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출신인 만큼 웬만하면 투수를 믿고 맡기는 지도자다. 그래서 강한 선발진을 구축하게 된 지난 시즌에도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늦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성공하면 새로운 카드를 발견한 것이 되지만 실패하면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하는 형국이 된다. ‘김진욱호’ 두산 베어스가 회심의 카드로 내세운 젊은 투수들의 연이은 대실패에 울고 있다.
두산은 지난 21일 잠실 넥센전에서 7-15로 완패했다. 4회말 3득점을 올리며 4-6까지 따라갔을 때만해도 접전 양상이 예상되었으나 추격조 투수들의 잇단 난조, 그리고 빈볼 퇴장까지 나오며 5회초에만 무려 8실점했다. 이미 그 때 경기는 사실상 끝났다. 타선은 막판까지 쫓아갔으나 중반부터 크게 기울어진 승패 추를 되돌리기는 무리가 있었다.
5월 한 달간 두산은 안 좋은 역사를 두루 쓰며 8승10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8승이라도 한 데에는 팀 타율 1위(2할9푼1리) 득점 1위(225득점)를 달리는 타선이 한 몫 했다. 8일 SK를 10점 차 역전승의 주인공으로 우뚝 세운 두산은 12일 신생팀 NC에게 17득점 추억을 선물했다. 18일에는 한화에 2-14로 대패하며 한화의 시즌 최다 득점 기록도 선물했다. 겨울은 한참 멀었는데 벌써 산타가 된 두산이다.

대패가 이어지며 불과 3주 전만해도 1위였던 두산의 팀 평균자책점은 4.85로 전체 8위가 되었다. 막내 NC도 4.65의 팀 평균자책점으로 두산보다 경기 당 평균 0.2점을 덜 줬다. 지난해 파괴력이 떨어진다고 비난받던 두산 타선은 올해 2할6푼7리(4위)의 득점권 타율만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 중이다. 타선이 득점을 차곡차곡 쌓아도 투수들이 털리고 있다. 어쩌다 두산 투수진은 이렇게 뻥 뚫린 곳간이 되었을까.
잔혹사가 된 네 경기를 들춰보면 젊은 투수들의 대량 실점이 빌미가 되었다. 8일 SK전에서는 2년차 사이드암 변진수가 아웃카운트 없이 4실점하며 무너져내렸고 12일 NC전에서는 4년차 좌완 정대현이 1⅔이닝 10피안타 11실점으로 엄청나게 맞았다. 윤명준은 18일 한화전 노아웃 6실점에 이어 넥센전에서도 노아웃 2실점에 빈볼 퇴장으로 고개를 떨궜다.
개릿 올슨이 허벅지 부상으로 전열 이탈하면서부터 두산 투수진은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2군에서 선발 후보로 점지된 유망주들이 부상과 난조로 올라오지 못하면서 계투 요원을 하석상대 식으로 선발 투입하는 전략을 채택하기도 했고 팔꿈치 수술 전력의 5선발 김상현은 중간계투진도 계속 오가다 결국 제 구위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서 코칭스태프가 기대한 것은 시즌 초 오현택, 유희관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유망주들이 자기 공을 유감없이 던지며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었다.
지난해 두산은 선발-계투 등 검증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을 중용해 값진 성과를 거뒀다. 선발로 중용한 임태훈-이용찬 중 임태훈은 4월 한 달 에이스로 활약하다 페이스가 떨어졌으나 이용찬은 풀타임 선발이 되어 10승을 따냈다. 실패한 셋업맨이 되는 듯 했던 노경은은 선발로 보직이동해 선발로만 10승, 그 해 12승을 거뒀다. 선발 후보였던 홍상삼은 어느새 지난 시즌 팀의 셋업맨으로 우뚝 섰고 신인 변진수는 추격조로 시작해 시즌 말미에는 필승 계투가 되었다.
‘네가 해봐라’라는 지시에 전도유망한 투수들이 스스로 좋은 공을 던져 출장 기회라는 열매를 따냈다. 코칭스태프는 검증되지 않은 젊은 투수들을 긍정적으로 지켜봤고 젊은 선수들이 실패보다 성공 전례를 더욱 많이 만들며 팀의 투수진을 살찌웠다. 지난 시즌 전 ‘더스틴 니퍼트-김선우 외 검증된 투수가 없다’라는 이유로 선발진 약점을 지적받던 두산은 그해 80번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로 1위를 기록했다.
때로는 투수 교체 타이밍이 늦다는 지적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노경은-이용찬 등 젊은 선발의 힘이 커졌다. 롯데로 이적한 5선발 김승회는 젊은 투수가 아니지만 선발로는 미지수 평을 받던 투수. 그러나 역할을 잘 해내며 두산 선발진을 살찌웠다.
반면 지금은 추격조로 나서다 한 자리를 해낼 것으로 기대했던 젊은 투수들이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변진수의 경우 올 시즌 셋업맨 후보 중 한 명이었으나 경기력에서 기복을 보이다 2승1패2홀드 평균자책점 8.44에 그치고 있다. 경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씩씩하게 던지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정대현은 지난해 좌완 선발 후보였고 1년 전 이맘때 롱릴리프로 분전했으나 올 시즌에는 사실상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윤명준은 캠프 성장세가 가장 뚜렷했던 투수 중 한 명. 시즌 전 정명원 코치는 “신인왕 후보가 될 만한 투수”라며 기대했으나 결과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젊은 투수가 성공을 거두면 그 공은 선수 본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스스로 좋은 활약을 펼쳐 출장 기회 보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나’라는 결과가 잇달아 나오며 팀의 시즌 운명까지 좌우한다면 선수는 기회를 잃을 뿐 더러 코칭스태프의 골칫거리가 되게 마련이다. 현재 두산 투수진의 상태는 후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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