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야구 기록의 두 얼굴, 공식기록과 고과기록(2)
OSEN 윤병웅, 기록 기자
발행 2011.07.21 09: 44

공식기록원들이 고과기록처럼 선수 기록을 앞에 놓고 개인별 승리 공헌도를 잘게 따져보는 고민과 직면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구원승리투수 결정이다. 때론 그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론 기록원들간에 의견이 갈려 고민이 오히려 깊어지는 일도 있다.
 
그러면 구원승리투수 결정에 있어 공식기록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부분의 주안점은 어디에 있는지, 기여도를 판단하는데 있어선 어떤 기준이 우선시 되는지를 올 시즌 일어났던 구원승 결정사례를 가지고 들여다보도록 하자.

 
지난 7월 12일 넥센과 삼성의 목동경기에서는 삼성의 안지만이 구원승리투수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큰 가중치를 부여 받고 있는 항목인 일명 ‘리드시점’을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구원승 결정에서 제외된 일이 있었다.
 
당시 안지만은 팀이 4-1로 앞서던 6회말, 선발 장원삼에 이어 등판했지만 1이닝 동안 4피안타 3실점하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말았는데….
 
삼성은 4-4 동점이던 7회초 다시 5-4 리드를 잡는 추가점을 뽑아내자, 7회말 부진한 안지만 대신 정현욱을 마운드에 올렸고, 이어 9회말엔 수호신 오승환을 투입, 경기를 승리로 매듭지었다.
 
이제 남은 고민은 구원승 결정. 선발 장원삼은 호투했지만 경기가 동점이 되는 바람에 자동 탈락. 삼성의 2번째 투수 안지만은 경기를 4-4 동점으로 만들었지만 7회초 팀이 다시 리드점수를 뽑아낸 덕에 리드시점을 보유한 투수로 등재.
 
따라서 안지만에게는 구원승을, 5-4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한 정현욱과 7-4에서 올라온 오승환에겐 각각 홀드와 세이브를 나누어 주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될 것 같았지만, 현장 공식기록원들의 생각과 판단은 달랐다. 안지만 대신 정현욱에게 승리투수 기록을 부여했다.
 
리드시점을 갖고 있는 투수라 하더라도 일시적이거나 비효과적인 투구를 선보이고, 그 뒤에 나온 투수가 리드를 유지하는데 있어 보다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판단될 경우, 나중에 나온 구원투수에게 승리투수를 기록한다는 구원승 규칙의 예외 조항이 안지만에게 적용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비교적 여유 있는 3점차의 리드를 한 순간에 톡 까먹은 안지만의 투구내용을 기록원이 비효과적인 투구로 판단한 결과였다.
 
또 다른 사례 하나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6월 24일 역시 넥센과 삼성의 대구경기. 5-3으로 앞서가던 넥센의 선발 문성현이 아웃카운트 1개를 남기고 5회말 2사 주자 1,3루 상황에서 강판 당하고 윤지웅이 구원 등판. 삼성 조영훈을 상대로 중견수 플라이를 유도해내며 위기를 넘긴 넥센은 6회말 마정길을 투입해 리드를 지켰고, 돌아선 7회초 4점을 추가해 9-3으로 멀찌감치 도망가는데 성공.
 
그러나 7회말 김대우-이보근으로 이어진 계투진의 난조로 삼성이 다시 5-9로 압박해 들어오자 넥센은 1사 주자 1,2루 상황에서 송신영 카드를 꺼내 8회까지 던지게 하며 사태를 급 수습했고, 9회말 손승락으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 경기의 구원승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구원승 결정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리드시점은 구원투수들 중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규칙에는 리드시점을 보유하고 있는 선발투수가 승리투수 자격미달로 제외될 경우,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기록원이 판단한 1명의 구원투수에게 승리투수 기록을 부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날 담당 공식기록원은 7회말 위기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송신영을 승리투수로 낙점했다. 넥센이 승리하는데 있어 송신영이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6회말에 나와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낸 마정길을 염두에 둔 기록원도 있었다.
 
투수들의 등판 당시 상황(점수차, 주자상황, 등판이닝)과 투구이닝 그리고 투구내용 등을 종합해 가장 효과적 투구를 선보인 구원투수 1명을 골라내는 작업특성상
기록원의 주관(경험과 야구의 흐름을 읽는 눈)에 따라 이처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가름이 쉽지 않았을 경우, 기록원의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통계기록이 아닌 현장감이다.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현장감은 일반적으로 팀에서 생각하는 고과기록과 맥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 1이닝을 던진 마정길(무실점)보다 불과 0.2이닝을 더 던졌을 뿐인 송신영(무실점)이 승리투수로 선택된 이유도 공식기록원의 눈에는 체감으로 다가오는 그의 비중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록지 내용을 근거로 이론적으로 접근, 마정길 쪽을 주장했던 타지 기록원들과의 생각차이 역시 현장감이 있고 없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밖에도 규칙상 5회말 위기상황을 잘 넘긴 윤지웅도 후보가 될 수 있지만, 1명의 타자만을 상대하고 물러난 까닭에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도 승리투수가 되는 요행성 횡재가 없진 않지만, 그런 경우는 대게 경기 종반에 해당하는 7회 이후에 등판해 위기상황을 잘 처리한 투수들이 기록을 챙겨가는 사례다. (이러한 경우의 공식기록상 구원승은 고과기록의 공헌도 수치와 대체로 비례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마정길과 송신영 여기에 윤지웅까지 기록원이 어느 투수를 구원승으로 점지하던 공감대를 얻지 못할 수는 있어도 규칙상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용의 비중과 경중을 오로지 기록원의 재량에 기대어 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행성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따로 떨어져 각자의 궤를 도는 공식기록과 고과기록이 업무상 가장 근접하는 순간이다)
 
혹자는 이를 잘못 해석,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식으로 곡해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결과도출이 기록원의 주관적인 판단이라 해도 도출과정 만큼은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야구규칙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야구를 많이 알고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은 때론 선수의 기록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경중을 먼저 따지려드는 우를 범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규칙이나 규정에 앞선 저울질은 공식기록이 아닌 고과기록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나날이 세분화되고 첨단화되어 가는 고과기록에 쓸리지 않도록 공식기록이 궁극적으로 지향, 추구해야 할 덕목을 두 단어로 축약하자면 그것은 '원칙과 균형'일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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