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두꺼운 자료와 노트북을 들고 나타난 황진우 CJ E&M 방송글로벌콘텐츠 기획개발팀 팀장은 손부터 내밀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싱글벙글 미소와 몸에 배어있는 친절함에서 미팅이 잦은 비즈니스맨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속한 방송글로벌콘텐츠 기획개발팀은 직접 포맷을 판매하지도,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판매되는 전 과정을 관리한다. 글로벌 조사부터 포맷 개발, 현지화 프로듀싱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프로그램 제작 노하우와 핵심 기술을 집중시킨 바이블 제작이나 해외 바이어들에게 선보일 트레일러를 만드는 것도 이들이다. 중국판 ‘슈퍼디바’ ‘꽃보다 할배’ 등도 이 팀의 결과물이다.
당초 황 팀장은 슈퍼액션 채널 PD였다. 종합격투기 대회 UFC를 한국으로 처음 가져온 이도 황 팀장이다. 그때부터 해외 방송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다. 이후 ‘탑기어 코리아’ ‘코리아 갓 탤런트’ ‘오페라 스타’ 등이 그를 거쳤다.

=중국내 한국 프로그램 위상이 왜 달라진 거 같나.
“최근 중국 지역위성TV들의 상업방송이 허용이 되면서 포맷 수입이 시작했다. 결정적 계기가 ‘보이스 오브 차이나’다. 시청률 1%만 나와도 ‘대박’인 중국에서 5%가 넘는 경이적인 기록을 냈다. 대륙을 뒤흔든 경이로운 수준이다. 거의 모든 지역 방송사들이 포맷 구매 붐이 일어났다. tvN ‘슈퍼디바’, MBC ‘나는 가수다’ 등 한국 예능프로그램도 여기에 합류하게 됐다. 그러다 MBC ‘아빠!어디가?’가 결정타를 날렸다. 중국에선 야외버라이어티가 낯선 프로그램인데, 이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빠!어디가’는 부자의 정을 담아낸다.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사상이나 화면을 구성하는 풍경 등에서 중국 시청자가 보기에 익숙하거나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을 거다. 중국에서 촬영한다면 화면이 비슷하거나 더 좋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고. 이후 앞 다퉈 한국예능프로그램 포맷을 사가게 됐다.”
=그래도 중국과 한국 사이엔 정서적 차이가 있지 않나.
“당연하다.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중국 프로그램들은 호흡이 길다. 우리나라는 호흡이 짧은 편이다. 중국에선 니샷(knee shot)이나 풀샷(full shot)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바스트샷(Bust shot)을 선호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한국 스타일을 고수하면 중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성공한 중국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많이 참고해야 한다. 현지 프로듀서가 어떻게 풀어 가느냐, 즉 현지화가 매우 중요하다. 현지에 맞는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한다. 공동제작을 하더라도 중국 제작진을 가르친다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참고할 수 있도록 조언은 하되 결정은 중국 제작진이 하는 식이다. 그래서 중국 제작진의 역량도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도 포맷을 판매할 때 현지 프로듀서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한다.”
=우선 함께 일하는 연예인부터 다르다.
“우리는 사전 기획 단계가 길고, 제작진과 연예인이 사적으로도 끈끈하다. 버라이어티에선 그런 유대 관계가 중요하다. 중국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떤 프로그램은 PD가 촬영하는 첫날 연예인을 처음 만나는 경우도 있다더라. 그 연예인 몸값이 워낙 비싸서 사전 미팅도 못한 거다. 결국 중국 제작진이 얼마나 바이블을 숙지했느냐, 얼마나 현지화를 시키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그대로의 것을 고수하면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 결국 방송되는 나라에 대한 공부 많이 해야 한다. 포맷을 판매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장에 대한 문화와 움직임을 연구하고, 비즈니스 매너까지 익힐 필요가 있다.”

=현재는 한국과 중국이 공동제작을 하지만, 언젠가 한국을 넘어설 텐데.
“그건 분명하다. 광고시장만 중국이 한국에 비해 3~4배에 이른다. 투입 자본의 수준부터 다르다. 온라인 콘텐츠까지 확장시키면 훨씬 크다. 촬영 여건도 우리보다 좋다. 인력도 많다. 중국 한 제작사의 경우 PD수가 CJ E&M 전체 PD수 보다 많더라. 게다가 다 20대 초반이다. 중국이 상업방송을 2003년에 본격화하면서 젊은 인력들이 충원됐다. 그들에겐 야외버라이어티는 해보지 않은 것이고, 의욕이 상당하다. 해외 세미나에 가면 중국 프로듀서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거침없다. 그들이 성장했을 때 과연 우리를 필요로 할까? 그렇지 않다. 한국 방송사들은 중국 시장을 통해 단기적인 이익만 추구할 게 아니라, 함께 아시아를 공략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큰 그림만 봐야 한다.”
=무작정 베끼기도 심각하지 않나.
“우리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명확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동제작은 포맷을 바탕으로 한다. 플라잉PD가 중국으로 가는 게 공동제작의 전부가 아니다. 프로그램을 다 만들고 나면 끝나는 거다. 그 이후 광고나 수익 등도 중요하다. 결국 계약 단계에서 잘 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포맷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포맷 전문팀을 구성한 건 CJ E&M이 처음이다. 그만큼 포맷도 전문 인력이다. 우리나라 방송시장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려면 포맷 전문 인력이 육성돼야 한다. 해외 바이어나 프로듀서들에게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우리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력들 말이다. 해외 마켓해서 프로그램을 판매할 때 CJ E&M 포맷이라고 하기 보단 K-포맷이라고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결국 막을 수 없다는 건가.
“일단은 그렇다. 국제 TV 프로그램 포맷 컨설턴트사 더 포맷 피플(The Format People)의 미셸 로드리그(Michel Rodrigue) 대표가 한국을 찾았는데, 카피캣(모방품)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다고 하더라.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는 완성작만 보고 이면을 못 봐서다. 준비과정과 우여곡절은 모른다. 구성안이 곧 바이블이 아니다. 바이블에는 축적된 노하우와 온갖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다. 프로그램이 탄성하게 된 과정을 전부 담는다. 아이디어와 형식만이 포맷이 아니다. 프로그램이 첫 단추를 끼우는 순간부터 송출까지가 포맷이다. 현지화를 시킬 때 가변적인 요소도 있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다. 예를 들어 ‘꽃보다 할배’에서 짐은 반드시 본인이 싸야 한다. 이를 지키기 못하면 사전 준비과정이 흥미롭지 못하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메이드 인 중국’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인 차이나’다. 그렇게 되기 위해 중국 스스로 바뀔 거다. 돌이켜보면 한국 방송사들도 해외 포맷을 무작정 가져오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판권을 구입한다. 정상적인 시장 순리에 들어온 거다. 어느 순간 중국도 그렇게 할 거다.”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의사 결정을 빠르다. 일사천리다. 중국 제작사나 방송사의 성장 속도가 빠른 이유다. 조직문화가 굉장히 보수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회의를 할 때 말단 직원부터 1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의사 결정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중국도 최근엔 리얼리티쇼를 자체 제작한다. 괜찮은 것도 꽤 있다. 그걸 보면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CJ E&M의 중국 시장 개척은 오래됐다. 그 역량에 도움을 받은 것도 있나.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 분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다. 또 우리가 포맷을 많이 수입하지 않았나. 당시엔 외화 낭비니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수입한 프로그램을 현지화 시키면서 배운 게 많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판매된 ‘지니어스’의 바이블은 룰 설명만 200페이지가 넘는다. 편집 방법 등이 더해지면 500페이지가 넘는다. 바이블이 그냥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입한 프로그램들의 바이블을 참고해서 만들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 마켓에서 국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위상이 달라졌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에서 문의가 많아졌다. 그곳 방송 시장이 확대 중이다. 해외 반응이 좋다보니 우리도 해외 판매용 포맷 트레일러를 따로 만들만큼 열심히 준비한다. 포맷 판매에선 프로듀싱과 R&D가 동시에 수반이 돼야 한다. 해외자료도 많이 참고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목표로 하는 건가.
“그렇다. 중국은 그중 하나다. 미국과 유럽도 정말 큰 시장이다. 제작 역량도 뛰어나다. 업계에서 5~10개국에 팔린 프로그램을 실버 레이블이라고 부르고, 10개국 이상 팔리면 골드라고 칭한다. 20개 이상 팔리면 플래티넘이다. 브랜드가 형성된 단계다. 사람들이 포맷을 사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인데, 단가가 엄청나다. 플래티넘 레이블 중 하나를 CJ E&M이 가져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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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