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창성, "타자도 죽어라 노력, 대충할 수 없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1.23 08: 27

"저는 데뷔 후 처음으로 상대한 타자가 최희섭(KIA) 선배라서 타자가 너무 잘 보였어요. 너무 떨려서 첫 등판 때 포수 미트밖에 안 보인다 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웃음)
 
2008년 5월 경기도 이천 두산 베어스 2군 훈련장에서 만난 한 신인 투수와의 대화 중 하나다. 처음 이야기를 나눈 사이인데도 그는 유순해보이는 외양과 달리 넉살 좋게, 그리고 자신감 있는 어조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언젠가 이 선수를 1군에서 자주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고 그는 머지 않아 팀의 주축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태극마크까지 가슴에 다는 기염을 토했다.

 
사이드암 고창성(27). 3년 전 경성대를 졸업하고 즉시전력감이라는 평가 속에 2차 2순위로 두산에 입단했으나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첫 해를 그르쳤던 그는 2009시즌 64경기 5승 2패 16홀드 1세이브 평균 자책점 1.95를 기록했다. 신인왕 타이틀은 동료이자 절친한 후배인 이용찬에게 양보했으나 내실있는 활약으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도 고창성은 73경기에 나서 6승 4패 22홀드 평균 자책점 3.62의 성적으로 선배 정재훈과 함께 승리 계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시즌 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했고 일등공신이 되지는 못했으나 팀의 일원으로서 금메달 기쁨과 함께 병역 특례 혜택까지 받았다. 대졸 선수로서 혜택이 절실했던 고창성에게는 더욱 뜻깊은 금메달이었다.
 
일본 전지훈련에 한창인 고창성을 22일 오이타현 벳푸시에 위치한 선수단 숙소 선밸리 호텔에서 만났다. 저녁식사를 갓 마치고 인터뷰에 응한 고창성은 "팀 우승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따낸 뜻깊은 시즌"이라고 1년 전을 자평하며 운을 뗐다.
 
▲ 계투에게 평균 자책점은 '복불복'
 
지난 시즌 고창성은 풀타임 두 번째 시즌 초반 피홈런 갯수가 많아져 고전하기도 했으나 이내 제 페이스를 찾으며 이기는 카드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덕분에 대표팀 승선 경쟁상대였던 손영민(KIA)을 제치고 태극마크를 달았고 금메달로 병역 혜택까지 얻었다. 개인적으로 뜻깊은 시즌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평균 자책점은 부쩍 높아졌다. 계투 요원의 평가 척도 중 하나가 되는 WHIP(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률)을 살펴보면 고창성은 2009년 0.99를 기록한 뒤 지난해 1.02로 자신이 출루시킨 주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대신 피장타율은 2할7푼1리에서 3할4푼으로 제법 높아졌다. 3할4푼의 피장타율도 분명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2009년 단 한 개의 홈런을 허용했던 고창성은 7개의 아치를 내주었다. 그러나 고창성은 그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경기 마다 각각 다르잖아요. 어떤 날은 정말 깨끗하게 잘 던져서 실점 없이 마칠 수 있지만 어떤 날은 앞선 투수가 남겨 놓은 주자들의 득점을 내줄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제가 남겨 놓은 주자들이 다음 투수의 적시타 허용으로 고스란히 실점 연결이 되기도 하니까요. 사람이 매일 좋은 컨디션을 발휘할 수 없는 노릇이니 승계 실점을 떠안는다고 동료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불펜투수에게 평균 자책점은 그 시즌의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복불복과 같은 요소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요".
 
모든 프로스포츠는 순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쏟는다. 특히 계투 요원 같은 경우는 경기에 출장하지 않더라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불펜에서 몸을 풀며 어깨를 덥혔다가 위기 상황이 지나가면 다시 덕아웃으로 물러나는 경우도 많다. 근소한 리드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오르는 '5분 대기조' 고창성은 경기 출장 없이 불펜에서 제법 많은 공을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팬들이 생각하는 수고로움이 훨씬 더 큰 케이스 중 하나.
 
"불펜투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경기를 이기기 위해 대기 발령을 받고 불펜에서 몸을 푸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확실히 받는 자리에서 경기 수훈 선수로 꼽히는 것도 좋겠지만 요긴한 순간 출격해서 제 몫을 다하는 것도 팀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잖아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 계투 징크스? 겁 먹고 던지면 아무도 못 이긴다
 
국내 프로야구서 90년대 초중반 투수 분업화 바람이 분 이후 계투 요원의 활용도는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 선발 투수로부터 롱릴리프가 바통을 이어받고 셋업맨-마무리로 이어지는 계투 공식은 박빙 경기서 당연한 구도가 되었다.
 
그러나 '완투보다 더 위험한 것이 연투'라는 이야기도 있듯 순수한 중간 계투로서 4~5년 꾸준히 시즌 활약을 이어간 투수는 거의 없다. 실제로 국내에서 선발이나 마무리, 혹은 짧게 던지는 원포인트릴리프를 제외하고 롱릴리프 및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큰 부상 없이 롱런한 경우는 조웅천(전 SK) 정도에 불과하다. 조웅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기 관리 능력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더욱 값진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래서 계투 요원 사이에는 '계투 4년차 징크스'라는 이야기가 종종 떠돌기도 한다. 실제로 2009시즌까지 3년 간 계투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임태훈(두산)도 4년 차이던 지난해 허리 통증으로 고전하며 선발로 보직 변경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과부하를 피할 수 없는 보직인 만큼 계투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르쳐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풀타임 두 시즌을 보낸 고창성에게 그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과부하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계투 4년 징크스'를 피하기 위한 자기 관리 요령 등을 알고자 던진 질문이었으나 그의 답변은 예상과 전혀 반대로 흘러갔다. 자기 관리는 프로로서 당연히 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투혼을 불사른다는 답이 나왔다.
 
"징크스 하나하나 걱정하면 야구를 어떻게 해요.(웃음) 우리 팀만이 아니라 다른 팀 훈련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타자들도 투수들을 공략하기 위해 죽어라 훈련하는 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아, 여기서 더 던지면 팔이 아프겠구나'하는 생각으로 겁 먹고 던지면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시즌을 치르다가 부상이 없을 수는 없어요. 다른 투수들도 저마다 크고 작은 통증을 안고 던지니까. 그렇게 던지다가 또 통증을 이기고 나서는 경우도 있고 정말 그게 악화되서 수술하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하위타선에 포진된 선수라도 아마추어 시절에는 다들 4번타자였고 에이스였고 태극마크도 달아봤던 선수들인데 쉽게 생각할 수 없어요. 투혼을 불사르면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던지는 겁니다".
 
▲ '하다보면 된다' 욕심 갖지 않고 열심히
 
고창성의 부모님은 두산 경기가 있을 때마다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모두 현장을 찾아 아들을 응원하는 지극 정성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버지 고재신씨는 인테리어 공사 중 추락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쳐 거동이 불편함에도 고창성이 등판할 수도 있는 두산 전 경기를 모두 참관한다.
 
전지훈련 중이라 당분간 직접 뵙지 못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묻자 고창성은 애써 웃음을 보이려 노력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역력한 가운데 그의 눈망울은 잠시 붉게 물들기도 했다.
 
"어렸을 때 보면 부모님이 경기장에 찾아오실 경우 오히려 부담을 갖는 친구들도 많이 봤어요. 저는 오히려 경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마운드에 서서도 관중석을 둘러보면 당연히 부모님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경기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찾아주시는 건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경기 중에 부모님의 모습을 찾는 데 힘을 쏟기보다 그 힘을 경기에 더욱 몰입하는 데 쓰고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게 진짜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선린정보고 시절 키가 생각만큼 자라지 않아 1년 유급을 택하기도 했던 고창성은 경성대 입학 후 빛을 본 케이스다. 장원삼(삼성)-김기표(LG) 원투펀치의 졸업 후 에이스로 활약하며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고창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밝혔다.
 
"중학교 시절 은사께서 지금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당시 감독님이 '하다보면 된다'라는 말씀을 항상 하셨어요. 그 때 저는 키도 작도 야구도 잘 못하고, 그렇다고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계속 열심히 하다보니 대학 시절에는 우승도 경험하면서 기량이 급성장하더라구요".
 
개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소속팀 두산은 10년 만의 우승이 목마른 팀이다. 그 또한 고창성의 목표 중 하나지만 그는 결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목표 의식으로 인해 과욕을 부리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었던 만큼 마음을 비우고 '하다보면 되는' 정신으로 시즌을 치르겠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연히 우승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요. 고교 시절에는 4강에도 올라가기 힘들었는데 대학 시절에는 제법 우승 경험을 많이 쌓았거든요. 이기는 법도 알게 되고. 꼭 막아야 할 상황을 스스로 막아내고 우승하면 기분 최고지요.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을 펼쳐 팀 우승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대신 너무 의식하다가 과욕을 부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farinelli@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