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는 (KBO)는 26일 프로야구 디지털 백일장 당선작을 발표했다. OSEN은 KBO의 허락아래 당선작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이번 회에는 우수상을 수상한 이종철씨의 '야생야사(野生野死)'를 게재한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야구를 보러갔고, 그 날 이후 오늘까지 나의 일생은 프로야구와 맥을 같이 한다.
그 20여 년 동안 나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었다. 야구장에 자주 갔고, 스포츠신문은 늘 옆에 끼고 살았다. 중학생 시절 나는 주말 TV 야구중계가 있는 날이면, 다음 월요일이 중간고사라도 TV 앞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늘 불만이셨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하는 수 없이 TV를 끄고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았지만 공부가 눈에 들어 올 수없었다. 한 5분쯤 앉아 있었을까? "종철아, 나와서 보고 들어가 공부해라" 아버지가 부르셨다.
그 말이 너무 좋았지만, 어머니가 무서워 나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볼거 다 보면 언제 공부해요?"하고 핀잔을 주시자, 아버지는 "거 안 보고 들어가서 공부 한다꼬 공부가 되겄나?" 하셨다.
어머니는 할 수 없이 TV를 보게 해 주시며 한 말씀 더 하신다.
"니 공부하지 말고, 그냥 하일성씨 밑에 가서 야구해설가 해라". 그런 말씀 하실 만 한 것이 당시 나는 롯데 선수들은 등번호까지 외울 정도였고,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팀 선수들만 잘 알기 쉬운데, 나는 각 구단 선수 이름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백지 위에 바로 100~200명선수 이름을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야구사랑을 핍박(?)하던 어머니시지만, 내가 늘 야구장에 가고 싶어할 때면, 맛있는 도시락을 싸서 동생인 외삼촌을 불러다가 야구를 보러가게 해 주셨다.
또 외삼촌이 시간이 안 될 때면, 본인은 야구의 '야'자도 모르시면서, 같이 야구를 보러 가 주셨다. 경기 내내 꾸벅꾸벅 졸긴 했지만... 수많은 경기를 보러 다녔지만,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몇 있다. 내 생에 첫 야구장 관람 경기였던 프로 원년 OB와 롯데의 경기는 4:4로 비겼다. 원년에는 부산에서도 OB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팀이었는데 아직도 박철순, 김우열, 윤동균 등이 나온 그 경기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펼쳐진 최고의 두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정면대결은 사람이 너무 많아 표를 구하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암표 상에게 까지 가서 표를 사오셨다. 이 빅 매치는 2:0으로 롯데가 이겼는데, 심한 투수전이라 재미가 덜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보러간 롯데와 해태의 경기였다.
그 해에는 학교 여선생님들과 자주 같이 야구를 보러 다녔는데, 골수 야구팬인 나와 마찬가지로 세 분의 여자선생님도 지독한 야구광들이셨기 때문이다.
이 날 경기는 엎치락 뒤치락 하는 끝에 8:7로 역전패했는데,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마무리투수로 나온 선동열이 세 타자를 연거푸 삼진으로 잡아 재역전의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허무한 패배, 해태 선수단 버스는 한동안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했고, 나는 다음날 세분 여 선생님반 아이들이 단체 벌을 서는 모습을 보며 혼자 몰래 키득거렸다.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녹색 다이아몬드와 그곳에서 목 놓아 부르는 '부산갈매기'는 답답한 일상을 한방에 날려 준다.
시즌이 끝난 스토브리그, 벌써 나는 야구장이 그립다. 나도 어서 빨리 아버지가 되어,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아들의 손을 잡고 야구를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