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치기' 김경문호를 통해 본 한국야구
OSEN 기자
발행 2007.12.05 11: 40

[OSEN=이상학 객원기자] '김경문호'가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겸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을 마치고 지난 4일 밤 귀국했다. 당당하게 개선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본전치기'에 성공한 것에 자위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3월 대표팀 사령탑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은 채 숱한 고민과 번민의 나날을 보낸 김경문 감독도 “최종예선만 통과하면 올림픽 메달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본전치기를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김경문호에서 한국야구의 현주소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번 대표팀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한 이승엽·이종범·구대성·서재응·김병현 등 투타 핵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거 빠졌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 참패를 교훈삼아 한 달 가까이 준비 기간을 갖고 일본 오키나와서 전지훈련까지 치렀지만 몇몇 핵심 베테랑과 해외파들이 빠진 타격이 컸다. 물론 일본도 메이저리거 전원이 제외된 데다 핵심타자들이 부상으로 빠지는 차질이 있었지만 WBC대표팀 같은 정예군단을 2~3개 정도 만들 수 있는 일본의 선수층과 한국의 선수층을 비교하기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호시노 재팬’은 전력분석원들을 시즌 내내 한국에 상주시키며 정보전에서 한참 앞서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결국 정공법보다는 변칙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투수로 전병호와 류택현, 야수로 민병헌을 발탁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재홍·이진영 등 국제용 베테랑들이 배제돼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절대적인 기량을 놓고 본다면 전병호와 류택현 그리고 민병헌이 발탁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지만 상대적인 기량을 놓고 보면 얘기는 달랐다. 내심 기대한 최정예멤버를 구성할 수 없었던 김경문 감독으로서는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들이 필요했다. 정공법으로 일본을 깨기에는 무리였던 한국으로서는 고육지책이었다. 결국에는 자원이 부족한 탓이었다. 이같은 고육지책은 대회 기간에도 계속됐다. 대만전에서 류현진과 박찬호라는 필승카드를 모두 소모한 것이다. 일본전 선발이 유력했던 류현진을 대만전에 깜짝 선발 카드로 올리고 리드 점수를 지키기 위해 박찬호를 구원등판시키는 등 파격의 연속이었다. 결국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쓴 만큼 대만을 5-2로 꺾고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일본전이 문제였다. 대만전에서 46개의 공을 던진 박찬호도 일본전에서 선발은 어려웠다. 한국은 일본전 선발로 전병호를 깜짝 등판시키는 놀라운 승부수를 띄웠다. 그 과정에서 위장 오던 논란이 불거졌지만 규정이 허락하는 한 어떻게든 일본을 흔들자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판단이었다.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 된 전병호 카드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일본 타선을 4점으로 묶은 것은 성공이었다. 그러나 리드 점수를 일찍 내준 것이 문제였다. 전병호의 2⅓이닝 3실점(2자책)은 9회까지 극복할 수 없는 짐이 되고 말았다. 확실한 선발투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순간이었다. 일본도 한국전에서 선발 나루세 요시히사에 이어 또다른 선발요원인 가와카미 겐신을 올리는 총력전을 벌였지만 대만전에서는 다르빗슈 유가 선발등판해 7이닝을 소화했다. 다르빗슈 외에도 고바야시 히로유키도 있었다. 그야말로 넘치는 자원의 넘치는 선발투수들이었다. 한국의 사정과는 너무 달랐다. 대만전 총력전 승리 이후 일본전 패배로 올림픽 본선 직행이 물거품된 상황. 책임은 코칭스태프가 져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 대회는 결과의 측면에서 2위와 3위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어차피 3위에도 내년 3월 다시 최종예선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또 한 차례 예선을 치르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는 한국·일본·대만 모두 무조건 1위를 차지해야만 하는 대회였다. 하지만 한국은 대만전에 총력을 퍼붓는 수세적인 자세로 결국 실패했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서 대만과 아마추어 일본에 참패한 뒤 봇물처럼 쏟아졌던 거센 비난 여론 또한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최정예 일본도 이겨 1위를 해야 하는 대회에서 대만에만 이겨 체면만 세운 결과가 나왔다. 뚝심의 김경문 감독답지 않은 선택이었고, 과거가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도 이런 식으로 입증됐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야구는 자원의 부족으로 변칙 승부에 한계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만의 책임이 아니라 한국야구 전체가 져야 할 책임인 것이다. 언제까지 몇몇 선수들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의지할 수는 없다. 이번 대표팀도 역대 대표팀 중 가장 팀 분위기와 단결력이 좋다고 자부했지만 야구의 신은 한국에게 이변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의 야구역사와 저변을 비추어 볼 때 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게는 기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야구에도 더이상의 기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부족한 자원을 한탄하기에는 국내야구 팬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부족한 야구 저변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개선하는 길밖에 없다. 고교팀이 겨우 50여 개에 불과한 나라가 4000개 이상의 팀을 보유한 나라를 넘으려 하는 것은 분명히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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