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종규 객원기자] “지금은 몸이 아파도 안 아프다고 느껴지죠”. 지난 3년간 철저히 무명에 머무르던 한 선수가 마침내 ‘히어로 인터뷰’ 의 주인공이 됐다. 히어로즈의 대구 상원고 출신 4년차 포수 유선정(23)이 생애 최고의 활약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이다. 지난 시간의 노력들이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살리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22일 목동구장. 삼성전을 앞두고 연습을 끝낸 ‘한시적 주전포수’ 유선정을 만났다. 20일 김동수와 강귀태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데다 허준이 21일 무릎 인대 부상을 입는 바람에 마스크를 쓰게 된 유선정이었다. 김동수와 강귀태가 돌아오기 전까지 4경기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4경기에서 주전 포수로 나서게 된 소감에 대해 유선정은 “어렵게 잡은 기회니까 열심히 해야죠. 4년 중 제일 큰 기회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몸이 아파도 안 아프다고 느껴지죠” 라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1군 경기에 어떻게 대비하느냐는 질문에 유선정은 “김동수 선배님이나 (강)귀태 형에게 많이 배워요. 경기 전에 투수와 볼배합을 맞추고, 벤치에서 내는 사인도 보면서 상황에 대처해요. 제 스스로 기록한 수첩도 보고요” 라고 대답했다. 1군 무대에 아직 적응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아직 1군은 경험이 없어서 투수와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어요. 그래도 이보근 같이 2군에서 호흡을 맞춰본 투수들은 생소하지 않죠. 그리고 저는 야간경기를 좋아해요. 낮에 비해 덥지 않아 좋고, 공도 잘 보이거든요. 무엇보다 관중들 앞에서 경기하는 게 좋아요” 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4경기 중 타석에서 결승타를 치면 히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으니 멘트를 미리 준비하라는 말에 “다른 선수들은 멘트를 준비하는데요, 저는 그런 준비 없이 즉석에서 말할 자신이 있어요” 라며 미소 지은 유선정이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뒤 유선정의 생애 최고 활약이 시작됐다. 포수 겸 8번 타자로 당당히 선발 출장해 에이스 이현승과 함께 삼성 타선을 맞이했다. 올 시즌 두 번째 선발 출장. 일단은 실수가 먼저였다. 1회 첫 타자 조동찬을 자신의 패스트볼 때문에 투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으로 출루시켜 득점까지 허용한 것. 마음을 다잡은 유선정은 잠시 후 1루 주자 신명철을 자신의 손으로 견제사시키며 1회를 마무리했다. 이현승의 호투를 이끌던 유선정은 타석에서 일을 내기에 이르렀다. 양 팀이 3-3으로 맞선 6회말 1사 2루서 타석에 들어선 유선정은 배영수의 5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팀의 5-3 리드를 가져오는 데뷔 첫 홈런이었던 것이다. 경기 전 라이브 배팅에서 홈런을 기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유선정은 “약간 몸 쪽에 슬라이더가 들어온 것을 받아쳤어요. 직구를 노렸는데 잘 친 거죠. 원래 슬라이더를 노리면 직구를 못 치지만, 직구를 노릴 때는 슬라이더를 칠 수도 있거든요” 라며 “배영수 선배가 요즘 부진해서 잘 할 자신이 있었어요. 어차피 똑같은 선수잖아요. 사람이 던지는 거니까 사람이 칠 수 있죠” 라는 말을 덧붙였다. 결국 히어로즈가 타선 폭발을 앞세워 10-3으로 이겼고, 유선정의 홈런은 결승타가 됐다. 당연히 이날 경기의 히어로는 유선정이었다. 방송사와 인터뷰에 임한 유선정은 자신의 말대로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답변을 이어갔다. 팬들 앞에서 응원단상 인터뷰까지 마친 유선정을 텅 빈 덕아웃에서 다시 만났다. 예상과는 달리 차분한 모습이었다. “일단 팀이 이겨서 좋아요. 삼성전 6연패를 끊어서 더 좋네요” 라며 소감을 밝힌 뒤 “1회에 실수한 것을 만회하려고 했어요. (이)현승이 형은 직구 사인을 내면 가끔 투심을 던지기로 했는데, 제가 착각하고 직구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을 놓쳤죠” 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유선정은 “제가 작년에 우익수 앞 땅볼로 아웃된 이후로 인터뷰를 한 건 처음이에요. 그 때 그러고 나서 한 달 후에 다시 1군에 올라왔는데, 그 때까지도 그 얘기를 꺼내면서 저를 찾아오더라고요” 라며 말을 이었다. 유선정은 지난해 7월 10일 목동 롯데전에서 우익수 앞으로 빠른 타구를 날린 뒤 가르시아의 빨랫줄 송구에 1루에서 아웃된 희생양이었다. 유선정은 “팀이 연승 분위기일 때 함께 하고 싶었어요. 지난 5월에 팀이 9연패 후 1승을 하자마자 저는 2군으로 내려갔거든요. 그 이후로 1군에 처음 올라왔는데, 계속 좋은 분위기에서 함께 하고 싶어요” 라며 “일단 기회를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차피 선배들이 돌아오기 전에는 제가 해야 하니까 긴장하지 않아야겠죠. (허)준이 형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날의 영광을 누구와 나누고 싶느냐는 물음에 “제가 중 2때 야구를 시작했는데요, 부모님이 저 뒷바라지 하느라고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감사하죠.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 코치님들도 생각나네요. 모두 전화 드려야겠어요” 라고 대답한 유선정의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빛났다. 이제 유선정은 무명에서 히어로즈의 믿음직한 백업 포수로 탈바꿈했다. 남은 것은 1군 무대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다. 다음날 경기장에 나서면 전날의 영광은 잊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게 될 유선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