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대첩'과 강정호 도루, 새 이정표 될까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05.22 10: 27

2013년 5월 8일 어버이날. 한국 프로야구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을 되새기게 한 날이다.
그 날 두산은 SK를 상대로 한국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로 1회 선발 전원득점 기록을 세우면서 크게 앞서갔다. 3회에는 11-1까지 앞서가 점수를 두 자릿수 차까지 벌려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SK는 거짓말 같은 뒷심을 발휘, 9회 끝내기 안타로 13-12 역전승을 거둔다. 한국 프로야구 최다점수차 역전승 신기록이다.
경기 초반이지만 10점이나 점수차가 벌어지면 양 팀 더그아웃에서는 다음 날 경기를 준비하기 마련.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지만 그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에도 야구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장기 레이스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그 날 경기에 '올 인' 할 수 없는 것이 야구다. 승장인 SK 이만수 감독도 "솔직히 (다음 날 경기를 대비해) 백업선수들을 넣었는데 그들이 사고를 쳤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어쨌든 SK와 두산의 어버이날 경기는 야구의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했다. 방심하는 순간 언제 경기가 뒤집힐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날 경기는 야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문율들을 다시 돌이켜보게 했다.
야구를 두고 흔히 신사들의 스포츠라고 한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기 때문이다. 큰 점수차로 앞서고 있는 팀이 도루를 하지 않는 것도 야구계의 오랜 불문율이다. 하지만 큰 점수차라는 건 대체 몇 점일까. 어떠한 야구 규범에도 몇 점차에서 도루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은 씌여있지 않다.
21일 잠실구장에서는 이 불문율을 놓고 두산과 넥센의 충돌이 벌어졌다. 넥센이 12-4로 앞선 5회 1사 1,2루에서 2루 주자 강정호는 3루 도루를 감행했다. 스코어를 지우고 생각하면 상대의 의표를 찌른 도루가 분명했다. 워낙 점수차가 벌어졌기에 두산 투수 윤명준과 내야수들은 도루 저지를 할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이후 윤명준은 유한준과 김민성 두 명에 빈볼을 던져 퇴장을 당했고 이후 양 팀은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다. 경기 후 강정호는 "두산 선수들이 기만이라고 생각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은 8점 차, 야구 상식으로는 쉽게 뒤집힐 수 없는 점수다. 하지만 이미 며칠 전 10점을 뒤집는 경기가 나왔었다. 야구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기 전까지는 결코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
두산도 기록적인 역전패를 당했던 바로 다음 날인 9일 SK전서 9-0으로 앞선 6회 필승조 요원인 유희관을 투입하기도 했다. 단 1%의 가능성까지 없애 버리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벤치에서 '경기가 기울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어버이날 대첩'이 벌어진 후 "두산이 SK에 10점차 역전패를 당한 날 한국야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단순히 신기록이 나와서가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강정호의 도루가 달라진 프로야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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