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곤은 2009년 우승의 주전 유격수였다.
KIA의 유격수 이현곤(30)이 안면부상을 입은 김선빈(21)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다. 타격과 수비에서 김선빈을 웃돌 정도로 제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팀은 당당히 선두에 올랐고 KIA는 후보선수들의 힘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전 유격수 김선빈이 5일 넥센 군산전에서 얼굴에 타구를 맞고 빠진 이후 44타수 16안타 타율 3할6푼7리의 타격감을 과시했고 무실책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현곤은 타율 2할8푼3리와 2개의 실책을 기록하고 있다. 타율은 2007년 타격왕을 차지한 이후 가장 높다. 주로 9번타순에서 찬스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김선빈이 빠진 공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현곤은 마음속으로 "나는 2009년 12년만의 우승을 이끈 주전 유격수였다"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당시 그는 3루수에서 유격수로 변신해 우승을 이끌었다. 어느새 그는 후보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2010년부터 주전자리를 김선빈에게 내주고 뒷방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현곤은 주전자리를 김선빈에게 내주었을까. 그는 안정된 글러브질과 송구 및 포구능력을 갖췄다. 다만 수비에서 좌우 이동폭이 짧았다. 그가 유격수에서 밀려난 것은 다분히 타격과 주루, 작전소화 등 공격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상 때문에 풀시즌 소화가 어려웠다. 조범현 감독이 김선빈이 젊고 근성있고 공격력과 주루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김선빈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2007년 타격왕 이후 타율 2할대 중반의 평범한 타자로 전락한 의문의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재능을 갖췄지만 고질적인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갑상선 이상과 발바닥 통증(근족막염)의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다. 아마도 타격왕 이후 급전직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7년 당시 타격왕과 최다안타왕을 따내면서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전경기를 소화했고 베이징올림픽 예선대회까지 참가하느라 쉬지 못했다. 결국 여기저기 몸에 이상신호가 왔고 다음해 부상에 신음하며 2할대 중반의 타자로 떨어졌고 자신감도 잃어버렸다. 재기를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부진은 매년 되풀이 됐다.
갑상선을 앓는 선수는 많이 뛰면 체력이 고갈된다. 체력이 고갈되면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 즉 아무리 탁월한 기술이 있어도 몸이 받쳐주지 힘들다. 마치 군인이 행군을 하다보면 체력이 떨어져 숟가락 들기도 힘든 것과 비슷하다.
그는 올해까지 1년 반 동안 후보생활을 해왔다. 거꾸로 보자면 체력을 많이 아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무더위와 본격적인 순위 전쟁이 벌어지는 후반기에서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김선빈의 복귀가 난망한 실정에서 2009년 V유격수 이현곤의 존재감은 절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sunny@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