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뺀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유로 2008이 3주간의 열전 끝에 막을 내렸다. 이번 유로 2008은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난 가운데 세계 축구의 흐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토너먼트 대회를 통해 축구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성적이 갈리는 만큼 경기 상대에 맞춘 특정 전술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각 리그를 살펴보는 것이 세계 축구의 흐름을 더 쉽고 정확하게 살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대표팀은 자기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만큼 단기간 내에 세계 최정상급의 축구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이들의 모습과 경향을 따라가는 것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번 유로 2008을 통해 세계 축구가 어떻게 바뀌었고 한국 축구가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기술, 체력에 앞서다 흔히 축구는 기술과 체력이라는 두 가지 변수로 구분되어진다. 예전만 하더라도 남미는 기술, 유럽은 체력 혹은 체격이라는 이분화된 공식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축구에 들어서면서 선수들의 이적이 활발해지면서 더 이상 이런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남미와 유럽의 각 팀들은 더 이상 기술과 체력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두 가지 요소가 적절히 조화된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 역시 거의 모든 팀들이 기술과 체력을 동시에 갖춘 가운데 기술이 빛난 팀들이 대회를 주도했다. 선두주자는 단연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였다. 선수들의 기술이 돋보이는 이들 팀은 조별리그 내내 막강한 공격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스페인은 이니에스타, 사비 등이 포진한 미드필더들의 패싱 게임이 돋보였다. 이들은 탄탄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물흐르는 듯한 패스를 보여주며 전승 우승을 거두었다. 포르투갈은 윙어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와 시망 사브로사로 이어지는 양 날개가 맹활약했다. 여기에 플레이메이커 데쿠의 존재 역시 대단했다. 네덜란드는 기술과 체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신 원톱인 루em 반 니스텔로이도 체력과 체격 못지않게 유연한 기술을 보유하며 맹활약한 가운데 조별리그 내내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네덜란드는 이탈리아, 프랑스, 루마니아에 대승을 거두며 승리했다. 전술적으로는 윙어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비단 윙포워드나 좌우 미드필더들뿐만 아니라 풀백들의 공격 가담도 빈번했다. 앞선에 선 윙어들은 잦은 위치 변화로 상대를 공략했고 풀백들은 오버래핑과 날카로운 크로스로 공격에 힘을 실었다. 자연스럽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공격에 힘을 실었던 중앙 미드필더들은 이들의 공간을 커버하는 역할을 많이 하면서 공격적인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어진 것도 이번 대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8강 이후, 감독의 역량이 승부를 가르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체력을 압도한 것만은 아니다. 조별 리그 이후에는 체력을 앞세운 팀들이 득세했다. 여기에는 감독의 역량이 컸다. 8강 이후 토너먼트에서 득세한 감독들은 경기력 못지않게 선수들의 정신력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선두주자가 바로 거스 히딩크 러시아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대패하고 난 이후 선수들을 잘 다독이며 2연승해 8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네덜란드와 8강전은 히딩크 매직의 백미였다. 그는 전술과 선수단 운영 등 모든 면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며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에게 한 수 가르쳐주었다. 터키의 파티흐 테림 감독이나 스페인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 역시 선수들의 사기를 잘 끌어올리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반면 로베르토 도나도니 이탈리아 감독, 레이몽드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 등은 전술적인 실수와 선수단 장악 실패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양한 전술과 감독의 역량, 한국 축구가 배워야 할 점 유로 2008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한국 축구는 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허정무호는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서 3승 3무로 최종 예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무색무취의 경기력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허 감독은 3차 예선이 끝난 후 유로 2008이 열리는 준결승과 결승을 관전하고 왔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이 유럽행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쓰고 있는 4-2-3-1 전술을 주포메이션으로 채택한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모두 8강에서 패퇴한 상황에서 열린 준결승과 결승전이 얼마만큼 허 감독에게 영감을 주었을지는 미지수다. 뒤집어 말하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경기는 한국에게 시사하는 점이 상당히 컸다는 말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같은 4-2-3-1을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달랐다. 포르투갈은 윙어들과 원톱, 미드필더들의 다양한 위치 변화를 통해 상대를 공략했다. 앞선 선수들이 공간을 좁히며 중앙에 힘을 실었고 이로 인한 공간을 좌우 풀백들이 침투해 공격 찬스를 만들어냈다. 네덜란드는 반 니스텔로이라는 체력과 체격 그리고 기술을 겸비한 원톱을 전방에 세운 후 좌우를 파고들었다. 여기에 원톱이 고립되는 조짐이 보이면 로빈 반 페르시나 슈나이더, 로벤 등을 투입해 공격의 흐름을 좋게 했다. 경기 중 자연스럽게 4-2-3-1에서 4-4-1-1까지 넘나들며 공격을 전개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숫자배치지만 다른 모습의 전술은 허정무호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원톱의 머리만을 겨냥한 크로스를 남발하는 허정무호에게 무엇이 변화인지를 실전에서 보여주는 살아있는 자료인 것이다. 세계적인 명장들의 팀 장악 능력도 한국으로서는 배워야 할 점이다. 히딩크 감독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패하고 난 이후에 절대 자기팀 선수들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을 격려해주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명장의 소리를 들은 다른 감독들 역시 공식 석상에서 선수에 대한 비판은 일절 없었다. 물론 선수 개개인에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는 최대한 피했다. 이런 모습을 두고 K리그 감독들은 '히딩크는 탁월한 심리 전문가'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때 골키퍼 문제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던 허정무 감독이 이같은 명장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워왔을지 궁금하다. bbadagun@osen.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