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같은 이코노미석이라도 제값 주고 산 Y클래스의 경우 운 좋으면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될 때가 간혹 있다. 호텔도 가끔 무료 조식이나 한 단계 높은 룸을 배정 받을 때가 있다. 이렇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횡재를 만나면 짜릿함을 넘어 쾌감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임찬상 감독) 역시 이런 해피 바이러스가 분출하는, 교환가치를 상회하는 ‘귀요미’ 로맨틱 코미디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다. 납뜩이로 떴지만 여전히 티케팅 파워가 검증되지 않은 영화 신인 조정석과 흥행 갈증을 넘어 이젠 탈수 증상을 보일 것 같은 신민아가 좌충우돌 부부로 만났다.
여기에 ‘효자동 이발사’ 이후 ‘사어’를 준비했지만 10년간 메가폰을 잡지 못한 불운한 감독이 붙었고, 극장 장악력을 좌우하는 투자배급사까지 신생 회사다. 이런 조건을 종합해보면 비슷한 체급의 영화들이 치열하게 맞붙는 10월 비수기, 십중팔구 다른 영화의 병풍이 될 공산이 매우 높다.

하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런 예상을 영리하게 비껴간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가 결혼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조정석의 코믹감을 2년 전 기시감을 활용해 잘 살렸고, 신민아 역시 눈을 비비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 카메라 앞에서 하염없이 겸손했던 연기력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확실히 배우는 화보나 공항 패션 보다 연기 잘 할 때 가장 멋지고 예뻐 보이는데 이 작품을 터닝 포인트로 지금까지의 신민아는 잊어도 될 것 같다. 10년 넘게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며 간신히 44 사이즈의 옷을 고집했다면 이번엔 ‘저 실은 55 반 입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자연스럽고 능청스런 연기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
주민 센터 9급 공무원 영민(조정석)과 미술학원 임시교사 미영(신민아)은 4년 연애를 마치고 결혼한 신혼부부다. 서로를 분신처럼 끔찍이 아끼고 토닥거리지만, 간혹 상대가 내 맘 같지 않을 땐 사납게 태클 걸며 사랑을 확인하고야 마는 허니문 에피소드가 중반까지 밑밥 구실을 한다.
이런 장르에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는 게 바로 사랑의 훼방꾼들. 두 사람에게 각각 오해 살 법한 이성이 하나둘 등장하며 질투심이 유발되고 여기에 외모 콤플렉스와 불온한 상상력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점점 흥미와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해묵은 로코의 덫에 빠지지 않은 건 두 주인공의 꿈과 자아 찾기에도 적절하게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소원’에 이어 시나리오를 쓴 김지혜 작가는 소모적인 애정 쟁탈전과 사소한 오해와 그로 인한 결별 위기, 상대방의 진심 확인과 행복한 재결합이라는 안 봐도 비디오인 서사 얼개를 최소화했다.
대신 등단을 목표로 시 쓰기에 전념하는 영민과 전공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미영의 그림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 조심스런 재도전을 과하지 않게 서브플롯으로 끼워 넣었다. 24년 전 원작을 뼈대로 한 것이지만 이런 설정이 영화를 보다 풍부하게 하고 감칠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다.
왕성한 리비도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바지를 훌러덩 벗는 영민도 알고 보면 소중한 자신만의 꿈이 있는 문학도이며, 학원생에게 번번이 무시당하는 미영 역시 아내이기 전에 화가를 꿈꿨던 미술학도였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통해 마치 영화가 ‘지금 여러분 인생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것 같았다.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맥락이 매끄럽지 않았는지 편집 과정에서 ‘집들이’ ‘잔소리’ ‘음란마귀’ 등 챕터별로 구역을 나눈 것도 영화를 한층 잘 살렸다는 생각이다. 오지랖 넓은 주인집 아줌마 역의 라미란을 비롯해 조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조정석의 팬티 차림은 아낌없이 나오지만, 신민아의 속살은 기대하지 말자. ‘소원’ 제작진의 두 번째 영화로 15세 관람가이며 8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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