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눈치 싸움이다. 이범호를 놓친 한화로서는 두 눈을 부릅 떠야 할 상황이다.
소프트뱅크 이범호가 KIA에 입단함에 따라 그의 국내 원소속팀이었던 한화는 FA 보상제도를 받게 됐다. 이범호라는 확실한 카드를 잃었다는 충격이 크지만 쓸 만한 보상선수를 뽑는다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범호가 종전 FA 보상규정을 소급 적용받기 때문에 한화는 KIA가 지정한 18명의 보호선수를 제외한 한 명을 고르게 된다. 애초 이범호가 없는 선수였다면 보상선수로 조금이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역대 프로야구 보상선수는 총 15명이 있었다. 지난 2000년 박충식(삼성→해태) 김상엽(삼성→LG)을 시작으로 2001년 최익성(LG→해태) 2003년 조규제(현대→SK) 2004년 문동환(롯데→두산→한화) 신종길(롯데→한화) 신동주(KIA→삼성) 손지환(LG→KIA) 노병오(삼성→현대) 2005년 안재만(LG→SK) 이정호(삼성→현대) 2006년 정병희(한화→SK) 2007년 신재웅(LG→두산) 2009년 이승호(LG→SK) 이원석(롯데→두산) 등이 있었다.

가장 큰 성공 사례는 한화에서 있었다. 바로 문동환이다. 정수근의 보상선수로 두산에 지명된 당일 채상병과 맞트레이드돼 한화 유니폼을 입은 문동환은 재기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우려대로 이적 첫 해 4승15패 평균자책점 5.37로 리그 최다패 투수가 됐다. 하지만 당시 사령탑이었던 유승안 감독은 문동환의 부활에 기대를 버리지 않고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선발로만 22차례 등판시킬 정도로 믿고 기회를 줬다.
그 기대가 이듬해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05년 10승9패 평균자책점 3.47로 보란 듯이 부활한 문동환은 2006년에도 16승9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하며 류현진과 함께 막강 원투펀치를 구축했다. 그해 한화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문동환은 선발과 불펜을 아우르며 투혼을 발휘했다. 비록 2007년 5승3패 평균자책점 3.11이라는 수준급 성적을 남긴 뒤 부상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했지만 한화로서는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문동환과 같은 해 보상선수로 한화에 넘어온 신종길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이적 첫 해였던 2004년 9월21일 대전 두산전에서 최연소(20세9개월21일)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게 전부였다. 2004년 49경기에서 타율 2할2푼4리 1홈런 10타점에 그친 뒤로는 더 이상 1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군입대 등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2008시즌을 마친 뒤 강동우와 맞트레이드돼 KIA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KIA 이적 후 신종길은 가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화로서는 7년 만에 보상선수 지명 기회를 얻었다. 아직은 조심스런 입장이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천천히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짧게 말했다. 눈치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말 한마디 떼기 쉽지 않다. 신인선수의 보호선수 포함 여부를 놓고도 문제가 생긴 상황. 한화는 어떤 식으로든 팀에 득이 될 수 있는 보상선수를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2의 문동환'을 찾아 팀 전력에 플러스가 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포지션에 누수가 있는 만큼 한화는 다각도로 검토할 계획이다.
waw@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