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가슴이 용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제춘모(32, SK)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았다. 식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내려놓으니 다른 길이 보인다. 그 마지막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똘똘 뭉쳐있는 제춘모다.
제춘모는 지난해까지도 선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2002년 SK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제춘모는 SK 선발진을 이끌어나갈 축으로 손꼽혔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2년에는 9승, 이듬해인 2003년에는 10승을 기록하며 사실상 에이스의 몫을 했다. 그 후 몇몇 문제로 부진하기는 했지만 아직 30대 초반의 나이였다. 선발이 꿈이었고 한결같이 그 꿈을 좇았다.
하지만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았다. 몇몇 기회도 운이 부족해 날아가곤 했다. 그 사이 점차 팀 내에서 자신의 입지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군 등판 기회도 찾아오지 않았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심했다. 선발로 뛰고 싶은 자신의 생각, 그리고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한다는 주위의 조언 속에서 갈등의 나날이 꽤 있었다. 결국 제춘모는 올해 전지훈련을 앞두고 결단을 내렸다. 제춘모는 “선발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버렸다”라고 털어놨다.

웃으며 자신의 갈 길을 설명하는 제춘모지만 마음고생이 없지는 않았을 터다. 이에 대해 제춘모는 “현실을 받아들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외국인 투수들이 득세하는 선발진에서는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 있었다는 뜻이다. 일단 1군에서 살아남아야 나중도 도모할 수 있다. 그렇게 제춘모는 ‘불펜투수’로서의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성과는 나쁘지 않다. 오키나와 캠프 4경기에서 5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제구가 다소 흔들리는 경향은 있었지만 보직에 적응한다면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마음가짐의 변화와 함께 구종 추가 등 새로운 기분을 만들기 위한 제춘모의 노력도 오키나와를 뜨겁게 했다. 제춘모는 “투심패스트볼을 연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구속이 빠르지 않은 자신의 단점을 어떤 식으로든 메워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제춘모다. 이제 자신보다 연차가 더 높은 투수도 몇 없다. 이런 제춘모가 강조하는 것은 팀에 대한 헌신이다. 제춘모는 “팀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뛰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다. 그간 자신을 옭아맸던 굴레를 내려놓은 제춘모가 다시 출발점에 섰다. "모든 것을 불태워보겠다"라는 말에 제춘모의 의지가 모두 담겨있다.
skullboy@osen.co.kr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