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사무친 것이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찰리 매뉴얼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의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소개에 루벤 아마로 주니어 단장의 첫 마디는 "박찬호는 좋은 기회를 잃었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OSEN은 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클리어워터 브라이트 하우스 필드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경기를 취재했습니다. 이날 선발은 '특급 좌완' 클리프 리(33)의 필라델피아 복귀전 때문인지 관중들 뿐 아니라 기자들도 많았습니다.
경기를 마친 뒤 기자들은 1층 클럽하우스 옆 기자회견실에서 찰리 매뉴얼 감독과 이날 경기에 대해서 질의 응답을 가졌습니다. 10여분 간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저는 매뉴얼 감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는 TV 방송국과 인터뷰를 마치고 감독실로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10여분이 넘게 매뉴얼 감독과 인터뷰를 하던 중에 누군가 뒤에서 감독실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기억나십니까. 필라델피아 선수단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행사하는 아마로 주니어 단장이었습니다. 때마침 저는 매뉴얼 감독과 일본에 진출한 박찬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아시아 야구와 메이저리그 야구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3분여 뒤 매뉴얼 감독과 인터뷰는 끝났고, 매뉴얼 감독은 옆 의자에 조용히 앉아있던 아마로 주니어 단장에게 "헤이, 루빈. 한국에서 온 기자야"라고 소개를 해줬습니다. 그러자 아마로 주니어 단장은 "반갑다"라는 짧은 인사를 건넨 뒤 "박찬호는 계약 기간 2년 300만 달러(약 34억 원) 계약을 거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매뉴얼 감독과 홍보팀 직원도 웃음을 지었고, 아마로 주니어 단장은 "2년 300만 달러 계약을 박찬호가 거절했다"는 말을 반복하고는 "박찬호에게 안부를 전해주길 바란다"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갑자기 아마로 주니어 단장에게 궁금한 점이 생겨 "짧게 인터뷰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지금 감독과 회의가 있다"고 말해 박찬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아마로 주니어 단장이 박찬호를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난 2009년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45경기에 등판해 3승3패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했습니다. 박찬호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필라델피아 마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특히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에서는 햄스트링 부상과 신종플루의 악재를 딛고 호투하며 필라델피아의 2년 300만 달러 계약 제의를 받았습니다. 박찬호에게 계약을 제시한 주인공이 아마로 주니어 단장이었고요.
그러나 박찬호는 그 해 빼어난 성적 덕분에 오프시즌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당시 거론된 팀만 해도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컵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최소 5개 팀이었습니다. 박찬호가 필라델피아의 2년 300만 달러 계약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선발 투수가 아닌 불펜 투수를 맡아달라는 제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찬호는 여전히 선발 투수로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죠.
어찌됐던 박찬호는 2010시즌을 앞두고 뉴욕 양키스와 선발이 아닌 구원 투수로 1년 120만 달러(약 13억 원)에 계약했고, 시즌 초 햄스트링 재발로 고생하다 트레이드 마감 기한을 앞두고 피츠버그로 팀을 옮겼습니다. 물론 피츠버그에서 메이저리그 아시아투수 신기록(124승)을 달성하고 올해 일본프로야구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데요.
비록 매뉴얼 감독, 아마로 주니어 단장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박찬호가 2년 300만 달러 제안을 거절한 사실이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속내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agassi@osen.co.kr
<사진>필라델피아 시절의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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