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비인지스포츠’로 분류되던 럭비는 2024년 ‘인지스포츠’로 거듭날 수 있는 변환점을 맞이했다. 넷플릭스 예능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이하 최강럭비)’가 공개됨에 따라 이전보다 많은 관심이 한국 럭비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의 ‘최강럭비’는 지난 12월 10일 전 세계 동시 방영됐다. 넷플릭스가 럭비 소재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선 건 지난해 2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6개국 럭비 국가대항전을 다룬 ‘식스 네이션스’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최강럭비’ 방영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 윤계상 주연의 SBS 럭비 드라마 ‘트라이(Try)’ 제작 소식도 더해지면서 한국 럭비는 비인지스포츠에서 인지스포츠로 발돋움을 위한 기폭제로 삼아야 할 중대한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 럭비가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건 꾸준히 발전하며 대중에게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완전한 ‘비인지스포츠’였던 럭비는 지난 2020 도쿄올림픽에서 7인제 럭비 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본선에 진출해 감동의 첫 득점까지 일궈내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한국 럭비 대표팀은 조별리그와 이어진 순위결정전까지 모두 패하며 올림픽을 마감했지만 처음으로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보여준 투혼은 많은 이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도쿄올림픽에서의 투혼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 한국 럭비 대표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서 17년 만에 은메달 획득이라는 쾌거를 달성해 아시아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가시적인 성과로 한국 럭비는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 한국 럭비 사상 처음으로 지상파 중계된 항저우아시안게임 럭비 결승전은 시청률 4.4%(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해 이전보다 높아진 인지스포츠로서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와 동시에 럭비에 내재되어 있는 ‘노사이드’ 정신과 같은 정신적 가치도 재조명됐다. 특히 이런 정신적 가치가 주는 교육적인 면모를 주목하게 되면서 자사고, 국제학교 학생 중심으로 한 ‘고교 럭비 교육 프로그램’이 지금의 대한럭비협회 집행부 움직임 하에 2021년부터 시행 중이다. 해당 프로그램 참여 학교간 교류전인 ‘코리아 럭비 아이비리그’도 진행하는 등, 생활체육으로서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여러 긍정적인 요소가 작용해 한국 럭비가 지금처럼 인지스포츠화를 위한 기회를 얻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써온 많은 이의 노력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럭비를 대중에게 알리고 경쟁력을 갖추고자 최윤 대한럭비협회장을 비롯한 지금의 대한럭비협회 구성원들은 작은 부분부터 대외적인 부분까지 여러 방면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럭비라는 종목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좀 더 종목을 쉽게 이해하도록 관련 콘텐츠를 제작함과 동시에 홍보 채널을 다양화하면서 최대한 많은 이에게 노출시키고자 했다. 럭비 관련 웹툰, 애니메이션, 럭비송 등을 통해 쉽게 알기 어려운 럭비 규칙과 포메이션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자 했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통 플랫폼도 확대했다. ‘코리아 슈퍼럭비리그’로 새롭게 개편한 국내 럭비리그는 주말리그제 도입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중이 럭비 경기장을 찾을 수 있게 했고 동시에 대회 라이브 스트리밍(SOOP, 前 아프리카TV) 체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코리아 슈퍼럭비리그의 경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을 도입해 모든 팀이 외국인 선수를 적극 활용 가능한 환경을 만들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앞서 언급한 ‘코리아 럭비 아이비리그’ 등을 제외하고서도 학교체육으로서, 그리고 럭비 저변 확대를 위한 움직임은 다수 있었다. 럭비계 친선 골프대회인 ‘OK금융그룹배 럭비 고교동창 노사이드 채리티매치’ 개최를 통해 전국각지 럭비인이 한자리에 모여 ‘학교 럭비부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연례행사를 통해 현재까지 총 7개 학교 럭비부를 지원했고 2023년부터는 OK금융그룹과 대한럭비협회가 협력해 ‘OK! 중·고 럭비 장학금’을 추가로 조성해 현재까지 총 13곳의 중고 럭비부와 지도자를 지원했다.
최윤 회장을 비롯해 많은 이의 노력으로 한국 럭비는 저변을 조금씩 넓히고 내실을 다지고 있다. 여기에 ‘최강럭비’ 방영으로 대중화를 위한 발판도 마련된 가운데, 한국 럭비가 지금의 흐름을 놓지 않고 이어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럭비 최대 축제인 ‘2027 럭비월드컵’ 진출권이 달린 ‘2025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Asia Rugby Champioship)’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아직 럭비 종목 인지도가 낮아 주목을 받진 못하지만 럭비 월드컵은 단일 종목 이벤트 기준으로는 ‘월드컵(FIFA World Cup)’ 다음으로 많은 관중을 유치할 정도로 큰 스포츠 이벤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3 럭비 월드컵’을 보더라도 당시 파리에는 약 42만 5천명에 달하는 해외 방문객이 월드컵 현장을 방문했고, '2019 일본 럭비월드컵'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약 8억 5700만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고 조사됐다.
특히, 마지막 경기였던 스코틀랜드 전은 약 5480만 명이 시청했고, 일본 대표팀의 경기 5개 중 하나라도 실시간으로 본 사람은 약8731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거대한 이벤트인 럭비 월드컵 직행을 위해 아시아에 주어진 티켓은 한 장이다. ‘2025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Asia Rugby Championship)’에서 우승을 해야만 직행 티켓을 딸 수 있다. ‘최강럭비’ 방영으로 대중에게 럭비를 알릴 기회를 얻은 시점에서 럭비 월드컵 진출까지 성공한다면 한국 럭비는 ‘인지스포츠화’로 가는 불씨를 한층 더 강하게 불태울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한 대표팀의 국제 경재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16일, ‘2024 럭비 아프리카 컵’ 우승팀인 짐바브웨와 테스트매치를 통해 전력을 점검했을 뿐만 아니라 짐바브웨럭비협회와 ‘양국 럭비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까지 체결하며 장기적인 럭비 교류의 물꼬도 텄다. 짐바브웨와 테스트매치, MOU 체결 이전에도 이번 럭비협회 체제 하에서 7인제 럭비 세계 최강국인 피지 럭비 대표팀과 합동훈련을 진행하는 등,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다양한 움직임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로 럭비의 인지스포츠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강럭비’와 ‘트라이’와 같은 전례없는 ‘럭비 인지스포츠화’ 불씨 아래 한국 럭비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knightjis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