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한류 강박은 좋지 않아..스토리가 더 중요하죠" [인터뷰]
OSEN 김경주 기자
발행 2013.07.24 15: 53

무려 8년이다. 2004년 겨울의 어느 날, 봉준호 감독이 영화 '설국열차'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그것이 스크린에서 구현돼 이야기로 흘러가기까지. 그 동안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만들어냈고 '마더'를 탄생시키며 차곡차곡 본인의 이름에 힘을 실어갔다.
8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봉준호 감독은 아직도 '설국열차'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그 때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홍대 앞 어느 만화가게에서 우연히 눈에 띈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 그는 처음엔 '열차'라는 단어에 끌려 책을 펼쳤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땐 흥미진진한 내용에 끌렸다고 했다.
"서점에 갔더니 시커먼 표지에 '설국열차'라고 써있고 대머리인 남녀가 껴안고 있는 만화가 있었어요. 처음엔 열차라고 하니까 '오, 기차' 이런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죠. 왜 사람들은 뭔지 모를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그래서 집어 들었는데 내용은 더 가관이더라고요. 구성도 흥미진진하고 기차 칸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였죠. 보자마자 '어머, 나 이거 영화로 해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해도 이렇게 고생길이 펼쳐질진 몰랐죠(웃음)."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그리고 '마더'까지 봉준호의 영화에는 항상 '사람'이 존재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행하는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끊임없이 탐구해왔던 것. '설국열차' 역시 마찬가지다. 빙하기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기차는 우리 세계를, 그리고 기차 칸마다 위치해 있는 사람들은 질서 혹은 틀에 맞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끊임없이 인간은 어디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꼬리칸에서, 감옥칸 사람들은 감옥칸에서. 인간은 틀 안에 안주하고 싶어하지만 벗어나고 싶어하기도 하죠. 기차 전체를 놓고서 보면 결국 기차는 그것에 대한 드라마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커티스가 외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의 여정이 점점 고독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에드가(제이미 벨 분)는 커티스를 사랑(?)해서 남궁민수(송강호 분)의 등장에 경계를 하기도 하고 시비를 걸기도 하고요. 그 좁은 인간세계에서 사랑 받고 싶어 싸운다는 것이 참 웃기고 한편으론 생존자들이 피를 튀기며 싸운다는 자체가 인간의 본모습인 것 같기도 해요."
'설국열차'의 핵심 엔진은 모두 한국에서 시작, 이후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 다국적 스태프 구성, 체코 스튜디오에서의 촬영 등을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겨냥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진화됐다. 사실 한국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라스트 스탠드'로,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린 바 있다. 이처럼 많은 감독들이 점차 해외를 겨냥해 나가는 것에 대해 봉준호 감독의 의견을 물으니 한류 보다는 스토리가 우선순위란다.
"영화라는 것은 언어권의 숙명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산업엔 언어 테리토리에 따라 영화의 시장이 결정 나잖아요. 안타깝게도 한국어를 쓰는 국가는 우리밖에 없는데 그나마 남북이 쪼개져있어요. 그게 우리의 운명이고 시장 사이즈를 규정짓는 거에요. 인도는 인구가 많아서 해외 개척의 의지 없어요. 그들은 자국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죠. 반면 우리나라는 특이한 상황이에요. 제 생각엔 한국인들이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나쁘게 말하면 과욕의 인더스트리죠. 적절하게 만들어서 즐기면 되는데 '해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한국 영화시장도 전 세계에서 6~7위권이나 되는데 말이죠. 감독 입장에선 한국에서 잘 찍어서 국내에서 잘 되는 것도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류 강박이 있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를 지배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좋은 스토리에 아름다운 영화가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설국열차'가 영화 팬들을 만나기 직전인 지금, 팬들은 '설국열차' 뿐만 아니라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의 시동을 건 봉준호 감독이 과연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낼까에 대한 궁금증들 말이다. 그는 이러한 궁금증들에 대해 자신은 스토리에 끌려 영화를 만들 뿐, 어떠한 것을 기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촬영감독이 체코에서 동거동락하고 이후에 한국으로 들어가 영화 '고령화가족'을 촬영했는데 그 영화를 촬영하면서 힐링받는 느낌이라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합리적인데 반해 여유를 가지고 엉뚱하거나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긴 어렵죠. '고령화가족'을 보면서 촬영감독이 한 얘기가 어떤 느낌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저런 영화를 찍고 싶었고요. 마음 잘 맞는 배우들과 내밀하게, 깊게 이야기 나누면서 적은 규모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요. 그런데 아직은 모르겠어요. 한국어 영화로 구상하는 스토리가 하나 있고 2010년부터 쓰고 있는 스토리가 하나 있고, 미국 에이전시에서 보내주는 시나리오도 있어요. 아직은 모르죠 뭐. '설국열차'도 글로벌 대작을 하려고 기획한건 아니였으니까요. 만화를 보고 매혹돼서 '설국열차'를 했던 것처럼 저는 소재나 스토리에 끌려 움직일테니까요."
trio88@osen.co.kr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