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대한민국 제 1의 도시 서울,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오가는 가운데 부와 첨단산업이 몰려있는 곳 강남, 그 강남에서도 최첨단 패션과 유행 그리고 부의 대명사로 불리는 청담동. 프리마 호텔 사우나에서 차승원과 같이 목욕하고 영동대교 남단 강변 산책로에서 전도연과 같이 조깅하는 곳, 그곳이 바로 청담동이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SBS ‘청담동 앨리스’(극본 김지운, 연출 조수원)는 그 청담동에서 벌어지는 상류층 사람들의 얘기와 그들의 세계에 오르기 위해 내달리는 한 사회 초년생의 얘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해 그 따위는 버리기로 한 여자 한세경(문근영)과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매달렸던 사랑에 배신당해 사랑을 믿지 못하는 남자 차승조(장티엘 샤, 박시후) 그리고 가난하고 절망적인 신세에서 청담동 남편을 만나 인생역전한 한세경의 여고동창 서윤주(소이현)를 중심으로 한 ‘된장녀’ ‘순정녀’ ‘청담동 며느리’ 그리고 ‘된장남’ 등의 얘기다.
세경은 예고를 거쳐 명문 여대 의상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취업준비 3년만에 지앤의류 입사시험에 응시한다. 공모전 입상 경력도 있고 프랑스어도 잘하지만 1년 계약 비정규직으로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의 주 업무는 회장 사모님의 쇼핑 심부름이 고작이다. 그것도 알고 보니 사모님이 윤주였고 그래서 취업이 가능했던 것.
세경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지만 팀장은 “유학을 못 가서가 아니라 유학을 가지 못한 처지의 안목은 후질 수 밖에 없고, 안목은 태어날 때부터 뭘 보고 자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며 그녀의 부족함이 실력이나 유학의 문제가 아니라 태생의 문제임을 뼈저리게 지적한다.
연봉은 고작 1300만원이지만 융자받은 학자금도 아직도 못 갚았고, 부모는 대출을 끼고 5억원에 산 아파트가 3억원으로 떨어진데다 더 이상 빚을 갚기가 힘들어 다시 또 융자를 받아야 하니 세경에게 보증을 서라고 한다.
그녀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지난 6년간 사귄 남자친구 인찬(남궁민)이다. 그는 어머니 병원비와 동생 학비로 신용불량자가 된 상황에서 다니던 아르테미스 한국지사의 명품 가방을 빼돌려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등 벼랑에 몰렸다. 세경은 그를 돕고자 하고 사랑을 지키려고 하지만 현실에 짓눌린 인찬은 사랑이 귀찮을 뿐이다. 그래서 이별을 고하고 그녀의 통장에서 찾은 돈 500만원으로 일부 빚을 갚고 연기처럼 브라질로 출국해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 아정(신소율)은 “요새는 가난이 죽을병이야”라고 말한다. 뭐든 노력하면 얻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비로소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꿔서라도 원하는 것을 갖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중간 엘리베이터는 바로 윤주다.
학창시절부터 멸시했던 윤주지만 지금은 어엿한 회사 사모님인데다가 청담동에 입성하고 싶은 그녀에게 가장 확실한 길라잡이다.
윤주는 남부럽지 않은 청담동 사모님이지만 사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예전에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했던 것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느라 역시 많이 힘들고 외로운 상황. 그 와중에 세경은 일시적으로나마 좋은 안식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고 윤주는 자신의 성공담을 담은 다이어리를 세경에게 건네주는 등 그녀의 청담동 입성을 위한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차승조는 로열그룹 회장 차일남(한진희)의 아들이지만 오래전 아버지와 의절하고 적수공권으로 아르테미스 한국지사 회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프랑스 유학시절 윤주와 사실혼 관계였지만 그녀에게 보기 좋게 배신당한 뒤 와신상담한 인물.
그는 오로지 아버지와 윤주에게 복수할 일념으로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사실 그는 약간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특히 사랑이 없다고 믿었고 그만큼 순수한 사랑을 열망했기에 그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냉혈한이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그이지만 자기과시욕이 뛰어나고 흥분하면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며 복수한 뒤 숨어서 아이처럼 자지러지는 ‘찌질남’이다. 윤주는 예고 시절 ‘넘사벽’이었던 세경을 뛰어넘기 위해 미모를 이용해 세경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그의 작품으로 학점을 따낼 정도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냉정한 인물.
그녀는 승조와의 이별을 요구하는 차일남에게 파리에서 공부를 끝마칠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상류층에 연이 닿을 수 있게 소개장을 써달라는 조건을 내걸어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한 사모님의 집에 옷을 배달해주느라 들락거리다 그 집안의 아들인 지앤의류 회장과 결혼한다.
이 드라마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된장녀다. 승조는 직원들을 모아놓은 프리젠테이션 자리에서 ‘프랑스 여자는 장인들이 직접 만든 제품의 전통과 가치를 따져 명품을 구입하고 일본 여자는 자신의 소속감을 위해 명품을 구입하지만 한국 여자는 오로지 가격을 위해 명품을 구입한다’고 말한다. 한국 여자가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공포’ 때문이다. 그는 ‘나만 못사는 것 같은 공포가 명품을 구매하게 한다’고 고가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웬만한 월급쟁이가 명품백 하나 사려면 1년은 아끼고 아껴야 한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자신의 몸을 웅크리는 게 아니라 백을 보호하려 애쓰는 장면은 바로 이 드라마가 얘기하고자 하는 된장녀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그런데 청담동 스타일은 단순히 명품이거나 럭셔리한 게 전부가 아니라고 윤주는 세경에게 강조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구찌 프라다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을 몸에 두른다고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롭고’ ‘고급 재료’여야 하고 ‘누구도 안 하는’ 유니크한 제품이어야 한다.
이건 정말 어렵다. 그냥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 가서 아무 명품이나 사서 걸친다고 다 청담동족이 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런 이상한 나라가 바로 청담동이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 원작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를 모티프로 했다. 얼핏 봐서는 그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다름 아니다. 이미 청담동 사모님이 된 ‘천민’ 출신 윤주나 같은 출신성분으로서 ‘제 2의 윤주’가 되고자 마음을 다잡고 질주하는 세경의 얘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얘기다.
그런데 ‘청담동 앨리스’가 ‘마의’와 다른 점은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서가 아니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와 재벌의 착취와 야비함에 희생당한 서민의 얘기를 청담동 사람들과 함께 이분법적 사고로 다룬다는 점이다.
30년간 빵집을 해온 세경의 아버지 득기(정인기)는 대규모 유통사의 저가공세에 밀려 파산하자 ‘헤비급이랑 라이트급이랑 싸우는데 어떻게 이기냐’고 하소연한다. 이 가정은 허구한 날 뉴스면을 장식하던 부동산투자의 환상에 속아 은행빚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가 집값이 반토막나며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상태다.
그런 집안의 딸 세경에게 희망이 있을 리 만무하건만 그녀는 그 틀을 깨기 위해 윤주를 발판 삼아 청담동 며느리가 될 야심으로 ‘마담뚜’ 타미홍(김지석)에게 접근하지만 성매매를 권유당한다.
과연 예쁘고 젊은 한 몸 던져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과 스폰서로부터 거액의 ‘몸값’을 제공받는 것과 다를 게 뭐냐고 작가는 은유한다. 윤주는 한번 이혼한 지앤의류 회장과 결혼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은 측두엽의 이상으로 편두통을 동반한, 사물이 왜곡돼 보이는 병을 말한다. 사랑에 배신당한 승조는 울어도 눈물을 흘릴 줄 모르던 사람이지만 인찬을 향한 세경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돼 어느덧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윤주에게 작은 복수를 하고는 자신의 집에서 철없는 아이처럼 포복절도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아니 마치 오르가즘을 맛보는 듯하다.
어쩌면 그는 윤주는 악마로, 세경은 천사로 보이는 앨리스증후군을 앓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세경이 천사일까? 비록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했지만 그녀도 결국은 청담동에 입성하기 위해 ‘귀족파티’에 자신의 몸에 안 어울리는 명품을 걸치고 나타나 어슬렁거리지 않는가?
헤어지자는 인찬에게 순수하게 쌓아온 사랑을 강조했던 그녀는 인찬이 자신이 아끼고 아끼며 모은 돈 500만원을 홀랑 써버리고 말 없이 출국해버린데 대해 오히려 속시원해하며 새출발할 좋은 기회로 삼는다.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 꿈꾸는 것은 대한민국 상위 1%들의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청담동이지 가난하지만 진실한 사랑이 넘쳐나는 달동네는 절대 아니다.
그녀가 참석한 청담동의 귀족파티를 구성하는 ‘귀족’들은 번듯한 옷을 입고 점잖을 빼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의 눈으로 바라본 왜곡된 모습이다. 그들의 실상은 서민의 고혈을 빨아 부를 축적하는 차일남 회장처럼 더럽고 치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청담동 앨리스’는 아이러니를 말한다. 남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진 승조는 결손가정에 아버지와 등돌린 폐륜아로서 진정한 사랑을 꿈꾸지만 정작 사랑하는 세경 앞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는 이중적 인물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처럼 순수했던 사랑을 지키려 했지만 연인이 떠나가자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그토록 경멸했던 윤주의 행보를 따르기로 작정한 세경은 지금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있다. 시계를 들고 바쁘게 달리는 토끼를 뒤쫓고 있는 그녀는 흰 장미에 빨간 칠을 하고 있는 병사와 그것을 지시한 여왕을 만나겠지만 결국 자신이 흘린 눈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앨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인구와 평균 소득 대비 기형적으로 급성장한 1% 졸부들이 바쁜 시계토끼와 어울려 파티를 하는 청담동을 대다수의 서민은 동경하지만 그곳에 입성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왜냐면 앨리스에게 있어서 ‘이상한 나라’는 결국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박시후의 연기가 호평을 받고 있고 흥행파워를 가진 문근영이 출연하는데다가 여성시청자들을 충분히 움직일만한 청담동을 배경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인데도 불구하고 경쟁작의 반토막에 불과한 10% 안팎의 시청률로 주말극 꼴찌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지나치게 화려한 청담동족의 패션과 인테리어 등 피부에 와닿지 않는 럭셔리가 대다수 서민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해서일까? 천만에! 정작 청담동족조차 이 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일단 영화나 드라마가 한 분야를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다룰 때는 다수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그래서 멜로 코미디 반전 등의 드라마라는 장치를 하기 마련인데 ‘청담동 앨리스’의 장치는 지나치게 뻔한데다가 진짜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출렁임이 적다. 게다가 여주인공 문근영의 클로즈업 신은 빵빵한 볼살만 강조될 뿐 ‘미모실종’이고, 박시후의 고군분투 코믹연기 하나만 돋보일 뿐인데 갈수록 식상해진다.
그래도 화려한 패션과 청담동 일대의 럭셔리한 배경이 볼거리라고? 다수의 대중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구두와 재래시장 구두를 구분짓지 못한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