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된 기록' 볼넷을 많이 얻은 타자들
OSEN 기자
발행 2008.06.15 10: 04

[OSEN=이상학 객원기자] 야구는 던지고 치는 스포츠다.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친다. 기본적으로 타자들은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맞히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팬들도 치고 달리는 것에 환호한다. 그래서 볼넷은 많이 간과되고 있는 기록이다. 과거 볼넷은 투수의 기록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볼넷을 얻어내는 것도 엄연한 타자의 능력 중 하나다. 빌리 빈의 이론에서도 볼넷은 타자의 미덕 중 하나로 간주된다. 올 시즌 프로야구 볼넷 부문 10위에 랭크된 타자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① 롯데 정수근 올 시즌 볼넷 1위는 41개를 얻어낸 롯데 톱타자 정수근이다. 정수근은 지난해까지 통산 565볼넷을 기록했다. 전성기였던 2001년에는 71볼넷을 기록한 것이 한 시즌 최다기록이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88.5볼넷이 가능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볼넷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2001년에도 볼넷 부문 전체 12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올 시즌 정수근은 타석에서 집중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덕분에 정수근은 시즌 타율도 3할1푼5리로 높지만 출루율은 그보다 1할 이상 더 높은 4할2푼5리나 된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노스트라이크 스리볼에서도 때리는 적극적인 타격을 강조하는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놀라운 대목. 정수근으로서는 타석에서의 신중함과 집중력을 수비에서도 가질 필요가 있다. ② 두산 김현수 올 시즌 명실상부한 정상급 타자로 거듭난 두산 김현수는 기본적으로 타격이 좋은 선수다. 스윙도 부드럽지만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때리는 공격적인 스타일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김현수는 볼넷도 생각보다 많이 얻어내고 있다. 올 시즌 38볼넷으로 이 부문에서 정수근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삼진은 볼넷의 정확히 절반밖에 되지 않는 19개만 당했다. 물론 리딩히터로 등극하고 견제를 받기 시작한 5월 이후에만 25개 볼넷을 얻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상대 견제에 말리지 않은 김현수의 참을성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김현수가 전형적인 거포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대 견제라는 의미도 김현수의 선구안을 평가절하할 개재가 되지 못한다. 타격만큼 선구안도 좋은 김현수이기에 롱런을 기대해 볼만하다. ③ 두산 김동주 두산 4번 타자 김동주도 볼넷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데뷔 초에만 하더라도 볼넷이 많지 않은 타자였고, 아직 한 시즌 100볼넷은 기록하지 못했다. 기다리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개인 한 시즌 최다 83볼넷을 얻으며 출루율 부문 리그 전체 1위(0.457)를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36볼넷으로 클리프 브룸바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라있다. 물론 4번 타자답게 상대팀에서 지레 겁먹고 피해가는 과정에서 얻은 볼넷이 많았다. 통산 고의4구가 44개인데 이 가운데 11개를 지난 한 해에 기록했다. 올 시즌에도 고의4구가 3개 포함돼 있다. 기술적으로 약점이 없다는 점에서 상대로서는 위기 상황에서 피해가는 피칭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김동주의 볼넷 중 22개가 바로 득점권에서 나온 것이었다. ④ 우리 브룸바 클리프 브룸바는 전형적인 풀히터이자 슬러거 스타일이다. 볼넷이 가장 많이 필요한 쪽은 테이블세터지만 실상 볼넷을 가장 많이 얻어내는 쪽은 투수들에게 위압감을 심어주는 중심타자들이다. 브룸바는 현대 시절이었던 지난 2004년 114볼넷으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지난해에도 100볼넷을 채우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중에는 고의4구가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2004년에는 10개가 있었고 지난해에도 12개나 있었다. 올 시즌에도 브룸바는 36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김동주와 함께 이 부문에서 공동 3위다. 고의4구도 5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다. 다만 올 시즌의 경우에는 2004년이나 2007년과 달리 삼진이 볼넷보다 많다는 것이 걸리는 대목이다. ⑤ 두산 고영민 고영민의 올 시즌 타율은 2할7푼3리로 전체 28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출루율은 타율보다 1할 가량 높은 3할8푼2리로 전체 20위에 해당한다. 올 시즌 리그에서 5번째로 많은 35개의 볼넷을 얻어낸 것이 비결이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즌 타율은 2할6푼8리로 전체 24위에 불과했지만, 출루율은 3할7푼3리로 당당히 전체 13위였다. 역시 전체 12위에 해당하는 61개의 볼넷이 가장 큰 힘이었다. 고영민은 숫자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타자다. 지난해 무려 105개의 삼진을 당했고 올 시즌에도 50삼진으로 이 부문에서 3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토종선수로는 당당히 1위다. 전형적인 거포 스타일이 아니지만 볼넷과 삼진은 거포 스타일에 가깝다.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선수’가 바로 고영민이다. 어쨌든 볼넷이 많고, 출루율이 높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⑥ 한화 클락 올 시즌 최고 외국인선수로 자리매김한 덕 클락은 볼넷마저도 꽤 많다. 35볼넷으로 이 부문에서 고영민(두산)과 함께 공동 5위에 랭크돼 있다. 클락은 미국에서 볼넷이 많은 타자는 아니었다. 마이너리그 10시즌 통산 459볼넷을 기록했지만, 삼진을 856개나 당했다. 볼넷이 삼진보다 많은 시즌은 한 시즌도 없었으며 한 시즌 최다 볼넷도 63개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미국을 떠나 맞이한 한국 리그에서는 볼넷이 삼진(33개)보다 조금 더 많으며 볼넷도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약 70개가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뒷타자들을 믿고 출루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 볼넷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클락은 “팀에 좋은 타자들이 많아 내가 굳이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김태균도 “클락이 뒷타자들에게 찬스를 많이 만들어준다”고 고마워했다. ⑦ KIA 장성호 ‘2000안타의 주인공’ 삼성 양준혁은 “내 기록 중 가장 깨기 힘든 것이 아마 볼넷일 것이다”고 말했다. 양준혁은 지난해까지 통산 볼넷이 1141개로 역대 1위였다. 하지만 이 기록에 도전할만한 선수가 바로 KIA 장성호다. 지난해까지 통산 볼넷이 770개로 역대 6위였다. 올 시즌에도 39경기에서 33볼넷을 얻어 이 부문 공동 7위에 올라있다. 중요한 건 경기당 볼넷이 무려 0.85개로 전체 1위에 올라있다는 사실. 시즌 타율도 3할3푼8리지만 출루율은 5할에 육박하는 4할7푼1리다. 출루율이 타율보다 무려 1할3푼3리나 더 높다. 출루율-타율 격차가 가장 큰 선수가 장성호다. 규정타석까지는 28타석이 남아있다. 올 시즌 새로 안경까지 쓴 장성호는 더욱 정밀해진 눈을 앞세워 그야말로 ‘미칠듯한’ 선구안을 자랑하고 있다. 최희섭 반사효과도 없지 않았지만 최희섭이 라인업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79타석에서 12볼넷을 얻었다. 양준혁의 볼넷 기록을 넘어설만한 거의 유일한 후보다. ⑧ 삼성 박한이 박한이는 데뷔 때부터 볼넷을 고르는 능력이 남달랐다. 매년 볼넷 55개 이상을 기본적으로 골라냈다. 지난 2006년에는 80볼넷으로 이 부문 5위에 오른 바 있다. 극도의 타격부진을 보인 지난해에도 박한이는 리그에서 10번째로 많은 67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타격감은 죽어도 눈은 녹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타격감이 완전하게 되찾은 올 시즌에도 박한이의 볼넷 생산은 변함없이 꾸준하다. 33볼넷으로 이 부문에서 장성호와 함께 공동 7위에 이름이 올라있다. 타율도 3할5푼2리로 전체 2위지만 출루율은 4할5푼7리로 당당히 전체 1위에 랭크돼 있다. 볼넷의 힘이다. 최근 부상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선구안은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도루 빼고 다 잘하는 톱타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⑨ 롯데 이대호 이대호는 볼넷을 싫어한다. 지난해까지 이대호는 238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지난해 기록한 81볼넷이 한 시즌 개인 최다볼넷 기록이었다. 지난해 한 해에만 고의4구를 무려 25개나 기록할 정도로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이대호는 걸어 나가기보다 적극적으로 때리는 스타일이다. 물론 올 시즌에도 볼넷을 꽤 많이 골라냈다. 볼넷 32개로 박석민과 공동 9위를 양분하고 있다. 지난해 고의4구를 많이 기록하고도 볼넷 순위는 6위였다. 적극적으로 때렸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에는 카림 가르시아의 합류와 강민호의 성장으로 집중견제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볼넷 페이스도 지난해만 못하다. 문제는 타격감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6월에 치른 11경기에서도 볼넷은 4개뿐. 위압감만으로도 볼넷을 얻을 수 있는 타자가 바로 이대호이지만 최근에는 슬럼프가 깊어 볼넷도 확 줄었다. ⑩ 삼성 박석민 2군 기록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해 상무에서 2군 리그를 평정한 박석민도 처음에는 의심받았다. 하지만 박석민은 달랐다. 타율 2할9푼8리·8홈런·31타점으로 1군 무대에도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4번 타자라는 부담이 큰 자리를 오히려 즐길 정도로 배포도 갖췄다. 중요한 건 볼넷이 많다는 점이다. 32볼넷으로 이대호와 함께 이 부문에서 공동 5위. 지난해 2군에서도 삼진 28개를 당하는 동안 볼넷 43개를 얻었다. 2군을 평정한 선수들이 1군에서 고전하는 건 대개 여유가 없고 변화구 대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군의 배리 본즈’ LG 김상현은 2년째 볼넷·삼진 비율이 극악이다. 하지만 올 시즌 박석민은 32볼넷을 얻는 동안 삼진도 34개밖에 없다. 타석에서 여유가 있고, 변화구 대처 능력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 대형타자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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