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개인에게는 1538일만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직후 더 인상깊은 동료들의 이야기가 있어 '팀이 다시 변하고 있구나'라는 일면을 발견한 하루였습니다. 지난 11일 두산 베어스 우완 김승회(30)의 6⅔이닝 무실점 선발승 속 승리를 도운 동료들의 마음과 활약을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배명고-탐라대를 거쳐 2003년 2차 5순위로 두산에 입단한 김승회는 팔꿈치 부상 등 잇단 불운으로 입단 동기생 정재훈, 손시헌 등에 비해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투수입니다. 2006년 61경기에 나서 6승 5패 10홀드 평균자책점 3.95를 기록했습니다만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며 주목을 받지 못했네요.

2010년 소집해제 후 팀에 복귀했으나 투구 밸런스를 잃어 특유의 돌직구를 구사하지 못했던 김승회는 올 시즌에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11일 생애 첫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 승리와 2007년 5월 26일 대전 한화전 이후 1538일 만의 승리를 거둔 김승회입니다.
경기 후 김승회는 "(양)의지가 리드해주는 대로 던졌고 좋은 결과가 나와 기뻤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결승타를 친 (이)종욱이나 바통을 이어받아 무실점으로 상대를 막아낸 (김)성배, 세이브를 올린 (노)경은이가 모두 입단 동기이거나 야구 동기생이다"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동기들이 어느새 팀의 주축 선수들이 되었네요. 저도 오늘 승리를 계기로 좋은 활약을 펼치는 동기들과 함께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계기로 팀도 꾸준한 상승세를 탔으면 합니다".

김승회의 이야기 뒤로 이종욱은 "승회가 지난 등판에서 잘 던지다가 패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경기 전에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정말 도와주고 싶었다"라며 "선제 결승타를 때려내 승회가 이기는 데 도움을 줬다는 점이 기뻤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다른 동기생 손시헌은 "승회의 승리를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8회 박재홍의 땅볼을 잡고 2루를 찍은 뒤 확실하게 해두려고 1루에도 송구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비단 김승회에 대한 언급에만 그친 것은 아닙니다. 현재 왼 발등 통증으로 고생 중인 김현수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크고 작은 통증을 안은 채 그라운드에 나서고 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고 포기하지 않는 만큼 팀원들과 함께 더욱 분발하겠다"라며 제 몸보다 동료를 먼저 언급했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였기에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2~3년 전만 해도 두산은 선수들이 자신보다 주목받지 못하거나 실력에 비해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하는 동료들에 대해 "저 친구 잘 되어야 한다"라며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당사자가 있는 자리나 의식적인 인터뷰 자리가 아니라 사석에서 거리낌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나오는 말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팀은 서로 아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선수들 사이 '일단 나부터 잘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하다가도 "제 성적부터 일단 잘 나와야 팀이 이기겠지요"라는 말의 노출 빈도가 많아졌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개인 성적이 좋아지면 팀 성적도 나아지겠지만 결과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네요. 2009년부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두산은 올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프로 선수인 이상 자신의 좋은 성적을 바라는 마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연봉은 프로 선수 누구나 꿈꾸는 자아 실현의 방법 중 하나니까요. 그러나 팀과 동료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팀 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은 거의 없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입니다. 여기에 야구 외적인 일로 주축 투수가 전열 이탈하는 케이스까지 속출하며 팀 분위기는 말이 아닌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팀 성적이 서서히 내려앉고 김경문 감독까지 중도하차하는 어려운 와중 김승회의 승리 후 뒷켠에서 오랜만에 선수들이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승회는 낯가림이 있는 편이지만 착한 심성으로 '이렇게 착한 선수는 보기 드물다'라는 평을 듣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김현수의 이야기처럼 현재 두산 선수단에는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전열 이탈하거나 제 경기력을 보여주기 어려운 선수들이 수두룩합니다.
특히 주전 1루수 최준석의 경우는 시즌 후 왼 무릎 재수술 일정을 확정짓고도 경기 출장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김승회를 도와주고 싶었다'라는 이야기와 '다들 어려운 순간에도 분전하고 있으니 홀로 빠질 수 없다'라는 이야기에서 오랜만에 예전 두산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모습이 단순한 한 경기로 그친다면 이 재변화는 없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5위 LG와 4경기 차, 4위 롯데와 6경기 반 차로 벌어지며 4강 경쟁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만큼 팬들 사이에서도 '가을야구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 아닌가'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구장을 찾고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하는 팬들이 아직 많습니다. 동료들끼리 서로 다독여주고 힘을 북돋워주는 분위기를 다시 보여 준 두산이 남은 시즌 동안 팬들 앞에 '지더라도 납득이 가는 플레이'를 보여줄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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