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카 인디아! ①인도의 시작과 끝, 델리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0.09.27 11: 03

“마음은 쉽게 겁을 먹기 때문에 때로는 속일 필요가 있어. 큰 문제가 생기면 가슴에 대고 얘기해 봐. 네게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줄거야. 알 이즈 웰”
인도 영화 <못 말리는 세 친구(3 idiots)>에 주술처럼 등장하던 한마디, 알 이즈 웰(Aal izz Well). 영화가 끝나고도 내내 흥얼거리던 이 한마디에 인도가, 인도인이,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슬픔이 없는 나라. 인도

인도에서는 아쇼카(Ashoka)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호텔, 레스토랑은 물론 나무에까지 ‘아쇼카’라 이름 붙여 부른다. 이는 인도 최초로 통일 국가를 이룬 아쇼카 왕의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단어가 내포한 의미가 인도인의 삶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아쇼카는 산스크리트어로 ‘슬픔이 없는’ ‘근심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인 ‘노 프로블럼(No problem)’과도 일맥상통한다. 그중에서도 흔히 무우수(無憂樹)라고 불리는 아쇼카 나무는 석가의 어머니 마야 왕비가 소복하게 핀 꽃의 아름다움에 홀려 이 나무를 잡는 순간 산기를 느끼고 나무 밑에서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인도인들은 아쇼카 나무를 일생에 걸쳐 행복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고 특히 사랑에 빠진 미혼 여성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다.
인도인들의 무한 긍정의 힘은 도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로 요란한 그곳에서는 운전자의 미술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디자인의 ‘블로 혼(Blow Horn)’과 ‘혼 플리즈(Horn Please)’를 만날 수 있다.
차 뒷면을 꽉 채울 만큼 큼지막하게 쓰여진 이 문장은 ‘경적을 울려 주세요’라는 의미로, 지나친 경적에는 벌금까지 부과하는 우리 정서에는 다소 황당한 부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차량 구입시 사이드미러가 옵션 사항인 인도에서는 대부분 사이드미러 없이 운전하거나 운전석에서만 부착하는 경우가 많아 이 문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사이드미러 없이 어떻게 운전하냐고 인도인들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다. ‘노 프로블럼!’ 바쁘면 경적을 울리면 되고 아니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식사 도중 전력 과부화로 불이 나가도, 기온 40도 습도 90%인 사우나 날씨에 에어컨이 비실거려도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프로블럼’인 것들이 간단하게 ‘노 프로블럼’되는 나라, 조금 불편하지만 크게 행복한 나라, 이게 바로 인도다.
◇델리에 없으면 어디에도 없다
델리는 아그라, 자이푸르로 이어지는 골든 트라이앵글의 꼭지점이자 인도 여행의 출발점이지만, 보통은 오랜 기간 머무르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인도의 혼은 시골에 있다’는 간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도의 모든 것은 델리에 있다’. 델리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양립하고 있으며 고대부터 여러 왕조가 흥망을 거듭해 온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또 이슬람 색채가 강해 인도 특유의 유유자적함을 경험할 수 있으며 본격적인 인도 여행에 앞서 숨 고르기에도 적합하다.
델리는 무굴제국 시대의 구시가지인 올드델리와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뉴델리가 마치 온탕과 냉탕처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여행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올드델리는 건축광이었던 무굴 황제 샤자한의 창조적인 욕망에 의해 생긴 성벽 도시다. 이 옛 도시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붉은 화강암 성벽으로 둘러싸인 ‘붉은 성(Red Fort)’과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다. 특히 붉은 성 맞은 편 언덕에 웅장하게 서 있는 자미 마스지드는 샤자한 황제의 마지막 건축물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미 마스지드는 흑백색의 양파가 살포시 얹어진 듯 보이는 둥근 지붕과 미나렛(Minaret)이라 불리는 두 개의 첨탑으로 이뤄져 있다.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하며 카메라를 가지고 입장하려면 200루피(약 5000원)를 내야 한다.
뜨거운 태양에 적당히 데워진 사암의 온기를 느끼며 사원으로 들어서면 광활한 광장에 눈이 시원해진다. 총 수용 인원이 2만5000명에 이르는 광장 가운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사원에 들어가기 전 손과 발을 씻고 입을 헹구는 작은 연못이 있다.
올드델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높이 40m의 첨탑에 오르면 된다.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미로처럼 얽혀있는 시내와 고요한 사원이 오묘한 대조를 이루며 펼쳐진다. 단 첨탑에 오르려면 별도의 입장권(100루피, 약 2500원)을 구입해야 한다.
뉴델리는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식으로 조성된 계획도시로 올드델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방사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 주변에는 잘 가꿔진 잔디밭이 이어지고 잘 정리된 상점들은 인도의 현대 문명을 느끼게 한다.
‘인도까지 와서 현대 문명이 웬말이냐’며 손사레 치고 돌아선다면 단언컨대 땅을 치고 후회한다. 바로 뉴델리에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인 타지마할이 모델로 삼은 ‘후마윤의 묘(Humayun’s Tomb)’와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꾸뜹 미나르(Qutab Minar)’가 있기 때문이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후마윤의 묘는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남편 후마윤 왕을 기리기 위해 하지 베굼 왕비가 지은 것으로 인도 최초의 정원식 무덤이다. 타지마할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얀 돔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붉은 건물이 아쇼카 나무가 심어진 널찍한 정원과 어우러져 편안한 기운을 내뿜는다.
입구와 무덤은 수로로 연결돼 있다. 이는 물이 있어야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가기 전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이슬람 교리에 따른 것이다. 무덤 안은 격자무늬 햇살로 눈부시다. 촘촘하게 짜인 격자무늬 창으로 걸러진 태양은 옷자락이 발에 걸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후마윤의 애통함을 달래려는 듯 그의 묘를 정확하게 비춘다.
후마윤의 묘와 함께 뉴델리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꾸뜹 미나르는 높이 72.5m의 거대한 탑으로 고개를 한껏 치켜 올려야 겨우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꾸뜹은 이 탑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고 미나르는 탑이라는 뜻으로,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노예왕조를 세운 꾸뜹 웃 딘 아이바크 왕이 힌두교도에 대한 승리를 기념해 쌓은 탑이다. 총 5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1~3층은 붉은 사암으로 4~5층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빨강, 파랑, 노랑 등 여러 색이 뒤섞인 기둥에 정교한 솜씨로 양각된 코란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해지는 사암의 특성 때문인지 마치 장인의 손길을 거친 나무 조각 같다.
꾸뜹 미나르 내부는 나선형으로 379개의 계단을 통해 위로 오를 수 있고 각 층마다 설치된 발코니에서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었으나, 1979년 단체여행을 온 학생들의 압사사고 이후 출입이 통제됐다. 입장료는 주변 유적지를 포함해 250루피(약 6400원)다.
△한결 편안해진 델리 여행
델리가 변하고 있다. 수많은 인파와 기약 없는 대기시간으로 여행의 시작과 끝을 힘들게 하던 뉴델리의 관문 인디라간디공항이 지난 7월 초현대식 시설로 단장을 마치고 편안한 여행을 책임진다. 이와 함께 델리에는 최근 3년간 에어컨을 장착한 최신식 버스가 대폭 늘어남에 따라 여행객의 쾌적한 여행이 가능해졌다. 에어컨이 구비된 버스는 빨강색으로 일반 버스인 초록색, 파란색 버스보다 요금이 비싸다.
글·사진 인도 델리=여행미디어 박은경 기자 www.tourmedia.co.kr
취재협조=인도정부관광청 02-2265-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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