원두재와 권경원은 여러 차례 패스 미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한국이 선제골을 놓고도 내내 가슴을 졸였던 이유다. 전후반 위기 모두 비슷한 장면에서 나왔다. 구성윤의 선방쇼와 멕시코의 골대 불운이 없었다면, 2-3이 아닌 대패를 면치 못했을 내용이었다.
한국은 1-0으로 앞선 후반 22분 라울 히메네스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권경원의 클리어링 미스가 실점의 시발점이 됐다. 2분 뒤엔 원두재의 패스 미스로 우리엘 안투나에게 역전골까지 헌납했다. 두 센터백의 치명적 실수에도 변화는 없었다. 전문 센터백 정승현(울산)과 정태욱(대구)은 벤치만 달구다 경기를 끝냈다.
카타르전도 마찬가지였다. 스리백 실험에 실패한 벤투 감독은 포백으로 전환했다. 이번에도 권경원과 원두재에게 뒷마당을 맡겼다. 원두재의 경험 부족이 재현됐다. 멕시코전 후방 빌드업의 문제점을 또다시 노출했다. 몇 차례 패스의 세기 부족과 방향 선택 미스로 아찔한 장면을 만들었다. 박스 안 맨마킹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벤투 감독은 이날 6장의 교체 카드를 썼지만 센터백 2명만 안 바꿨다. 멕시코전에 이어 정승현과 정태욱이 벤치를 지켰다.
최근 벤투 감독은 패싱력이 좋은 원두재를 후방으로 내려 실험을 거듭했다. 지난달 올림픽 대표팀과 스페셜 매치부터 이달 A매치 2연전까지 계속 기회를 줬다. 원두재의 가능성도 분명히 봤지만, 한계도 명확했기에 변화가 필요했다. 대신할 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정승현과 정태욱은 K리그 내에서도 빌드업 능력이 준수한 센터백으로 꼽힌다. 두 차례 평가전서 단 1분도 뛰지 못한 건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은 항상 플랜 B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후방 빌드업이 뛰어난 김민재와 김영권이 없을 상황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대비할 수 있을까. 좋은 스파링 상대를 잃었다. 멕시코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1위의 강호다. 카타르(57위)는 지난해 아시안컵 우승국이다. 월드컵 본선급 상대를 만나고도 숙제의 답을 얻을 절호의 기회를 날렸다.
멕시코-카타르전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후방 빌드업이었다. ‘후방 빌드업’의 중요성을 내내 입에 달고 살았던 벤투 감독의 선택에 물음표를 뗄 수 없는 이유다./doly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