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패배는 그냥 패배가 아니었다. 옷을 벗을 각오를 해야 하는 진짜 의미의 전쟁터였다. 천하의 선동렬 감독도 결국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30일 선 감독의 전격적인 사퇴 배경에도 결국에는 한국시리즈 4연패가 자리하고 있다.
▲ 천추의 한이 될 KS 4연패
삼성이 선동렬 감독을 물러나게 한 데에는 지난 10월 한국시리즈 4연패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SK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4연패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팀 타율이 1할7푼5리에 불과했고, 경기당 득점도 2.5점에 그쳤다. 득점권 타율이 1할도 되지 않는 6푼9리로 무기력 그 자체였다. 한국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삼성이 리드한 것도 1차전 5회초 3-2로 역전한 순간이 유일했다. 그 리드도 5회말 역전을 당하며 바로 내주고 말았다.

한국시리즈 4연패 직후 선동렬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해 팬들께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선 감독은 "작년 5위에서 올해 2위까지 올라온 데에는 젊은 선수들의 역할이 컸다. 비록 4연패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는 큰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고, 팀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스스로 공부가 됐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랬던 선 감독이 2개월 여 뒤 사령탑에서 물러난 것이다.
선 감독은 당장의 성적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직후에도 "시즌 중 누차 얘기했지만 지금 당장 우승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2~3년간 팀을 더 강하게 만들 생각이다. 내년부터 당연히 우승에 도전해야겠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선수가 어디 있나. 큰 경기를 거울 삼아 조금조금씩 더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달 초 든든한 후원자였던 김응룡 사장과 김재하 단장이 나란히 퇴임하면서 선 감독의 중장기적인 계획도 헝클어졌다. 후임 김인 사장은 취임식장에서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강조했다.
▲ KS 패배 삼성 감독들의 운명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을 물러나게 한 것은 삼성에 익숙한 일이다. 1982년 원년 삼성은 '대구야구의 아버지' 서영무 감독의 지휘 아래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OB에 1승1무4패로 무릎을 꿇었다. 지긋지긋한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서 감독은 시즌 초반 12승1무17패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중도 퇴진했다. 1984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영덕 감독도 그 해 롯데와 한국시리즈에서 3승4패로 패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에도 불구하고 1986년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1승4패로 패하자 김 감독은 스스로 물러났다.
1987년 부임하자마자 삼성을 사상 첫 팀 타율 3할로 이끈 박영길 감독도 같은 운명이었다. 전후기 모두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OB와 5차전까지 혈투를 치르고 올라온 해태와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그러나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1승도 못하며 4연패했다. 프로야구 사상 첫 4전 전패 한국시리즈. 이듬해 삼성은 후기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지만 빙그레에 3연패했다. 시즌 종료 후 그룹 감사를 받은 후 박 감독은 해임됐다. 삼성 그룹의 '일등주의'가 야구단에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1990년 정동진 감독 사례에서 일등주의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박 감독에 이어 삼성 지휘봉을 잡은 정 감독은 2년째였던 1990년 페넌트레이스 4위에 그쳤으나 포스트시즌에서 승승장구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를 2승으로 일축하더니 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3전 전승으로 격파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LG에 4전 전패한 것이 치명상이었다. 재계 라이벌인 LG에 당한 완패로 포스트시즌 내내 보여준 삼성의 투혼은 완전히 묻혀버렸다. 정 감독도 한국시리즈 직후 경질됐다. 1993년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2승1무4패로 패한 우용득 감독만이 2년을 더 머물렀다.
이후 삼성은 서정환 김용희 등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우승을 못 이룬 감독들을 차례로 갈아치웠다. 2001년 두산에 2승4패로 패퇴했던 김응룡 감독은 이듬해 삼성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2004년 현대와 한국시리즈에서 2승3무4패로 준우승한 이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보기 좋은 모양새를 갖췄지만 결과적으로는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스승에게 지휘봉을 물려받은 선동렬 감독도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삼성 감독들의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선 감독은 김동엽, 김영덕, 정동진, 김성근, 김응룡 감독에 이어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고도 바로 사령탑에서 물러난 역대 6번째 감독으로 남게 됐다. 만약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까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바로 물러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선 감독 퇴진의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한국시리즈 4연패는 좋은 구실이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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