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WC 돋보기]아르헨전, 너무 빨리 맞불 놓은 게 '패착'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10.06.18 10: 23

[6월 17일 한국-아르헨티나(B조), 요하네스버그]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아르헨티나가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은 아니었기에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 많은 경기였다.

경기 초반 한국의 수비 운영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의 수비는 2선과 3선 간에 일정 간격을 유지해 압박과 커버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3선에 많은 수비수를 두었던 북한의 밀집수비와는 다른 방식이다.
이러한 수비 전술을 취한 것은 신체 능력이 좋은 차두리가 아닌 공간 이해도가 높은 오범석을 투입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수비 위주로 운영하되 수비만 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필자도 예전 관전평에서 수 차례 이러한 전술을 추천한 적이 있어 경기 초반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아르헨티나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박주영의 실책 이후 한국의 전술에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박주영의 자책골은 일단 앞에 있던 박지성의 점프로 시야가 가려졌고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다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실점 이후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선수들로서는 실점 후 만회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대가 아르헨티나였음을 감안하면 이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최소한 후반 중반까지 0-1 상황을 유지하고 그 이후에 승부를 거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실점 이후 팀이 공격적으로 나가면서 수비와 미드필더의 위치가 흐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초반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것을 보면 하프타임 때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이 만회골을 터트려 흐름을 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맞불 작전을 펼치는 것은 너무나 큰 위험 부담이 따른다.
또한 김남일과 이동국이라는 교체 카드와 시기도 적절치 못했다. 박주영은 실책을 기록한 후 심리적인 압박을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박주영이 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허정무 감독은 박주영을 일찍 교체시켜 새롭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하든지 아니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믿음으로써 자신감을 북돋아줘야 했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PK를 넣지 못한 안정환을 끝까지 기용했고 안정환은 결국 골든골을 터뜨렸다. 어떤 선수든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 당한다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실책을 기록한 박주영을 계속 밀고 가는 듯하다가 후반 막판에 교체한 것은 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박주영의 교체 카드가 이동국이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동국은 타겟형 스트라이커다. 상대가 아르헨티나였음을 고려하면 스스로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안정환이나 이승렬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이동국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에게 찬스를 만들어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미드필더가 약한 그리스나 나이지리아가 상대라면 활용도가 있겠지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는 그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다.
최종 엔트리 23인에 포함되지 못한 이근호 유병수 김영후 등의 부재도 아쉬웠다. 이동국과 박주영이 다른 스타일의 공격수임을 감안하면 단순히 박주영과 이동국의 파트너감 공격수들을 뽑기보다는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공격수를 한 명 정도는 더 보유하고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후반에 맞불 작전으로 전술을 바꿨다면 김남일의 투입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기성용은 창의적으로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는 선수다. 공격적인 운영을 시도하면 수비에 빈 공간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커버할 수 있는 김남일을 투입한 것이었겠지만 기성용의 공격력을 포기한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
아르헨티나는 한 팀이 전체적으로 압박을 가해도 무실점으로 막기 힘든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 팀이 압박을 풀고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상황에서 김남일의 교체 투입으로 인한 수비력 향상은 그 정도가 미미할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것이었다면 오범석 대신 차두리를 투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기량은 분명 일본과 북한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드컵에 나온 다른 팀을 압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즉 상대팀에 따른 맞춤형 전술로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 중반까지 기다리지 않고 후반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승부를 건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굳이 아르헨티나의 장점을 가장 살릴 수 있는 빠르고 공격적인 경기 템포를 스스로 제공해줄 필요는 없었다.
한국의 마지막 상대 나이지리아는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의 특징을 반반씩 갖고 있는 팀이다. 한국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팀이지만 개인 기량은 한국보다 우수한 팀인 만큼 이에 대해 충분한 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스와 경기를 통해 살펴본 나이지리아는 개인의 드리블 돌파와 스피드는 뛰어나지만 공격이 빠르거나 위협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 패스 타이밍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면에서 아르헨티나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골키퍼의 실력은 경이롭지만 수비진의 짜임새는 상당히 부족하다.
게다가 미드필더의 볼 소유력도 그리 좋지 못해 중원 다툼서 한국이 앞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샤니 카이타가 퇴장을 당해 한국과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전은 단지 16강 진출을 위한 통과 절차였다는 면에서 볼 때 이번 패배에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허정무 감독은 박주영의 실책 이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앞으로 경기서는 더욱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전의 초반과 그리스전을 떠올려보면 허정무 감독은 상대에 가장 적합한 전술을 효과적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감독은 스타팅 멤버 11명만 포메이션에 맞춰 배치하면 되는 간단한 직업이 아니다.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경우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국 선수들의 수준은 충분히 월드컵 16강을 노릴 수 있다. 후반 초반 아르헨티나와 맞불 작전을 펼치면서 비등한 경기력을 보였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다행히 나이지리아는 한국이 상대하기 편한 팀이다. 스피드와 창조력이라는 한국의 장점을 살리는 플레이가 곧 나이지리아의 약점을 노리는 플레이가 될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비록 완패를 당했지만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맞섰다. 패배에 기죽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계기로 심기일전해 16강 진출, 나아가 2002 월드컵의 4강 신화를 재현하기를 기대한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요하네스버그(남아공)=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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