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시련을 겪는다. 시련의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확연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2011년 12월 12일 시련남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야구 최초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고양 킨텍스 컨벤션센터에서 창단식을 가졌다.
'원더스(Wonders)'라는 팀 이름처럼 이 팀에는 경이로움, 불가사의한 일을 꿈꾸는 이들로 뭉쳤다.

게임개발업체인 (유)원더홀딩스 대표인 허민(35) 구단주는 지금은 수천억에 달한 기업가지만 불과 10여년 전에만 해도 30억에 달한 빚이 있던 청년 실업가였다.
초대 감독이 된 '야신' 김성근(69) 감독은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SK 와이번스 감독이었다.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세 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명장이다. 그러나 올 시즌 SK와 재계약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해임됐다.
원더스의 주인공인 선수들은 어떨까. 4살난 딸과 14개월 된 딸을 둔 이승재는 지난 11월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됐다. 공익 근무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롯데 구단은 수술 받은 그의 어깨 상태를 의심하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외에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42명의 젊은 선수들이 더 있다.
재미난 사실은 이들 모두 각자 차마 말하기 힘든 사연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한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원더스 유니폼을 입고 기적을 꿈꾸고 있다.

▲허민 구단주, "게임 18개 연속 망했고, 30억 원에 달한 빚도 있었다"
지금은 수천억에 달하는 서울대 출신의 자산가인 허민 구단주. 그러나 그는 불과 10년 전, 25살의 나이에 빚이 무려 30억 원이나 될 정도로 삶의 위기와 시련을 겪었다.
허 구단주는 "사람들은 내가 항상 성공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난 대학도 떨어져서 재수했다. 사업을 시작해 매우 힘들었다. 25살 때 게임회사에서 첫 게임이 인기를 얻었고, 이후 18게임을 말아 먹었다. 빚도 30억 정도 됐다. 내 삶에 위기였다. 그래도 끊임없이 도전했다"며 10년 전을 추억했다.
도전은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줬고, 그 기회는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다시금 회사를 남부럽지 않은 규모로 성장시킨 그는 어느날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음대 입학을 시도했다. 영어 실력도, 음악 실력도 부족해 낙방했다.
그는 "버클리 음대는 한국의 경우 서울대 음대 이상이다. 흑인은 모두 휴트니 휴스턴, 백인은 머라이어 캐리처럼 노래를 불렀다. 난 그렇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입학을 원한 내게 기회를 줬다. 이때 느낀 점이 열정만 있으면 작은 틈이지만 항상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는 기회가 많이 없다는 고민을 하던 차에 한국에도 작지만 이런 것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 KBO에서 독립구단 창단을 내게 제안했고, 난 기부 구단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 '한국시리즈 챔피언 감독이 아닌 독립리그 팀 감독이 되다'
불과 4달 전까지만 해도 김성근 감독은 SK 와이번스 감독이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그는 해임을 당했다. 구단 프런트와 재계약과 관련된 마찰이 원인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김 감독은 당시 해임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룩해 놓은 모든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다시는 야구 감독이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잡았다.

일단 리그, 선수의 수준이 달라지면서 김 감독의 마음과 생각도 달라졌다. 김 감독은 "내가 고양 원더스에 와서 뭘 해야 할 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프로가 아닌 새로운 팀이기 때문에 팀을 이끌어가는 방향 자체와도 다르다. 이 새로운 숙제를 어떻게 넘어가냐가 어려움인 것 같다. 선수들 자체도 경기를 하지 않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다. 프로에 있을 때는 선수가 그만두고 가겠다면 걱정 안 했는데 이 팀에서는 선수가 없어 걱정된다. 예전에는 선수에게 강요했는데, 이 팀은 우리라는 점으로 파고 들 생각이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프로야구가 1982년 생길 때 온 국민들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고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최고 프로스포츠가 됐다. 지금은 제 2의 출발이다. 독립야구 팀이 한 팀 밖에 없지만, 나는 이 팀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사회에 얼마만큼 어필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좌절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승패를 떠나서 야구의 진실함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과거 내게 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승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선수를 키우는데 중점을 둘 것이다. 사람이 살아 남으려면 자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한다. 야구 역시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냐 싶다. 내가 그 선수를 이해시킬 때까지, 그리고 내가 이해할 때까지 연습은 되어야 한다. 총재께서 공 3600개 주셨으니까 연습 혹독하게 시키라는 뜻. 모자라면 더 주시지 않겠냐"며 김성근식 훈련 부활을 예고했다.
김 감독이 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그는 "여기서 1군에 올라갈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하겠다. 내가 이제까지 맡은 팀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보고 아이고 할 것 같다"면서도 "내년 1월부터 선수들을 지휘하기로 했는데 집에 가만히 있었더니 좀이 쑤신다. 당장 내일이라도 전주에 내려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체크 하겠다. 해가 안 보이고 끝나고, 달이 안 보이고 끝나도록 하겠다. 이달까지 틀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이승재, "두 딸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 프로에 진출하겠다"
지난 2002년 롯데에 5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이승재는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프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 공익 근무를 할 때 받은 어깨 수술이 문제가 됐다. 제대 후 롯데로 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는 "처음에 방출됐을 때는 황당했다. 아마 롯데 구단에서는 내 어깨가 안 나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면서 "나로서는 고양 원더스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한번 좌절을 맛봤다. 다음 년도부터는 2군이랑 경기도 한다. 우리가 잘하면 프로에서도 데려가지 않겠을가. 그걸 위해서 난 야구를 다시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내와 두 명의 어린 딸들이었다. 이승재는 "롯데 때보다 마음 가짐이 더 굳게 먹어지는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선수들로서는 이곳이 마지막이다. 갈 곳도 없다. 한번 성공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가족이 큰 힘이 된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승재는 당장에 김성근 감독의 훈련 스타일에 놀라면서도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참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는 "요즘 아침 8시에 경기장에 나가서 저녁 먹을 때 들어와서 또 밤 10시까지 야간 훈련을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더 마음을 다스려서 이겨낼 것"이라며 "김성근 감독님의 훈련에 대해서는 상상을 못하겠다. 그래도 주위에서 관심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선수들이 프로로 많이 전향하지 않을 듯 싶다. 동계훈련 잘 치러서 프로에 첫 번째로 진출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힘찬 포부를 밝혔다.
재미있는 사실은 허민 구단주와 김성근 감독은 이미 수많은 시련을 겪고 또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 섰다는 점이다. 허민 구단주는 "이제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말했고, 김성근 감독은 "내 인생에 마지막 행운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나머지는 이승재를 포함한 선수들에게 달렸다.
고양 원더스는 내년 시즌 퓨처스리그와 기타 경기 등을 포함해 48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 연습경기까지 하면 더 많은 경기를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매경기가 실력 향상과 더불어 생존과도 같은 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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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킨텍스=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