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대호 객원기자] '야구의 신'은 김경문 두산 감독에게 또 다시 가혹한 시련을 안겼다. 2004년과 2005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엔 투-타의 주춧돌을 모조리 뽑아갈 심사다. 왼손 선발 이혜천(29)을 일본 야쿠르트로 떠나보낸데 이어 FA(자유계약선수) 홍성흔(31) 마저 속절없이 롯데에 빼앗겼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간판타자 김동주(32)도 일본으로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김경문 감독처럼 구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령탑도 없다. 2003년 10월 두산 감독에 부임한 뒤 지금까지 팀을 떠난 주전선수는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감독 첫 시즌이었던 2004년 두산의 현실은 암담했다. FA 정수근 진필중이 기다렸다는 듯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여기에 홈런 40개, 100타점은 기본이었던 타이론 우즈가 훌쩍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이들을 모두 데리고도 2003시즌 7위를 한 두산으로선 신임 감독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안겼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김 감독 특유의 '잡초근성'이 팀을 위기에서 건져냈다. 외국인 투수 키퍼와 레스를 데려와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했고, 구자운 이재영 이재우 등 진흙속의 진주를 발굴해 냈다. 두산은 2004시즌 일반의 예상을 깨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의 시련은 시작일 뿐이었다. 2005시즌을 앞두고 두산은 야구판을 절망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병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거론하기 힘들 만큼 많은 선수가 철창행을 지거나 군에 입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에이스 레스 마저 일본으로 건너갔다. 야구계에선 과연 두산이 시즌을 제대로 치러낼 수 있을지 우려했다. 김경문 감독은 주저앉지 않았다. 레스 대신 맨들을 영입해 구색을 맞춘 김 감독은 신예 정재훈을 발굴해 입대한 구자운의 마무리 자리를 맡겼다. 2005년 최고의 히트작은 시즌 중반 KIA와 단행한 전병두-리오스의 맞트레이드였다. 꼴찌후보 0순위였던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미러클 두산'이란 별명이 생긴 해였다. 그 뒤로 김경문 감독은 이종욱 고영민 민병헌 오재원 김현수 등 신예들을 끊임없이 찾아내면서 팀을 2007, 2008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렸다. 그리고 2009시즌을 앞두고 세 번째 시련을 맞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또 다시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팀 핑계, 전력 핑계, FA 핑계 따위완 거리가 먼 김경문 감독에게 팬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