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사연이다. 사회인 야구 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후배와 이런 저런 야구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듣게 됐는데 계속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같은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고 마른 그 소년은 학교 전체에서 달리기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무엇보다 미칠 만큼 야구를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집안 사정이 말도 못하게 어렵다. 아버지의 벌이도 시원치 않고, 어머니는 오랜 동안 식당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워낙 야구를 하고 싶어하자 과연 소질은 있는 것인지 알아는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리틀 야구 교실을 찾아갔다. 교습비는 1주일에 2회, 한달 8회 기준 17만 원이었다. 그것도 형편상 벅찼다. 그래서 사정을 해서 2만 원을 깎아 15만 원을 내기로 했다. 과거 롯데의 1박2일 야구 캠프에 다녀 온 이후 야구에 꿈을 가진 소년에게 마침내 체계적으로 기초 기술을 배워 볼 기회가 온 것이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아들이 그렇게 무엇엔가 집중해 배우고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8회 교습이 지나갔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월 15만 원을 지출할 여력은 없었다.
어머니는 답답했다. 비록 8번 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아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안면이 있는 사회인 야구팀 감독에게 한번 봐달라고 해서 토요일이었던 지난 7월3일 동네 학교 야구장에서 동호인 선수들과 어울려 캐치볼 등을 해보게 됐다.
사회인 야구팀 감독인 후배는 “8번 배운 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했다. 캐치볼은 어른인 우리 선수들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 체격이 작은 것이 약점이라고는 해도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다. 운동에 소질이 있고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못한다고 하니 정말 할 말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후배는 그 소년의 어머니에게 모 국민학교의 경우 야구부 선수들에게 회비를 받지 않으니 그 쪽으로 전학을 시켜 야구를 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해보았는데 도저히 뒷바라지를 할 자신이 없어 이미 포기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소년은 얼마 전 LG 경기를 보러 잠실 구장에 갔다가 봉중근과 조인성의 사인을 받았다고 사회인 팀 선수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야구 선수는 여전히 그 소년에게 우상이자 미래의 꿈이다.
현재 그 소년의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가정 형편으로 좌절돼 일단 멈춤 상태이다. 언제 다시 시작돼 진행형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년의 우상 중 한 명인 LG 좌완 봉중근(30)의 성공 사례를 보면 그 소년도 야구로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 분명하다.
봉중근의 아버지 봉동식 씨는 2003년 대장암 발병 이후 간암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유일한 기쁨은 아들이 마운드에서 던지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이다. 봉동식 씨는 택시 운전으로 어렵게 4남매를 키웠고 봉중근을 메이저리거로 만들었다.
신일고를 중퇴하고 1997년 애틀랜타에 입단했을 때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으나 봉동식 씨는 아들이 번 돈을 쓸 수는 없다며 계속 택시 운전을 했다. 봉중근은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002년 4월 홈구장 터너 필드에서 애리조나의 커트 실링과의 선발 맞대결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6이닝 8피안타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2004년 신시내티로 트레이드 됐던 봉중근이 귀국을 결심한 이유가 아버지의 대장암 발병 때문이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LG와 2006년 5월 계약금 10억 원, 연봉 3억5000만 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올시즌 개막 직후 팀 내에서 문제가 생겼던 봉중근은 곧 바로 자신을 다잡아 에이스 구실을 하고 있다. 2경기 정도 부진하자 7월의 첫날인 1일에는 머리를 삭발에 가깝게 짧게 자르고 나와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렇게 봉중근은 신일고와 메이저리그를 거쳐 한국프로야구 LG에 입단해 어린이들의 꿈이 돼 있다. 그러나 봉중근이 자신이 야구로 이룬 성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느냐의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봉중근 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스타 선수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물론 이제는 생각과 분위기가 바뀌어 선수들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한국프로야구가 올시즌 1억 관중 시대를 열고 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 구단은 650만 명 관중을 목표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국야구계가 유영구 KBO 총재와 강승규 대한야구협회 회장의 주도로 구장 신축 등 야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베이스볼 아카데미 개설 MOU가 체결됐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의 이면에 아직도 월 15만 원이 없어 야구를 포기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폭넓은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국야구의 저변이 확대되고 미래가 한층 밝아질 것이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