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삼성의 올 스토브리그 테마는 ‘신상필벌’이다. 생애 처음으로 전경기 출장과 한 시즌 100안타를 돌파한 신명철은 당당히 억대 연봉자로 발돋움했다. 신명철은 지난 19일 올해 7500만 원에서 40%가 인상된 1억 500만 원에 내년 연봉을 체결했다. 그러나 같은 날 신명철의 동기생은 엄중한 필벌을 받았다. 다름 아닌 박한이(28)였다. 박한이는 올해 2억 7000만 원에서 10%가 삭감된 2억 4300만 원에 내년 연봉을 계약했다. 생애 첫 연봉 삭감이었다. 지난 2001년 데뷔 후 5년 연속 연봉이 상승했던 박한이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삭감이다. 프로 진출 후 박한이에게 걸린 첫 브레이크다. ▲ 검증된 타자, 퇴보한 타자 박한이는 프로 통산 7시즌 동안 정확히 900경기를 소화한 엄연한 베테랑이다. 통산 타율은 2할9푼1리. 7시즌 이상 뛴 선수 중 통산 타율 역대 17위에 해당한다. 현역으로 한정하면 8위에 달하는 고타율이다. 그만큼 박한이는 7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한 검증을 마친 타자다.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라이벌로 비견된 신명철이 올해 데뷔 7년 만에 한 시즌 100안타를 달성하는 사이 박한이는 7년 연속으로 한 시즌 110안타 이상을 때려냈다. 2003년에는 최다안타왕(170개)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득점왕(89점)을 차지했다.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2004, 2006년 두 차례나 수상했다. 데뷔 후 결장한 경기도 겨우 10경기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도 철저했다. 기록상으로 박한이가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해는 3년차였던 2003년이다. 그해 133경기 전경기에 출장, 타율 3할2푼2리·12홈런·59타점·17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170개 안타로 최다안타 부문 전체 1위를 차지했다. 2004년에는 132경기에 출장해 3할대 타율(0.310)을 2년 연속 유지한 가운데 데뷔 후 가장 많은 16홈런을 쳤다. 타점도 63개로 역시 데뷔 후 최고였다. 그러나 2004년에 최정점을 찍은 후 3년 연속 하락세를 거듭했다. 타율은 2005년 2할9푼5리, 2006년 2할8푼5리, 2007년 2할6푼7리까지 떨어졌다. 홈런도 9개-6개-2개로 수직하강했고, 타점도 59개-43개-27개로 추락에 또 추락을 거듭했다. 매년 꾸준히 상승한 연봉과 달리 기록은 박한이의 퇴보를 의미하고 있었다. 박한이는 올 시즌 123경기에서 타율 2할6푼7리·2홈런·27타점으로 마침내 바닥을 쳤다. 월간 타율도 3할2푼5리로 반짝한 5월을 제외하면 4월부터 10월까지 월간 타율이 2할대였다. 올 시즌 삼성 테이블세터진의 타율(0.235)과 출루율(0.318)이 모두 리그 최하위로 추락한 데에는 톱타자 박한이의 책임이 크다. 게다가 외야수로는 드물게 실책을 6개나 기록했다. 시즌 중 수비 불안으로 수비 위치를 중견수에서 우익수로 옮길 정도로 코칭스태프의 믿음도 잃었다. 도루 역시 데뷔 후 가장 적은 10개에 머물렀다. 출루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결정적 이유지만, 박한이의 발과 주루센스는 상대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톱타자치고 높았던 꽤 장타율도 올해는 0.309로 바닥을 쳤다. ▲ 기로에 선 박한이 “쟤는 똑딱이야.” 시즌 중 한대화 수석코치가 박한이를 일컬어 한 말이다. 동국대 시절부터 사제지간으로 연을 맺은 박한이지만 시즌 내내 이어진 부진에 한 수석코치도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박한이는 “특타훈련도 많이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노리는 공이 와도 맞지 않았다. 잘 되지 않다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자신감까지 잃었다”고 말했다. 박한이는 “선배들이 힘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고 덧붙였다.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으나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틈날 때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스윙훈련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 박한이의 말이었다. 실제로 박한이는 기술적으로 큰 흠이 없는 타자다. 어느 곳으로든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로 오른손·왼손·언더핸드를 가리지 않고 공략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타자가 바로 박한이다. 그러나 선배들의 지적대로 박한이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힘이 부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한이는 데뷔 후 거의 매년 톱타자로 활약했지만 장타도 심심찮게 터뜨릴 정도로 펀치력이 꽤 있는 타자였다. 2001년(0.445)·2003년(0.458)·2004년(0.465) 등 3시즌이나 장타율 4할대를 넘었다. 지난해까지 규모가 작았던 대구구장을 홈으로 쓴 만큼 주루 능력보다는 타격 능력으로 만들어낸 장타율이었다. 배트 스피드가 빠르고 손목의 힘이 좋은 영향이었다. 한때 삼성에서는 박한이를 중심타자로 고정할 의사도 내비쳤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같은 장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박한이의 홈런은 가뭄에 콩나는 것만큼 구경하기 어려웠다. 힘의 부족은 느려진 배트 스피드와 약해진 손목 힘과도 직결된다. 올해만 놓고 보면 중거리타자로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비록 전반적인 타격성적이 퇴보한 박한이지만 지난해까지는 그래도 최악의 활약은 아니었다. 2006년 삼성 타자 가운데 고과 1위가 바로 박한이였다. 최악의 부진을 보인 올해도 한화 고동진(0.247)보다 타율이 2푼 가까이 높았다. 결정적으로 박한이에게는 날카로운 방망이뿐만 아니라 좋은 눈과 진득한 참을성이 있다. 박한이는 데뷔 후 7년 연속 볼넷을 55개 이상 얻어낼 정도로 선구안이 좋다. 박한이가 자랑하는 꾸준함의 비결이다. 올 시즌에도 볼넷을 67개나 얻어냈다. 슬러거가 아니지만, 이 부문에서 전체 10위에 올랐다. 타율과 장타 등 각종 타격 성적에서 매년 하강곡선을 그렸지만 공을 고르고 걸어나가는 능력은 전혀 퇴보하지 않았다. 타격 능력만 회복하면 박한이의 재도약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전히 장타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톱타자로만 활용하기에는 박한이의 주력이나 주루센스는 그리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박한이는 어느 정도 펀치력을 갖출 때야말로 꾸준함이 보다 더 빛을 발하는 타자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부진은 박한이에게 길을 제시했다. 첫 연봉 삭감은 그 과정에서 나온 경고다. 현재 박한이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기로에서 내릴 선택이 중요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