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해 전세계를 강타했고 아직도 그 열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을 굳이 예시하지 않더라도 세계 대중음악시장에서 K팝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K팝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까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미국의 팝이 진두지휘하던 세계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K팝은 SM YG JYP 등 국내 굴지의 3대 기획사를 주축으로 한 젊은 기획사들이 내놓은 젊은 가수, 특히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지칭한다. 이 음악은 미국이나 유럽의 팝음악의 형식에 한국의 정서를 담아 새롭게 탄생된 장르로 미국의 팝, 유로팝, J팝 등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면이 있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받아들인 엔카와 미국의 팝음악을 국악과 접목시켜 가요를 만들고 다시 서양의 다양한 장르를 받아들여 한국화해온 가요의 역사를 다양하게 녹여놓고 있기 때문이다.
세련미에서 선진국의 팝음악에 비해 앞서며 시각적으로도 자극적이고 화려하며 유니크하다. 전세계 팬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류열풍에 편승해 한국의 뮤지션에 대한 인기도 가히 폭발적이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국내도 가수들의 주 활동무대는 TV다. 특히 지상파 방송 3사의 가요 프로그램은 홍보를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다. 그것은 KBS2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을 정도다. K팝의 위상이 높아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정작 국내 시청률은 2~4%의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다.
세 프로그램에 대한 열기는 뜨겁지만 실질적인 시청자의 지지도는 미미한 것.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자 하는 경쟁률은 살벌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치열하다. 한번에 10여팀이 출연하지만 대부분의 타임은 대형기획사에서 활동중인 가수들에게 편중돼 있다. 신인이거나 힘있는 제작사를 등에 업지 못하면 여기에 끼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국내 음반계는 중대형기획사 10~20곳이 쥐락펴락하는 형편인데다 한 기획사에 한 팀의 가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다보니 각 기획사는 거의 1년 내내 활동가수를 배출하고 그런 와중에 매주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려고 움직이다 보니 작은 기획사나 신인가수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장르도 중요하다. 현재 국내 가요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K팝이나 R&B를 제외한 장르가 이 프로그램에 합류할 기회는 거의 없다. 주시청층이 10~20대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정통 가요 프로그램은 적고 가수는 많다보니 이 세 개의 프로그램에 대한 출연경쟁률은 살인적이지만 정작 시청자의 열기는 미미하다. 이런 비대칭적인 구조 속에서 제작진도 위기를 직감했는지 최근 포맷을 변경하고 있다. 이미 순위제로 진행되는 '뮤직뱅크'를 따라 나머지 두 개 프로그램도 순위제를 부활한 것. 출연가수들의 본격적인 경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높이고 그에 따른 시청자의 관심을 높여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과연 그게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모범답안일까?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었다. 트로트 등 성인가요 위주로 방송하는 KBS1의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콘서트 7080'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채널도 KBS2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자가 적은 KBS1에 편성된데다 비인기 시간대에 방송됨에도 금토일 초저녁에 나란히 방송되는 '젊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능가하거나 엇비슷하다. '전국노래자랑'은 10.8%의, '가요무대'는 9.8%의, '콘서트 7080'은 3.5%의 시청률을 각각 올리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일요일 낮 12시 10분에 시작된다. 동시간대 KBS2는 '해피투게더 스페셜'을, MBC는 '출발! 비디오여행'을, SBS는 '런닝맨' 재방송을 각각 내보낸다. 경쟁프로그램이 만만치 않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충분히 선전하고 있다. 이는 일반인의 장기자랑 예능 포맷인 SBS '스타킹'이 동시간대 1위인 것과 양상이 비슷하다.
'가요무대'는 월요일 10시에 시작한다. 그시각은 나머지 세 개의 채널에서 월화드라마를 내보낸다. 역시 경쟁률이 만만치 않음에도 '가요무대'는 웬만한 드라마 시청률을 지키고 있다.
'콘서트 7080'이 '전국노래자랑'과 '콘서트 7080'에 비재 저조한 나름의 이유는 있다. 방송이 일요일 심야인 11시 10분에 시작되는데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월요일의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 시각이므로 전체적인 시청률이 낮은 것이다. 다른 채널들도 그 점을 의식해 KBS2는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MBC는 '코미디에 빠지다', SBS는 'SBS 스페셜' 등 다소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이렇게 유리한 시간대를 차지한 '젊은 프로그램'과 상대적으로 불리한 시간대에 포진된 '어른 프로그램'이 다른 환경 속에서 또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것에 '젊은 프로그램' 제작진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간단하다. 10~20대는 드러내놓고 K팝에 열광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 음악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가수에 열광하는 것이다. 하지만 30대 이상은 음악을 먼저 즐기고 그 음악을 추구하는 가수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응원할 뿐 겉으로 잘 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수에 대한 지지도가 결코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욕구는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매한가지다.
'젊은 프로그램'이 한결같이 똑같은 가수들을 내보낸다는 것도 제살을 깎아먹는 가장 한심한 제작방식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에 걸쳐 나란히 방송되는 이 세 개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사실 각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출연가수와 내용이 엇비슷하다. 3일 내내 세 프로그램을 볼 필요 없이 자기 편한대로 하나만 골라봐도 세 프로그램을 본 것과 똑같다.
이에 반해 '어른 프로그램'은 각자의 정체성이 확고하다. 전혀 다른 포맷의 내용을 내보낸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골라봐도 되고 가요에 목말랐다면 다 봐도 모두 새롭다.
그런데 이렇게 KBS1에서 무려 3개의 '어른 프로그램'을 편성해놓고 있음에도 MBC와 SBS가 나몰라라 하고 주말 초저녁 시간대의 청소년용 가요 프로그램에만 목매는 것은 방송의 흐름과 시청자의 욕구에 역행하는 일이다.
물론 K팝의 열풍에 따라 그런 욕구에 맞는 프로그램 위주로 편성하는 방향성은 맞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K팝은 지난 50~60년의 가요역사가 밑받침이 돼 탄탄하게 태어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펄시스터즈와 바니걸스가 있었기에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있을 수 있었고 조용필이 있었기에 박진영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오늘날 우리 가요가 서양음악을 한국적으로 소화-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울의 신중현, 재즈의 패티김 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진-나훈아 전성기에도 그들의 주팬층은 10~20였다. 하지만 성인들도 남진과 나훈아의 노래와 영화를 즐겼다. 그때의 팬들은 지금도 팬이고 그때의 스타는 지금도 스타다. 하지만 HOT나 젝스키스가 아직도 인기가수인가? 국내 최초의 중학생 댄스듀오 아이돌은 어디로 갔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가요시장 특히 방송에서는 K팝은 있되 가요는 찾아보기 힘든 기현상이 지난 몇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는 당장 K팝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는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전체 가요의 발전을 저해하는 현상임에 틀림 없다. 방송구조가 이런 식으로 지속된다면 결국 가요는 사라지고 K팝만 남을 것이고 K팝의 근간이 된 가요가 사라진다면 결국 한국의 대중가요 시장이 붕괴될 것이다.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