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박찬호와 에릭 가니에의 인생유전(人生流轉)
OSEN 기자
발행 2010.01.25 09: 33

금지약물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이 결국 2007년 12월 세상에 탄로났지만 2003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을 수상하며 한 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클로저로 인정받았던 우완 에릭 가니에(34)가 필라델피아와 콜로라도 로키스 등 2팀에서 트라이아웃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해 자신의 조국인 캐나다의 독립 리그에서 선발 투수 겸 코치로 활동했던 그에게 과연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자격이라도 마이너리그 계약을 해줄 팀이 지금도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가니에는 스테로이드 후유증으로 각종 부상에 시달리는 등 이미 빅리거로서의 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에릭 가니에는 1995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팀의 제5선발 자리를 놓고 세 살 위인 박찬호와 경쟁을 펼치기도 했는데 끝내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마무리로 변신해 전성기를 구가한 투수이다. 타고난 어깨를 바탕으로 강속구를 던지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발 투수로 발돋움한 박찬호와 비교해 에릭 가니에는 스테로이드, 금지 약물의 힘을 이용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두 투수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가니에는 어느 날 갑자기 체격이 커져 시속 97마일(약 156km) 안팎을 오가는 패스트볼에 강력한 체인지업을 구사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는데 결국 스테로이드의 힘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박찬호는 아시아의 한국, 에릭 가니에는 북미 캐나다 출신의 외국인 선수로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박찬호 역시 2007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전전한 뒤 2008시즌 자신의 메이저리그 데뷔 팀인 LA 다저스에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자격으로 복귀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해 2008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었던 필라델피아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팀을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챔피언으로 이끌며 자신은 생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뉴욕 양키스에 패해 안타깝게도 박찬호는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하고 있다. 박찬호와 에릭 가니에는 2006시즌 후 나란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왔었다. 당시 필자는 MLB 특파원 시절이었는데 톰 힉스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가 전격적으로 에릭 가니에를 영입하는 것을 취재하면서 그의 무모함이 과연 세계적인 사업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의외였다.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전문가의 평가와 상식을 뛰어넘는 과감함이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톰 힉스 구단주는 그해 8월 가니에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해 또 실패한 계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현재 구단 사장인 놀란 라이언이 이끄는 투자 그룹에 텍사스 레인저스를 파는 작업을 진행 중인 톰 힉스 구단주는 LA 다저스에서 2001시즌 후 처음 FA가 된 박찬호에게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빅딜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러나 풀타임 6시즌을 채우며 FA 자격을 얻을 때까지는 부상과 거리가 멀었던 박찬호에게 첫해부터 햄 스트링, 허리 통증 등이 나타나 결국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 되는 등 FA 역사상 최악의 계약들 중의 하나로 메이저리그는 평가하고 있다. 물론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박찬호는 100승을 넘어섰다. 당시 박찬호의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였는데 에릭 가니에 역시 같은 보라스를 통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에릭 가니에는 2006시즌 후 5년 장기 계약 기간이 끝난 박찬호와는 달리 소속팀 LA 다저스가 2007시즌에 대한 구단 옵션 행사를 포기함으로써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FA가 됐다. 그런데 팔 다리 허리 어깨가 모두 만신창이로 알려졌던 에릭 가니에는 12월13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간 600만 달러(당시 약 55억 원)에 계약했다. 톰 힉스 구단주가 또 배짱 좋게 도무지 투수 생활을 계속할 것 같지 않은 그를 ‘600만달러의 사나이’로 화려하게 변신시킨 것이다. 당시까지도 박찬호의 에이전트는 같은 스캇 보라스였는데 박찬호의 계약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던 시점이었다. 스캇 보라스는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의 보스턴 계약 건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어쨌든 가니에의 계약을 성사시킬 여유는 있었던 모양이다. 이로써 박찬호와 에릭 가니에는 모두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라는 점 외에도, 처음으로 FA가 돼 톰 힉스가 구단주인 텍사스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는 것까지 같아졌다. 에릭 가니에는 2002년부터 3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역사의 세이브 관련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3년 기간으로는 메이저리그 최다인 152세이브에 84 연속 세이브를 성공시켰고, 2003년에는 55세이브로 사이영상까지 수상했다. 3년 동안 158차례의 세이브 기회에서 블론 세이브는 6번에 불과했으니 얼마나 대단했는가? 그러나 그는 2005~2006시즌, 2년 동안 오른 팔꿈치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면서 거의 경기를 뛰지 못했다. 2006시즌에는 겨우 2경기에 나선 뒤 푹 쉬었다. 당시 LA 다저스의 네드 콜레티 단장은 스프링캠프 때 팔꿈치 통증이 재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숨긴 것을 나쁜 점으로 지적하고, 또 현실적으로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해 2007년 1년간 1200만 달러(당시 약 111억 원)였던 구단 옵션 행사를 포기하고 FA로 사실상 방출했다. 그래도 텍사스의 톰 힉스 구단주는 스캇 보라스의 화려한 말을 한번 더 믿어줬는데 역시 실패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2007시즌 개막 직전까지 팀을 찾지 못하다가 에이전트를 제프 보리스로 바꾸는 등의 노력 끝에 겨우 뉴욕 메츠와 계약한 박찬호와 비교해 ‘주스(Juice)’로 불리는 스테로이드를 이용하고도 텍사스와의 1년 계약에서 연봉 600만 달러를 받아 낸 가니에의 현실은 차라리 금지 약물을 복용한 쪽이 나아 보였다. 이후 보스턴을 거쳐 2008시즌 밀워키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쳤던 에릭 가니에가 다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반면 에릭 가니에의 전성기 때 부상으로 신음했던 박찬호는 마침내 재기에 성공해 작년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섰다. 박찬호에게 1년 300만 달러를 제안했다가 재계약에 실패한 필라델피아가 느닷없이 21일 피닉스에서 에릭 가니에를 테스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언론들은 ‘여러 번 사고 난 차를 찾느니 검증된 박찬호에게 더 투자를 해서 잡는 것이 현명하다’며 박찬호와의 협상을 재개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부상으로 부진할 때 박찬호가 현지 언론들로부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난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 에릭 가니에는 그래도 덜했다. 그 과정을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어쩔 수 없는 ‘차별’이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박찬호를 떠나 보내겠다는 필라델피아를 에릭 가니에가 한번 기회를 달라고 찾아오는 것을 보며 ‘인생유전(人生流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박찬호와 에릭 가니에는 이미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벌었다. 그래도 존재감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운드에 서고 싶고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재기에 성공했다고 인정받으며 월드시리즈까지 오른 박찬호에게도 아직 그에 걸맞은 대우는 물론 적극적으로 계약을 원하는 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자칫 지난 2007시즌 스프링캠프 직전처럼 이번에도 급해지는 상황이 올지 우려가 될 정도이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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