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피땀 흘려 갈고 닦은 선수들의 기량점검과 새로운 외국인선수 영입, 여기에 각 팀간의 트레이드를 근거로 정규시즌 판도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대개 시범경기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의 주된 내용이지만 올해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단연‘스피드 업’이었다. 지난 시즌(2009) 프로야구의 한 경기 평균 소요시간은 무려‘3시간 22분.’1982년 프로출범 이래 28년간을 통틀어 가장 긴 역대 최장기록이었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프로야구의 3시간 13분과 견주어도 길지만 메이저리그의 2시간 52분과 비교하면 한 경기당 30분이나 긴 막장(?)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과는 곧 프로야구의 위기로 해석되었다. 프로 존립의 근본적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팬 층의 확보와 관심 계층의 범위를 조금이라도 넓혀보려는 갖가지 아이디어 창출에 매진하고 있는 여러 프로 스포츠 종목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한창인 현 시대에 야구만이 생각하는 스포츠라는 명목으로 지루해진 경기 앞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늘어진 경기시간을 어느 정도나마 단축시키기 위한 경기의 스피드 업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프로야구의 지상과제가 되었고, 활력 있고 박진감 넘치는 야구경기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갖가지 방안들이 경기시간을 줄일 수 있는 개별방법으로 떠올랐고 이어 여러 가지 방안이 채택되었지만, 시범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선수는 물론 언론과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사안은 다름아닌‘12초 룰’이었다. 12초 룰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투수는 타자에게 12초 안에 투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일 투수가 12초 이내에 투구를 하지 않으면 1차 경고를 받게 되고, 두 번째 위반부터는 볼카운트상 매번‘볼’이 하나씩 추가된다. (단, 주자가 있을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범경기 첫날부터 로드리게스(KIA), 고창성(두산), 송승준(롯데), 박정진(한화) 등이 줄줄이 12초 룰 위반으로 경고를 받자 이 규정의 정당성에 대한 시시비비가 일찌감치 도마 위에 올랐다. 심리적인 요인이 투구내용에 큰 영향을 주는 투수에 있어 상당히 불리한 규정이라는 주장에서부터 포수와의 사인 교환 시 투수가 생각할 시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도 있었고, 생각하는 스포츠인 야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도라는 야구 근본론적인 접근의 해석도 있었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12초 룰을 대하는 전체적인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마치 근본도 알 수 없는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대하는 듯 했다. 12초 룰의 도입은 시기상조 또는 또 다른 분쟁을 야기시킬 수 있는 무리수라고까지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쯤에서 한가지 제대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12초 룰은 뜬금없이 어디선가 갑작스레 날아든 돌팔매의 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3년 감독자 회의에서 일선 감독들이 시행하는데 의견을 함께 한 엄연한 기존 규칙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 동안 경기 중 사소한 분쟁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 냉정하게 적용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과거부터 야구규칙(8.04)에는 루에 주자가 없을 때 투수의 투구를 20초 이내에 시작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다만 1997년 20초를 15초 이내로, 2004년 15초를 12초 이내로 규칙이 부분 변경되어 왔을 뿐이다. 2006년에는 다시 규칙서 상에 20초로 환원되었지만 ㈜를 따로 달아 한국프로야구에서는 12초 이내로 적용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천명해 왔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입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있던 규칙을 옷장에서 꺼내 엄중하게 집행하겠다는 것이다. 투수의 12초 이내 투구의무를 담고 있는 12초 룰은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규칙이다. 일본프로야구도 12초 룰을 적용해 왔지만 지난해 15초 룰로 바꾼 상황이다. 우리보다 3초가 더 여유가 있어 좋을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는 투수가 포수로부터 공을 건네 받은 순간부터 시간을 잰다. 그러다 보니 타자의 준비가 다소 늦다거나 투수가 로진을 만지는 등의 행위를 동반하는 경우, 투구동작을 일으키기까지의 여유시간이 턱없이 짧아 투수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3초의 여유를 더 주기로 결정한 이유다. 반면 한국프로야구의 경우는 계산시간 기준이 다르다. 투수가 포수로부터 공을 건네 받은 순간부터가 아니라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서 준비동작을 시작한 이후부터 12초가 카운트(2루심) 된다. 12초 룰 회자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박한이(삼성)를 연상해보면 그 까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준비동작이 너무 길게 되면 투수의 투구시작 시간이 비례해서 늦어지게 된다. 반대로 타자가 완전하게 준비된 순간부터 시간을 재면 박한이와 같이 예비동작이 긴 타자의 경우에는 12초 카운트 시작 이전에 이미 많은 시간이 허비되고 마는 문제가 생긴다. 올 시즌 시범경기의 한 경기 평균 소요시간은 2시간 41분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평균 6분이 단축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12초 룰이 강력하게 적용된 결과라고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12초 룰 말고도 클리닝 타임의 폐지, 스트라이크 존의 횡적인 확대적용, 시범경기가 갖는 분위기의 특수성, 심판들의 끝없는 재촉과 독려 등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보다도 시범경기 연장 승부치기 횟수가 배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시범경기 동안 10여 차례의 12초 룰 위반으로 인한 1차 경고가 투수들에게 주어졌지만 동일 투수가 재차 지적을 받아 볼이 선언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사장된 상태였던 12초 룰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투수들을 조급하게 만들어 궁지로 몰아 볼을 선언하고 단순히 경기시간만을 줄여보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투수들이 타자와의 승부에 있어 좀더 적극성을 띠게 만들어 보기에도 생동감 있는 그림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지루한 타이밍싸움으로 타자를 제압하려는 모습보다 구위로 타자를 상대하려는 투수의 자신감과 적극성을 키워 정정당당한 승부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외국인 투수들과 국내 투수들의 대표적인 투구패턴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 역대 평균 최단 경기 소요시간은 2시간 47분(1993년). 여기까지는 무리이겠지만 3시간 언저리까지 만이라도 줄어든 경기시간을 기대해 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