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의 behind] 두산 윤석민, '대타 인생' 탈출의 기회를 맞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8.10 07: 02

입단 이후 지난 7년을 무명으로 지내 온 타자. 그러나 아직 그는 우리 나이 스물 일곱입니다. 아직 젊은 만큼 다음 기회가 주어질 여지가 충분합니다. 좋은 잠재력을 갖췄으나 아직 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히려 중학교 1년 후배 동명이인 타 팀 에이스의 후광에 가려진 거포 유망주가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8년차 내야수 윤석민(26)입니다.
 
윤석민은 지난 9일 잠실 SK전서 대타로 교체 출장, 0-1로 뒤진 7회 상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중견수 플라이를 때려낸 뒤 점수 변동이 없던 9회말 상대 우완 송은범으로부터 우월 동점 솔로포를 작렬하며 2-1 끝내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끝내기 안타를 때려낸 김현수가 이날의 히어로였습니다만 천금 같은 동점포를 친 윤석민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 했습니다.

 
볼카운트 1-1에서 송은범이 던진 슬라이더(133km)는 윤석민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바깥쪽 코스 결정구였습니다. 그러나 윤석민은 마치 팀 선배 김동주의 밀어치기처럼 이를 제대로 때려냈고 타구는 담장을 훌쩍 넘겼네요. 패색이 짙던 순간 윤석민의 홈런포는 침체되었던 팀의 승부근성을 일깨웠습니다. 윤석민의 올 시즌 성적은 50경기 2할9푼5리 3홈런 10타점(9일 현재)입니다.
 
"그동안 변화구를 어이없이 휘두른 적이 많았고 그 직전 공도 변화구를 헛스윙했거든요. 그래서 상대가 다시 한 번 변화구를 던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게 맞아 떨어졌네요".
 
2004년 구리 인창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2차 3순위로 입단한 윤석민은 데뷔 초 2군에서 3할 대 타율-4할 대 출루율-5할 대 장타율이 보장되었던 타자였습니다. 특히 밀어칠 때도 중심을 제대로 잡고 힘을 싣는 모습에 '제2의 김동주'라는 수식어도 붙었구요. 2005년에는 네덜란드 야구 월드컵 대표로 뽑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꽤 긴 시간 동안 윤석민은 정체되었습니다. 김동주라는 거성이 주포지션 3루에 버티고 있던 이유도 있었지만 2006년 김동주의 부상 공백 때 제대로 힘을 보여주지 못했네요. 설상가상 2007시즌 이후에는 군입대 준비 과정에서 혼선이 오며 상무 입대가 좌절된 뒤 2008년 4월 공익근무 입대하는 비운까지 맛보게 됩니다.
 
김경문 전 감독은 공익근무 이전 윤석민에 대해 "절박함이 부족해 보였다. 정말 좋은 몸을 가졌고 힘도 나무랄 데 없지만 내가 정말 열심히 해서 한 자리를 꿰차겠다는 생각을 찾기 힘들었다"라며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익근무 후 2군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장타력에서도 비약적 성장을 보이자 팀 내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지난해 11~12월 미야자키 마무리훈련서 가장 성장한 선수로 꼽힌 윤석민. 1,3루 수비 훈련에 열중했던 윤석민이지만 잇단 실책으로 자리를 잃었던 그는 김경문 감독 사퇴 직전 잠시 선발 라인업에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김광수 감독대행으로 사령탑이 바뀐 이후에는 다시 교체요원 자리가 익숙한 선수로 변모하고 말았네요.
 
이는 포지션 경쟁자인 이원석에 비해 수비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9회초 박진만의 타구를 제대로 잡지 못하며 자칫 추가 실점 빌미를 제공할 뻔 한 윤석민입니다.
 
 
 
"많이 준비했던 만큼 기회를 잡아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못 쳐도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나섰는데 홈런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네요".(웃음)
 
라커룸으로 향하는 윤석민을 향해 김태룡 두산 구단 운영홍보부문 이사는 애정어린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동아대 시절까지 선수로 뛰었던 김 이사는 전신 OB 시절부터 매니저로 재직하며 20여 년 동안 베어스를 지켜온 선수단 산증인과도 같습니다.
 
"선발 라인업에 나와서 잘 되어야지. 교체로 나서서만 뭔가 때려내는 대타인생에 그치지 말아라". 일찍이 팀 내서 잠재력을 인정받고도 8년 째 2군과 백업이 익숙했던 윤석민이 더욱 분발하길 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윤석민은 야수로서 모든 것을 갖춘 타자는 아닙니다. 발이 빠르지 않고 수비력도 이원석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7년의 무명 시절을 보내며 가슴 속 근성을 키웠고 가공할 만한 힘으로 밀어치는 홈런을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도 갖춘 타자입니다.
 
올 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후 윤석민은 "비로소 부모님을 야구장에 모시고 제 플레이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한창일 때는 벤치를 덥히며 점차 웃음기를 잃기도 한 윤석민입니다. 다시 기회를 잃는 듯 했던 윤석민은 긴박한 순간 귀중한 한 방으로 꺼져가던 불씨를 살렸습니다.
 
오랜 무명 시절 끝에 최근에서야 비로소 빛을 보고 있는 모 구단의 한 선수는 자신을 비롯한 프로 선수의 삶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어렵게 잡은 기회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기회는 어느새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렇게 야구를 포기한 선수들도 부지기수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기회를 잡은 뒤 악착같은 모습으로 살아남지 못하면 적자생존의 프로 무대에서 버텨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대타와 2군이 익숙했던 윤석민. 두산의 '화수분 야구'가 배출하는 인재의 탄생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팀 성적 또한 예년에 비해 급전직하한 가운데 그가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이는 단 한 명의 성공이 아닌 경쟁자와 다른 유망주들, 기존 선수들에게도 커다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윤석민의 극적인 동점 솔로포는 과연 패배 의식에 빠져들어가던 두산 선수들의 의식을 깨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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