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팀에서 라이벌을 설정하기보다 제 자리를 확고히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릎 부상으로 그르쳤던 지난해를 뒤로 하고 다시 선다. '김상사' 김상현(31. KIA 타이거즈)이 2011시즌 명예회복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2009시즌 김상현은 역대 최고의 신데렐라로 우뚝 섰다. 그 해 4월 동료 내야수 박기남과 함께 우완 강철민의 반대 급부로 LG에서 KIA로 이적한 김상현은 3할1푼5리 36홈런 127타점의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내는 동시에 팀 우승의 선봉이 되었다.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첫 이적생 최우수선수(MVP)가 된 것.
그러나 지난 시즌은 아쉬움이 그득했다. 무릎 수술 여파로 불완전하게 시즌 개막을 맞은 김상현은 잇단 결장 속 79경기 출장에 그치며 2할1푼5리 21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배팅 파워는 과시했지만 타율이 1할이나 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아쉬움을 샀고 팀은 포스트시즌에도 들지 못했다.
26일 일본 미야자키현 휴가시 오쿠라가하마 구장에서 만난 김상현은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 반성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전의 기억을 꺼내보는 자리로 이어지며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겠다는 각오로 끝을 맺었다.
▲ 허리 노릇 충실히…앞서서 단합 이끌겠다
황병일 수석코치는 2010시즌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김상현의 부재가 잦았음을 이야기하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CK포 동시 출격 경기가 급격히 줄어들며 '외로운' 최희섭을 향한 견제가 극심해졌고 김상현이 왼 무릎 연골 수술로 결장했던 시기 팀은 16연패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가장 쓰라린 부분을 건드리자 김상현은 옅은 웃음과 함께 한숨을 먼저 뱉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국 팀을 위해 100%의 컨디션으로 나서지 못한 아쉬움의 한 마디였다.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제 잘못이지요. 상대적으로 적은 경기에 나서서 20홈런 이상을 때려냈다는 게 면죄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팀 성적도 하락했으니. 정말 아쉽습니다".
어느덧 프로 12년차가 된 김상현. 서른 즈음에 그동안 갖고 있던 잠재력을 유감없이 터뜨리며 대기만성형 신데렐라가 된 김상현은 반짝 스타를 넘어선 '스테디 슬러거'를 꿈꾼다. 그러나 그 이전에 팀의 단합을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최)희섭이 형이 주장이 되었고 그 위에도 선배들이 계십니다. 그렇다고 제가 수수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나서서 후배들을 다독이고 또 열심히 뛰면서 단합된 한 팀을 만드는 것. 더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군 후배들이여, 절대 포기하지 말길
"2군 선수들이 저를 보고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시즌 후 각종 개인상을 휩쓸며 김상현이 수상 소감으로 밝힌 한 마디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상현은 이전까지 주전보다는 유망주라는 수식어가 익숙했기 때문.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김상현은 1군 경험이 아예 없었던 유망주는 아니었다. 2002시즌 도중 KIA에서 LG로 이적했던 김상현은 2003시즌 본격적으로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듯 했으나 팔 골절로 2할6푼9리 7홈런 28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2004시즌에는 처음으로 100경기에 출장해 2할4푼2리 9홈런 35타점을 기록했다.
2군서 타격 기록을 휩쓸며 LG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상현은 '캐넌' 김재현(전 SK)이 달던 7번을 받으며 화려하게 복귀했으나 팬들의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는 성적은 올리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고 특히 2008시즌에는 1,2군을 오가며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팬들의 비난에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라는 것이 당시 김상현을 떠올린 LG 구단 관계자의 증언.
김상현 또한 "다른 유망주에 비하면 난 1군 경험이 많았던 편이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팀이 원하는 역할, 팬들이 바라는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가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데 대한 자괴감이 극심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항상 유망주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가 자리가 없어지니 내심 서운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비시즌 동안 이것저것하면서 발버둥쳤는데도 마음대로 안되니 속이 쓰렸지요". 정성훈의 프리에이전트(FA) 이적 이후 김상현은 1루 수비 훈련도 나서며 멀티 플레이어 변신을 꾀했으나 2009년 초 전지훈련서 조기귀국하는 비운까지 맛보아야 했다.
자신 앞의 그물망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겼던 김상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기다림 속 맞은 2009시즌 덕택에 2년 전 부와 명예를 얻은 주인공인만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를 부탁하자 흔쾌히 답한 것.
"지금 당장 뛰어난 선배가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세대교체의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2군에서도 출장 기회를 쌓으면 1군 풀타임리거로 자라날 유망주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다만 힘들다고 중도에 일찍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더욱 야구에 정진했으면 좋겠어요".

▲ 라이벌보다 내 자리 먼저 찾겠다
사실 현재 김상현은 긴장 속에서 전지훈련을 치르고 있다. 거포 유망주 김주형이 상무에서 제대하며 '김주형이 3루를 맡고 김상현이 외야 수비 훈련을 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잠재해있기 때문. 수술 받은 왼 무릎이 완치되었음을 코칭스태프 앞에서 증명하고 중심타자이자 3루수로서 다시 명성을 떨치겠다는 각오다.
"이대호(롯데)와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 팀 내에서 제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해도 좋은 후배들이 가세하지 않습니까. 자존심을 다시 세운다거나 다른 팀에서 라이벌을 찾기보다 일단 제 자리를 먼저 찾겠습니다".
그가 언급한 수치는 50홈런과 3할 그리고 100타점 이상. 그러나 김상현은 이를 반드시 세워야 하는 기록이 아닌 그만큼 다가서겠다는 지향점으로 삼았다.
"50홈런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은 확실히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1군 경험도 많이 쌓았으니 예전 유망주 꼬리표를 달고 다닐 때와는 달라요. 3할-100타점 이상이라는 수치도 그 기록에 '이게 아니면 안된다'라는 당위성을 갖기보다 '노력하면서 다가간다'라는 생각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목표를 세운 것과도 같지만 그는 유망주 시절 기회를 얻고 또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자리를 뺏겼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리고 KIA에 다시 둥지를 틀어 탁월한 파괴력으로 제 자리를 스스로 만든 케이스다. 자리를 뺏기고 또 누군가의 자리를 꿰찬 경험을 모두 갖고 있는 김상현이었기 때문에 신중한 자세로 지향점 수치에 대해 답한 것이다.
"스스로 정말 절박했다"라고 2년 전 이적 당시를 떠올리며 자신을 되돌아본 김상현. 최근 2시즌 동안 선수로서 등락폭이 가장 컸던 이들 중 한 명인 그는 신중하고도 강렬한 눈빛으로 2011년 개막전을 기다리고 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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