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일본킬러' 좌완 투수 김광현(21, SK)이 무서운 분석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국대표팀은 7일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일본전에서 2-14로 충격의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1회와 2회에만 각각 3실점, 5실점하며 사실상 승기를 내주고 말았다. 1회 김태균의 투런포로 3-2까지 따라붙었지만 더 이상 추가점을 뽑는데 실패했다.
대표팀의 패배보다도 김광현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더 뼈아팠다. 이날 선발로 나온 김광현은 1⅓이닝 동안 7피안타 3삼진 2볼넷 8실점으로 고개를 떨궜다. 2회를 마치기도 전에 총투구수는 57개였다.
김광현은 1회 톱타자 스즈키 이치로부터 나카지마 히로유키, 아오키 노리치카까지 3연속 안타를 맞고 쉽게 선취점을 내줬다. 무라타 슈이치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2명의 타자를 잇따라 삼진으로 돌려세워 위기를 벗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우치카와 세이치에게 3루 베이스 옆을 스치는 좌측 2루타를 맞고 2점을 더 내주고 말았다.
결국 평정심을 잃은 김광현은 2회 무라타에게 스리런포를 얻어 맞는 등 한꺼번에 5실점한 뒤 정현욱(삼성)과 교체됐다.
문제는 일본 타자들이 마치 답안지를 보고 나온 수험생처럼 김광현의 슬라이더만 골라 노렸다는 것이다. 1회 안타를 친 이치로, 나카지마, 아오키, 우치카와까지 모두 직구는 버리고 슬라이더만 노렸다. 그리고 모두 안타로 연결시켰다.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김광현에게 '일본킬러'의 명성을 가져다준 대표적인 구질이었다. 2007년 아시아시리즈(6⅔이닝 1실점)부터 시작해 베이징올림픽 2경기(13⅓이닝 3실점)까지 김광현은 일본을 농락하다시피해왔다.
하지만 이날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였다. 모든 타자들이 받쳐놓고 완벽한 스윙으로 연결할 정도였다.
이는 곧 일본이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완벽하게 연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김광현이 선발로 나올 것이라 예상, 슬라이더를 집중 탐구했다. 일본의 방송에서는 아예 김광현의 슬라이더만 논할 정도였다. 그리고 최근 '김광현의 약점을 찾았다'고 대서특필하기까지 했다.
철저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흘러드는 슬라이더를 노린 일본타자들은 1회에 김광현을 넉다운시키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국 마운드는 이후 정현욱, 장원삼, 이재우가 나왔지만 이미 무너진 뚝을 다시 세울 수는 없었다.
"승부욕이 강하기 때문에 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김광현이 간파당한 슬라이더를 들고 다시 한 번 일본과 맞대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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