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 사태로 인한 강제휴식이 아니었다면 내년 시즌도 안승한(32)은 현역이었을까. 아쉽고 억울할 법도 했지만, 그는 은퇴라는 현실을 덤덤이 받아들이고, 프런트 및 지도자로서의 힘찬 새 출발을 다짐했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이달 초 안승한, 서예일, 김태근, 양찬열 등 4명과의 재계약 불가 소식을 전하면서 “안승한, 서예일은 프런트 및 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을 준비한다. 현재 이천 마무리캠프를 함께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올 시즌 초반만 해도 주전 포수 양의지의 백업으로 주목받았던 안승한이 32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것.
안승한은 OSEN과의 인터뷰에서 “구단에서 은퇴를 먼저 제안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선수생활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은퇴를 결심했다”라며 “나 또한 조금씩 은퇴를 생각하고는 있었다. 김기연이 너무 잘해줬고, 장승현도 계속 열심히 할 것이고, 어린 선수들도 있으니 현역 연장이 욕심처럼 느껴졌다. 물론 현역 의지도 컸는데 구단에서 프런트라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셔서 은퇴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KT에서 방출됐을 때 다른 팀에서 연락이 안 올 줄 알고 그 때부터 지도자 수업을 생각했는데 두산에서 정말 좋은 기회를 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마지막은 아쉽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좋은 일이 훨씬 많았다. 두산에 너무 감사하다”라고 구단을 향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은퇴 선언 후 주변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이)영하가 연락이 와서 어떻게 된 거냐고 하면서 그 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해줬다. 또 군대에 가있는 윤준호도 연락이 왔다. 무엇보다 올해 대리처방 때문에 함께 고생했던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했다”라고 답했다.
충암고-동아대를 나온 안승한은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T 위즈의 신생팀 특별지명을 통해 프로에 입성한 포수 유망주였다. 그는 기대와 달리 첫해부터 퓨처스리그에서 2루 송구 도중 어깨 상부 관절와순 손상인 슬랩 진단을 받았다. 이후 인고의 재활을 거쳐 이듬해 일본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지만, 어깨 통증이 재발하며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2017년 10월 소집해제된 안승한은 KT 이강철 감독 부임 첫해인 2019년 6월 1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감격의 1군 데뷔전을 가졌다. 하지만 그해 36경기 1할3푼6리 5타점으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2년 동안 2군을 전전하다가 KT가 통합우승을 차지한 2021시즌을 마치고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안승한은 2021년 12월 두산 입단테스트에 합격하며 현역을 연장했다. 은퇴 위기에서 벗어나 연봉 3700만 원에 정식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여름 1군 콜업 이후 공수에서 안정감을 뽐내며 두산 팬들에게 이름 석 자를 알렸다. 30경기라는 적은 기회 속에서 타율 3할3푼3리 8타점의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안승한은 두산 2년차인 지난해 22경기 출전에 그쳤다. 기록도 2할8리 1타점 1득점으로 저조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적이 전부는 아니었다. 2022년에도 그랬듯 팀 훈련과 더그아웃에서 목청껏 파이팅을 외치며 팀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했고, 수비에서 양의지, 장승현의 뒤를 받치는 제3의 포수로서 제 몫을 다했다. 안승한은 이에 힘입어 22.2%(1000만 원) 인상된 5500만 원에 2024시즌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안승한은 2월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양의지의 뒤를 받치는 제2의 포수 오디션 명단에 포함되며 장승현, 김기연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후 시범경기를 거쳐 3월 30일 1군에 올라오며 두산에서의 3번째 여정을 출발했지만, 불운하게도 4월 28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이 그의 은퇴경기가 됐다. 4경기 타율 2할(5타수 1안타)를 남기고 오재원 대리처방 사태에 억울하게 연루되며 이천에서 강제 휴식을 취했기 때문.
안승한은 “은퇴 결정이 쉽진 않았다. 은퇴를 조금씩 생각했다고 해도 올해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아쉽다. 경기는 못 뛰어도 나름 2군에서 개인운동을 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라며 “1년 동안 인생을 배운 거 같다. 2군에서 처음에는 너무 억울했지만 어쩌겠나. 법을 어긴 건 맞으니 그냥 받아들였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안승한은 다행히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에 이어 KBO의 사회봉사 80시간 제재를 받으며 KBO리그 복귀의 길이 열렸다. 내년 1월까지 사회봉사를 모두 마치면 2025시즌 다시 리그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현역의 꿈을 아쉽게 접은 그는 현재 포수 출신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데이터 분야를 새롭게 배우면서 제2의 야구인생을 준비 중이다.
안승한은 “일단 프런트로 제2의 커리어를 열게 됐다”라며 “요즘 배터리코치는 데이터가 엄청 중요하다. 데이터 공부부터 시작하면 나중에 코치를 할 때 이 분야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다. 구단도 내가 한 발짝 뒤에서 1군 야구를 보면 조금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나도 좋게 생각하고 있다. 성실히 훈련하고 벤치에서 열심히 파이팅 외친 걸 좋게 봐주신 거 같다 새로운 걸 배우게 돼서 너무 좋다”라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안승한은 1군 통산 92경기 타율 2할2푼(109타수 24안타) 14타점 1도루 10득점을 남기고 10년의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기억에 남는 순간과 아쉬운 점을 묻자 “2022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또 KT 시절 첫 안타를 친 경기(2019년 6월 15일 대구 삼성전), 두산 와서 첫 선발 경기(2022년 7월 28일 잠실 롯데전)도 기억이 난다. 다만 홈런을 못 치고 은퇴하는 건 아쉽다”라고 밝혔다.
10년 동안 응원을 보내준 KT, 두산 팬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안승한은 “KT, 두산 팬들 모두 야구장에서 보내주신 함성소리를 잊을 수 없다. 특히 두산에 와서 단상인터뷰, 첫 안타, 첫 타점 때 보내주신 함성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