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에는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날리죠".
LG 외국인 투수 벤자민 주키치(28)는 지난 5일 잠실 한화전에서 8회 2사까지 안타와 볼넷을 그리고 실책도 하나 주지 않는 퍼펙트 행진을 벌였다. 한국프로야구 30년 사상 첫 퍼펙트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8회 2사 후 이양기가 깨끗한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대기록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 순간 3루측 덕아웃에서 주키치의 피칭을 지켜보고 있던 정민철(39) 한화 투수코치는 묘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정민철 코치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퍼펙트게임에 근접한 투수였다. 정 코치는 한화 소속으로 뛰었던 지난 1997년 5월23일 대전 OB전에서 대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8회 1사까지 22명의 타자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러나 23번째 타자 심정수가 문제였다. 심정수를 원바운드 공으로 헛스윙 삼진시켰지만 포수 강인권이 그만 공을 뒤로 빠뜨리고 말았다. 포수 패스트볼로 심정수는 스트라이크 낫아웃 출루했다.

정 코치는 이후 아웃카운트 5개를 안타·볼넷 없이 잡아내며 사상 2번째 무사사구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실책도 아니고,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출루시킨 주자였기에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정 코치는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대기록에 다가갈수록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날린다. 기록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사이클링히트에 하나만을 남겨둔 타자처럼 투수도 대기록에 다가갈수록 의식하고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키치의 퍼펙트급 피칭을 바라보던 정 코치는 "제구력이 좋고 투구 템포와 리듬이 일정하다. 일관성있게 흔들림 없이 던지기 때문에 그런 피칭이 가능하다. 주키치를 보면 그런 게 장점"이라며 "지금껏 노히트노런을 한 투수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템포와 리듬을 유지하며 던졌다. 흔들림없는 피칭이 있어야 대기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 유지가 최대 관건이라는 뜻이다.
퍼펙트게임은 선발투수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타자를 상대로 안타와 볼넷 그리고 실책과 폭투로 단 한 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고 끝낸 경기다. 수학적인 확률상 9회 동안 안타를 허용하지 않은 확률은 1000분의 1에 가깝고 노히트노런보다 40배나 어렵다. 지난 1982년 출범해 올해로 3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국프로야구는 총 1만3809경기에서 한 번도 퍼펙트게임이 나오지 않았다. 135년 전통의 메이저리그는 20차례, 76년 역사가 된 일본프로야구는 15차례.
한국프로야구도 이제 한 번쯤 대망의 퍼펙트게임이 나올 때가 됐다. 이에 대해 정 코치는 "우리나라 타자들의 방망이가 만만치 않다. 거기에 맞설 수 있는 특급투수가 나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파워와 테크닉을 갖춘 한국 타자들을 상대로 언제 퍼펙트게임이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내다봤다. 이어 "나는 노히트노런밖에 해보지 않았다"며 농을 던진 정 코치는 "퍼펙트를 놓쳤다고 하지만 (강)인권이는 유일하게 노히트노런을 2차례나 한 포수다. 나도 인권이 덕분에 노히트노런을 할 수 있었다"며 겸손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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