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올스타전도 어느덧 30번째를 맞이했다. 최고의 별들이 함께 모인 축제의 장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이벤트 성격이 강한 올스타전이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었고 예기치 못한 해프닝들도 많이 벌어졌다. 역대 올스타전에서 나타난 특징과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되돌아본다.
▲ '미스터 올스타' 산실 롯데
올스타전의 가장 큰 관심은 승리팀보다 누가 MVP가 되느냐는 것이다. 올스타전만 놓고 보면 롯데가 최고였다. 미스터 올스타의 산실이었다. 원년 1982년 첫 올스타 MVP의 주인공이 된 김용희는 1984년에도 왕별이 되며 '미스터 올스타'라는 애칭을 얻었다. 1998~1999년에는 '탱크' 박정태가 최초로 올스타전 MVP 2연패를 달성했다. 정수근도 롯데 이적 후 2004년·2007년 두 차례나 영예를 안았고, 이대호도 2005년·2008년 올스타 MVP를 차지했다. 2006년 두산 시절 최고의 별이 된 홍성흔은 지난해 롯데 유니폼을 입고 다시 한 번 MVP에 올랐다. 이외 1889년 허규옥, 1990년 김민호, 1991년 김응국까지 29차례 올스타전 중 12차례나 롯데 선수가 왕별이 됐다. 올해도 이대호·홍성흔·강민호 등 MVP 후보들이 넘친다. 이대호와 홍성흔은 최초의 올스타전 MVP 3회에 도전한다.

▲ '유이한 투수 MVP' 김시진·정명원
올스타전은 투수들에게 불리하다. 일단 팬투표로 뽑히는 베스트10도 2개 자리밖에 없다. 올스타가 되는 것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게다가 3이닝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최고활약을 보이는 데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대 29차례 올스타전에서 투수가 MVP가 된 경우는 딱 2차례 있었다. 1985년 삼성 김시진은 1차전 선발로 나와 3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최종 3차전에서도 구원등판해 3이닝 동안 안타없이 2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2경기 6이닝 5탈삼진 무실점으로 최초의 투수 왕별이 됐다. 1994년에는 태평양 정명원이 구원으로 나와 3이닝 동안 탈삼진 3개 포함 무실점 퍼펙트 피칭으로 단판 올스타전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투수 MVP로 남아있다.
▲ '쇼맨십의 절정' 정수근·홍성흔
올스타전은 이벤트 성격이 강한 무대다. 당연히 팬들을 위한 서비스도 중요한 덕목이다. 정수근과 홍성흔은 누구보다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즐길 줄 아는 쇼맨십의 대가들이었다. 정수근은 2001년 올스타전에서 박정태와 흔들타법과 양준혁의 만세타법을 차례로 흉내내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7년에는 홈런을 친 후 사직 홈팬들을 상대로 헐크 호건 세레머니도 펼쳤다. 홍성흔도 뒤지지 않는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 금발 가발을 쓰고 타석에 들어선 홍성흔은 범타로 물러난 후 가발을 벗어던지는 오버로 웃음을 줬다. 지난해에는 '최다득표 감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 상의를 입고, 얼굴에 검은색 덥수룩한 수염 분장을 붙이고 나와 홈런을 터뜨리며 쇼맨십의 절정을 이뤘다. 2007년에는 LG 우규민과 롯데 강민호가 사구를 던지고 맞은 다음 서로 멱살을 잡고 늘어지는 '빈볼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 예기치 못한 불상사들
축제의 장이라는 올스타전에서도 종종 불상사가 일어나곤 했다. 1989년 올스타전에서 동군은 연장 11회말 김용철의 끝내기 안타로 9-8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MVP는 패배한 서군 한대화에게 돌아갔다. 한대화는 5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지만 동군 선수들은 시상식을 거부했다. 한대화는 1993년 올스타전에서도 화상을 입은 뒤 얼음 찜질을 하다 타석 순서를 깜빡했는데 이에 격분한 김응룡 감독이 발길질하는 장면이 TV 중계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2002년 올스타전에서는 이종범이 시구자로 나온 연예인 장나라의 시구를 받아친 것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종범이 친 타구가 장나라의 얼굴 옆으로 총알처럼 날아간 것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한동안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 '올스타전 괴담' 감독 경질
올스타전 즈음 괴담이 나돌던 시절이 있었다. 감독 경질설이 바로 그것이다. 1987년 MBC 김동엽 감독을 시작으로 1996년 LG 이광환 감독, 1998년 한화 강병철 감독, 1999년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 올스타전 괴담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축제의 장이 졸지에 초상집이 된 셈이다. 올스타 휴식기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거나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기를 바라는 구단들이 전격적으로 사령탑 교체라는 강수를 빼들곤 했다. 그러나 팬들의 거센 비난과 축제를 망친다는 비난 여론아래 2000년 이후에는 올스타전 괴담이 사라졌다.
▲ '깜짝 MVP' 정경훈
올스타전 사상 최고의 깜짝 스타는 누가 뭐래도 1995년 정경훈이다. 삼성에서 활약하다 1995년 한화로 트레이드된 내야수 정경훈은 올스타에 뽑힌 홍현우가 폭행사건에 연루돼 출장정지 조치를 받는 바람에 대체선수로 올스타에 참가했다. 대타로 합류한 첫 올스타전에서 정경훈은 4타수 3안타 1득점 1도루로 맹활약하며 이종범과 이상훈을 제치고 당당히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전혀 예상 못한 깜짝 MVP였다. 이외에도 2009년 올스타전에서 최연소(19세23일) 홈런을 터뜨리며 신인 최초로 올스타전 MVP가 된 KIA 안치홍이 있지만, 그도 데뷔 첫 해부터 팬투표를 통해 베스트10에 선정된 스타였다. 아직 정경훈만한 깜짝 올스타 MVP는 나오지 않고 있다.

▲ '극적인 대타 마무리' 장종훈
'영원한 홈런왕' 한화 장종훈은 2005년 6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2005년 올스타전에서 특별초청선수 자격으로 서군 올스타에 포함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장종훈이 프로야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올스타전을 통해 공식 은퇴 무대를 마련했다. 상황도 극적이었다. 서군이 5-6으로 뒤진 9회말 2사 1·2루. 마지막 극적인 찬스에서 대타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해프닝이 있었다. 처음 이 타석에는 포수 조인성이 원래대로 들어섰다. 조인성은 초구 볼을 골랐고, 김재박 서군 감독이 부랴부랴 장종훈을 대타로 기용했다. 장종훈은 정재훈의 2구째 공을 쳤지만 타구는 힘없이 2루 쪽으로 굴러갔다. 2루 땅볼로 경기 종료.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홈런왕은 후배들의 뜨거운 헹가레를 받으며 떠났다.
▲ '끝내기 폭투' 구대성의 미소
1차전 마산에서 연장 15회 무승부를 치른 뒤 2차전 제주로 옮겨져 치른 2000년 올스타전. 2차전도 마지막까지 승부를 점칠 수 없었다. 매직리그가 4-3으로 리드하던 9회말 2사 만루. 매직리그 구대성은 드림리그 홍성흔을 상대로 폭투 2개를 던져 4-5 끝내기 패배를 자초했다. 끝내기 폭투에도 불구하고 구대성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해석이 뒤따랐다. 1차전에서 홈런 3개를 폭발시킨 팀 동료 송지만의 MVP 수상을 돕기 위해 경쟁자 홍성흔의 끝내기 기회를 원천봉쇄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 있었다. 그해 올스타전 MVP는 결국 송지만이 받았다.
▲ 이택근의 인사이드파크홈런
2007년 올스타전에서 현대 이택근이 올스타전 사상 첫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했다. 0-1로 뒤진 5회 1사 3루에서 이택근은 권혁을 상대로 우익수쪽 라이너성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삼성 우익수 박한이가 타구를 잡으려다 갑자기 주저앉았다. 순간적으로 공이 조명탑에서 나온 빛에 들어가 타구를 놓친 것 공은 펜스 앞까지 데굴데굴 굴러갔고, 이택근은 전력질주했다. 중견수 이종욱이 잡아 본격적으로 중계 플레이가 이뤄졌다. 3루 베이스코치 김재박 LG 감독이 만류했지만 이택근은 홈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포수 강민호 태그를 피해 극적으로 세이프됐다. 올스타전 최초 그라운드 홈런. 경기를 중계한 박노준 해설위원이 "인사이드파크호텔"이라고 착각하고 이야기해 더 큰 화제가 됐다.

▲ 양준혁의 '굿바이 홈런'
삼성 양준혁은 전반기 막판 이미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팬투표는 물론 감독추천으로도 올스타전 출전이 좌절된 상황. 그에게 더 이상 화려한 자리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즈음 SK 박정권이 발목 부상을 당하며 올스타전에 불참하게 됐다. 이스턴리그 사령탑이었던 SK 김성근 감독은 양준혁을 대체선수로 지목했다. 물론 그가 은퇴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6회 대수비로 나온 양준혁은 3-8로 뒤진 7회 1사 1·2루에서 맞이한 첫 타석에서 금민철을 상대로 우측 담장을 라이너성으로 넘어가는 스리런 홈런을 작렬시켰다. 올스타전 최고령(41세1개월28일) 홈런. 올스타전 4호째 홈런으로 김용희와 최다 홈런 타이 기록를 이뤘다. 이 홈런은 선수 양준혁의 마지막 홈런이 됐다. 그것도 그가 홈으로 뛰며 청춘을 바쳤던 바로 그곳 대구구장에서 나온 굿바이 홈런이라 더욱 드라마틱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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