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랬어요. 어느 정도 출장 기회를 얻었지만 제가 못하니 결국 기회가 사라지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도 한 때는 2년 후배와 비슷한 처지였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잠실을 홈으로 20홈런 이상을 때려내며 거포 포텐셜을 현실화 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지개를 켜는 2년 후배의 활약을 고무적으로 보았다. 지난해 24홈런을 때려낸 이성열(27. 두산 베어스)은 박병호(25. 넥센 히어로즈)를 바라보며 확실한 출장 기회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지난 7월 31일 선배 우완 심수창과 함께 LG에서 넥센으로 이적한 박병호. 그는 넥센 이적 후 7경기 4할(25타수 10안타, 9일 현재) 2홈런 5타점으로 활약 중이다. 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넥센 중심타선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 박병호. 불과 일주일 동안의 성적임을 염두에 둬도 이적 당시 "넥센이 밑지는 장사"라는 악평을 실력으로 희석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LG 시절 박병호는 거포 포텐셜을 인정받으면서도 확실한 주전 1루수로서 발돋움하지는 못했다. 2010시즌에는 경기 도중 나주환(SK, 공익근무 중)과 부딪히며 왼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불운까지 이어졌다. 출장 기회가 주어지기는 했으나 붙박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트레이드된 박병호는 새 둥지를 틀자마자 제 위력을 뽐내고 있다.
2008년 6월 포수 최승환과 함께 LG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이성열에게 당시 이적과 관련해 물어보았다. 힘과 빠른 발 등 운동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정확성에서 약점을 비추며 트레이드되었던 이성열은 이적 후 한 달간 선발 우익수로 출장했던 바 있다. 트레이드 당시 1할 대였던 이성열은 2008시즌을 84경기 2할1푼8리 1홈런 29타점 8도루로 마쳤고 2년 후인 지난해 2할6푼3리 24홈런 86타점 6도루로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꾸준히 출장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병호에게 분명 커다란 기회가 될 거에요. 저도 1군에서 기회를 꾸준히 얻으면서 '확실히 경험을 쌓는다'라는 데 큰 의미를 찾았거든요. 솔직히 LG는 유망주 개인의 성적만이 아닌 팀 성적이 너무 중요했던 팀이라 제게 많은 기회를 주기 어려웠던 것도 있습니다. 제 스스로도 두어 번 못 치면 '아, 다음 경기는 못 나가겠구나'라며 위축된 적도 있었구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한 LG. 이성열의 이야기대로 LG는 팀 성적을 포기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 와중에서 팀을 향한 팬들의 열의가 뜨거운 만큼 포텐셜이 보인다 싶으면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가 신통치 않을 때는 극심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망주는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어느새 사라진다. 긴 암흑기 동안 김상현(KIA), 이성열, 박병호 등 LG 유망주가 밟은 길이다.
물론 박병호와 3년 전의 이성열은 타격폼 수정 유무에서 차이가 있다. 박병호의 경우는 코칭스태프가 '네 멋대로 해라'라며 올 시즌 종료시까지 선수 파악에 몰두하는 반면 이성열은 이적 후 곧바로 김광림 타격코치와 함께 컨택 능력 향상을 향한 1-1 교습에 돌입했다.
당시 성적은 신통치 않았으나 이성열은 두산 이적 후 LG 시절에 비해 삼진률이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LG 시절 타수 당 0.392의 삼진을 당했던 이성열은 두산 이적 후 타수 당 삼진 0.333으로 약간 떨어졌다. 스탠스가 무너져도 공을 어떻게든 때려내려 노력했던 이성열이다. 2009년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성열은 2010시즌 팀 내 20홈런 5인방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풀타임리거로 20홈런 이상을 때려낸 것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저도 지난해 기회를 얻으면서 스스로 자신감을 많이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병호에게도 지금 넥센에서 얻는 출장 기회가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분발하면서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후배의 분발에 올 시즌 페이스가 주춤한 이성열 또한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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