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그야말로 돌풍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집계에 따르면 '인터스텔라'는 13일 하루동안 전국 35만 9135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를 수성했다. 누적관객수는 304만 6351명이다. '패션왕' 등 소위 10대 취향 영화들을 제치고 가장 큰 수능 특수를 입은 영화가 됐다. 10대들까지 흡수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신드롬급 인기인 것이 증명됐다. 북미 박스오피스 집계 전문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는 최근 "'인터스텔라'의 가장 큰 마켓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여들었고 한국 다음으로 영국, 라시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멕시코, 스페인, 브라질 순"이라고 전했다. 개봉 후 한국(South Korea)은 1416만 6512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북미 제외 전세계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인터스텔라'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처럼 한국에서 유독 잘 되는 영화로 기록될 지도 주목되는 바다. '인터스텔라'가 한국 관객들의 어떤 관람 욕구를 자극한걸까.

- 낡았지만 영원한
앞서 워킹타이틀의 '어바웃 타임', '겨울왕국' 같이 북미 포함(혹은 제외) 전세계 국가 중 한국에서 가장 좋은 흥행을 거둔 영화의 특징은 '가족애'를 담았다는 점이 있다.
실제로 '인터스텔라'는 고전적인 가족의 이야기에 '끈의 이론' 같은 여러 과학 이론들을 접목시켰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주의와 영웅주의가 등장한다. SF와 신파의 만남이라고도 불렸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기존 놀란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색깔로 영화팬들에게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기존 놀란의 팬이였다고 해도 이 영화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림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관객들이 유난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가족 영화에 약하다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매끈한 이야기보다는 다소 투박하더라도 따뜻함에 약한 것이 영화 흥행에서 드러나는 국민 정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놀란의 전작 '인셉션'의 성공 같은 케이스가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놀란이 이 영화의 프로덕션 중 아빠가 됐다는 것도 일면 의미있는 일이다. 놀란은 우주보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인터스텔라'를 소개하는데, 그가 만약 아버지가 아니였으면 이런 영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과 사랑 이야기는 가장 낡은 반면 가장 영원한 주제다.
- 어렵지만 아름다운
'인터스텔라'는 희망을 찾아 우주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매튜 맥커너히, 제시카 체스테인, 앤 헤서웨이, 마이클 케인 등이 출연한다. 하지만 출연 배우보다 감독의 이름이 더 먼저 언급되는 영화다.
'인터스텔라'의 국내 흥행에는 연출을 맡은 '놀란표'라는 브랜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그는 '메멘토', '다크 나이트', '인셉션' 등을 만들어 국내에서도 단단한 팬층을 거느린 스타 감독. 특히 놀란의 영화들은 '지적 만족'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왔는데, 놀란은 한 인터뷰에서 "내 영화에는 이상하리만큼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 같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놀란 영화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지적 허영'을 언급하는 시선도 있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과장된 면이 있을 지언정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어렵다'는 것은 중론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난해하다', '몇 번을 봐도 이해하기 힘들다'란 반응은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를 보기 전 과학적 지식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봐야하나 등의 진지한 질문도 있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이런 난해함을 상쇄시키는 힘이 있는데, 그 근원에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에서 한 순간 우주가 펼쳐지는 순간, 영화는 머리가 아닌 가슴을 건드리며 경이로움의 세계로 보는 이를 인도한다. 이는 '암표'까지 등장할 정도로 아이맥스 관람을 갈망하는 현상과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놀란 스스로는 한국 관객들이 특히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놀란은 이에 대해 최근 중국 상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관객의 과학적 이해와 소견이 높아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 유머를 곁들여 말하기도 했다.

- SF지만 SF 같지 않은
SF는 사실 취향을 타는 장르다. 누군가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폄하한다. 사실 이 같은 양 극단적인 반응이 가능한 장르가 SF인데, 그래서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른 관객을 흡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인터스텔라'는 돌풍이라 말해도 넘쳐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SF이지만 SF 같지 않은' 면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놀란이 아이였을 때부터 머릿 속에 구상한 영화라고. 그는 '스타워즈'를 12번이나 봤다. 실제로 오마주를 담았다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도 큰 감명을 받았고 그 메이킹에 관해 깊숙한 연구를 했다. 각본을 쓴 동생 조나단 놀란 역시 어릴 적 XF광이였다.
이 같은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된 '인터스텔라'는 하지만 "너무 SF같다"란 표현이 현장에서 금기어 취급을 받았다고. 세트는 의도적으로 실제 현대적 모습을 반영한 듯, 비좁았고 사적인 공간처럼 꾸며졌다. 놀란의 공간에 대한 집착적일 정도의 고증이 드러난다.
상상력에 기대지 않고 이론 물리학의 영향을 받아 스토리가 발전됐다는 점, CGI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등은 이 영화가 가장 획기적이면서도 얼마나 고전적인가를 보여준다. 미국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감소에 따른 반발도 담았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한국 관객들에게는 가깝게는 작년 '그래비티'처럼,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이른바 '극장 구경'의 현상으로도 비춰진다. 동시대 가장 넓은 캔버스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 놀란이 선사하는 진기한 우주 구경이 SF 장르의 호불호를 넘어서는 것이다.
nyc@osen.co.kr
'인터스텔라' 스틸,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