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개봉하는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은 많은 관객들에게 이정재의 재발견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먼저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신기하게도(?) 상영 시작 약 한 시간만에서야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이정재가 두고두고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을 능수능란하게 끌고 가는 주인공 송강호나 유일한 홍일점 김혜수, '조선판 납득이' 조정석 그리고 요즘 대세라는 이종석의 존재감은 이정재의 등장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 이정재표 수양대군은 기대이상의 아우라를 지니고 '관상'의 후반부를 쫄깃하게 만드는 주역이다. 이정재로 인해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이 비로소 리얼하게, 입체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상'은 왕의 자리가 위태로운 조선, 얼굴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송강호가 천재 관상가 내경 역을 맡았고 이정재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좌에 오른 계유정난의 주역 수양대군으로 분했다.

송강호와 김혜수, 조정석 그리고 이종석까지 워낙 화려한 캐스팅 때문에 이미 기대작이었던 '관상'은 그 중에서도 이정재를 가장 잘 '써먹으면서' 멀티 캐스팅의 정점을 찍었다. 그로 인해 사서에서 접한 역사 속 수양대군 또는 그간의 TV 사극에서 다뤄졌던 수양대군의 모습에서 완전 탈피한 새로운 아우라의 인물이 다시 태어났는데, 이번 연기를 통해 배우 이정재 역시 새로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왕위를 탐하고 역모를 꾸미는 수양대군은 분명 악역이고 그래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야욕에 반하는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통념일텐데 도리어 수양대군의 그 핏빛 쿠테타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 건 이정재의 매력 때문이다. 그에 맞서는 내경과 김종서(백윤식 분) 등의 사투는 무척이나 정의롭고 처절하지만 오히려 왕이 되려 온갖 악행을 일삼는 수양대군에게 빨려들어가는 스스로가 난감할 정도니.
일단 탄탄하고 다부진 몸매와 조각같은 얼굴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가 관객을 압도하는 가운데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호탕하면서도 절제된 이중적 매력의 연기가 눈과 귀를 솔깃하게 한다. 살기 어린 눈빛도, 칼자국 선명한 얼굴도, 냉기가 밴 쩌렁쩌렁한 목소리도 더듬어본 그의 필모그래피 중 단연 압권이다.
영화에서 수양대군은 내경에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재차 묻는다. 이정재는 데뷔 20년 만에 진짜 멋진 배우가 될 상이었나보다.
최신작인 '신세계'부터 '도둑들', 또는 칸에 입성한 '하녀', 그의 대표 영화로 꼽혔던 '태양은 없다'는 물론 그를 대중에 각인했던 드라마 '모래시계'까지 모두 접고 이제는 이정재의 대표작으로 '관상'을 꼽을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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