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독일-잉글랜드(16강전), 블룸폰테인]
심판의 오심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독일과 잉글랜드의 격돌은 경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빅매치다. 실제 전반전 양 팀이 보여준 전술은 현대 축구의 교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양 팀 모두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짧은 패스에 의한 공격을 진행했다. 양 팀 모두 과거에는 롱패스를 활용하는 단순한 공격을 선호했는데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역시 유럽팀답게 양 팀 모두 견고한 수비 전술을 선보였다. 신속한 수비 전환을 바탕으로 중앙에서 수비의 수적 우위를 점했다. 이러한 완벽한 수비 태세가 갖춰지면, 상대 팀은 지공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하기 때문에 골찬스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득점이 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이라는 점수 차이가 난 이유는 순간적인 집중력과 행운의 결과였다. 물론 독일의 실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결과였지만 잉글랜드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이 남을 경기였다.
우선 독일 클로제의 첫 번째 득점은 잉글랜드 중앙 수비진의 어이없는 실책서 비롯됐다. 골키퍼의 킥이 최종 공격수의 1대1 찬스로 이어지고 골까지 연결되었다는 점은 이렇게 수준 높은 수비전술을 선보이던 경기에서 나오기 힘든 장면이었다. 잉글랜드로서는 퍼디난드의 공백이 아쉬운 순간이었고 독일로서는 클로제의 집중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반면 독일의 두 번째 득점은 완벽한 전술에 이은 이상적인 골이었다. 흔히 감독은 공격수에게 볼을 갖고 있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상대 수비진의 균형을 깨기 위함이다.
독일의 두 번째 득점은 최종 공격수인 클로제와 뮐러, 포돌스키의 합작품이었다. 우선 중앙 공격수인 클로제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그를 마크해야 하는 잉글랜드 수비진을 왼쪽으로 치우치게 했다. 이 때 오른쪽 미드필드인 뮐러가 원래 클로제의 자리인 중앙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왼쪽으로 치우친 잉글랜드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오른쪽 윙백까지 뮐러를 맡기 위해 그의 자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클로제와 뮐러의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 잉글랜드의 오른쪽 빈 공간에서 포돌스키는 여유있게 두 번째 골을 넣을 수 있었다. 감독이 가장 이상적으로 바라는 형태의 수준 높은 득점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잉글랜드로서는 2골이나 먼저 실점했기 때문에 수비진의 밸런스를 포기하는 위험 부담을 감수한 채 공격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최종 수비수인 업슨이 제라드의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켰다.
사실 양 팀의 실력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경기에서는 흐름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2-1 상황에서 잉글랜드가 동점골을 기록했다면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 그런 시점에서 발생한 심판의 오심은 잉글랜드 입장에서 매우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잉글랜드 람파드의 슈팅이 독일의 크로스바를 맞은 뒤 골라인을 넘어갔지만 심판은 역회전이 걸린 공이 다시 필드로 돌아나오자 이를 골로 인정하지 않았다. 잉글랜드가 추격할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던 중요한 순간이었음을 고려하면 단순히 한 골을 날린 것이 아니라 경기 결과 자체를 바꿔버린 최악의 오심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오심으로 인해 잉글랜드는 후반전에서도 수비를 포기한 채 공격적으로 나서야 했고 이후에도 독일은 역습을 통해 쉽게 두 차례 추가골을 넣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중앙 수비수의 실책으로 인한 첫 번째 실점과 동점골이 될 수 있었던 람파드의 슛이 골로 인정을 받지 못한 두 상황이 결국 잉글랜드의 패인이라 할 수 있다. 잉글랜드로서는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수비를 포기하고 공격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결국 4-1 대패로 이어진 것이다.
심판의 오심으로 인해 승리가 빛이 바래긴 했지만 독일은 매우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클로제와 포돌스키는 소속팀에서 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팀의 주전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두 선수가 골을 넣어주면 감독을 중심으로 팀의 사기가 올라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외질과 뮐러는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인데도 불구하고 볼터치, 패스 타이밍, 볼 키핑력 등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있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특히 외질은 순발력과 상황 판단력까지 갖추고 있어 이 대회를 포함해 향후 독일과 유럽 축구를 이끌어갈 중심 선수로 자리잡을 것 같다.
독일의 대진운이 좋지 않아 우승을 점치기는 아직 망설여지지만 독일은 현재 살아남은 유럽 팀 중 가장 유럽다운 축구를 하고 있다. 유럽 축구를 즐겨보는 팬이라면 이번 대회의 독일을 주목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