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나이’ 박정권의 운명과 극복의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10.06 06: 25

“환장하겠더라고요”
박정권(33, SK)은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미스터 옥토버’로 손꼽힌다. 치열한 포스트시즌의 전장을 누비며 누구보다도 더 크게 포효한 적이 많았다. 그러자 어느새 박정권에게는 ‘가을 사나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그만큼 시즌 막판, 그리고 큰 경기에 강하다는 일종의 훈장이었다. 하지만 박정권에게 이 꼬리표는 달갑지 않은 또 하나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가을에만 강하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랬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상대적으로 처지다가 찬바람이 서늘하게 불기 시작하면 펄펄 날았다. 찬란했던 가을과는 별개로, 시즌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봄과 여름에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간혹 타격감이 떨어져 2군에 가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는 박정권도 담담하게 이를 인정한다. 박정권은 “매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환장해 버리겠더라. 지나고 보면 항상 후회할 일만 남는다”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 이유를 ‘욕심’이라고 진단하는 박정권이다. 시즌 초반에는 항상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꾸 되풀이되는 초반 난조를 의식하게 되자 남모르는 스트레스도 컸다. 아쉽게도, 올 시즌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전반기 75경기에서 타율 2할5푼4리에 머물렀다. 2군에도 다녀왔다. 16개의 홈런, 62개의 타점을 수확하며 중심타자의 몫은 했지만 스스로의 성에는 차지 않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가을이 박정권의 가슴은 편안하게 하는 것일까. 후반기 맹타는 리그 최정상급이다. 5일까지 후반기 38경기에서 타율 4할1푼1리, 9홈런, 39타점의 눈부신 활약이다. 단순히 기록만 좋은 것이 아니다. 타구의 질이 좋다. 잡아 당기는 스윙 말고도 여러 방면으로 타구를 날려 보내며 야수들을 바쁘게 하고 있다. 위압감도 최고다. '한 방'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든다. 이렇게 외국인 타자 부럽지 않은 4번 타자가 중심타선에 고정되자 SK의 전체 타선도 힘을 내고 있다. 후반기 SK 타선의 상승세 중심에는 단연 박정권이 있다는 의미다.
5일 문학 한화전에서는 4타수 3안타(2홈런) 5타점 맹활약으로 생애 첫 한 시즌 100타점 고지를 밟기도 했다. 1회 2타점 적시타, 4회 솔로홈런, 5회 2점 홈런으로 팀이 이날 올린 6점 중 5점을 책임졌다. SK에서 한 시즌 100타점이 나온 것은 통산 네 번째고 2004년 이호준 이후 10년 만의 기록이다. '슬로 스타터'라는 이미지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하나의 상징적인 지표다.
5일 경기 후 “의미가 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아프지 않고 관리를 잘하며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르다보니 기록이 나온 것 같다”라고 100타점 기록에 대한 의의를 이야기한 박정권은 “시즌 내내 잘할 수는 없지만 편차의 폭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팀 승리, 개인 기록 수립에 마냥 좋아할 수도 있는 날이었지만 박정권의 시선은 지금이 아닌, 마냥 앞을 향하고 있었다. 가을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박정권의 강한 의지는 언젠가 그 운명을 극복할 만한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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