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남자.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는 것도, 인상 좋은 웃음으로 사람을 홀리는 것도, 여론을 잘 몰아서 인기를 얻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남자. SBS '펀치' 속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분)은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랜시스 언더우드(캐빈 스페이시 분)를 닮았다.
필요하면 발바닥에 바짝 붙는듯 하지만 반드시 뒤통수를 치고, 그렇게 배신해놓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다 다시 자기 편이 돼달라고 얘기하는 뻔뻔함까지. 전형적인 악역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매력적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성격 유형과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비단 이태준과 프랜시스 언더우드 뿐만이 아니다. 두 드라마는 등장인물 모두가 '누가 더 나쁘냐', 고로 '누가 더 성공할 수 있느냐'를 두고 싸운다. 허울 좋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자기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욕망에 너무 충실해서 오히려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미워할 수 없음. 이는 이같은 정치 스릴러 드라마 주인공의 가장 대표적인 요건인지도 모른다. 억울하게(자기가 보기에) 죽은 형을 떠올리며 칡뿌리를 뜯고, 아무데서나 짜장면을 호로록 흡입하며, 조금만 좋은 기회다 싶으면 금세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이태준의 모습은 어딘가 짠하기까지 하다. 눈엣가시였던 윤지숙(최명길 분)이 추락하자 신이 나서 '잘가세요'를 부르는 거나, 자신을 감옥 보내는데 혈안이 된 박정환(김래원 분)에게 화가 끝까지 나있으면서도 다정하게 '정환아'를 부르며 허허 웃는 모습도 귀여울 지경.
자신은 '급'이 다르다 자부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흠을 덮기 위해 이태준과 거래를 하는 윤지숙은 또 어떤가. 자신이 한 말을 자기가 뒤집으면서도 자기 의도는 선하니 괜찮다고 위안 삼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물론, 최고로 사랑스러운 인물은 20년 모신 이태준한테 뺨을 후려맞고도 찍 소리 못하던 조강재(박혁권 분)다. 그는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는듯하다가도 꼭 어설프게 뒤통수를 시도하고 또 실패함으로써, 동정을 산다.
프랜시스 언더우드도 그렇다. 드라마 시작부터 그는 단단히 물을 먹는다. 출세길을 보장해줄 줄 알고 유력 대통령 후보를 열심히 밀었으나,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태도를 바꾼다. 심통이 나서 시청자들을 향해 독설을 뿜는 언더우드는 사탕을 빼앗긴 어린 아이 같기도 하다.
그 역시 권력욕에 솔직한만큼, 식욕도 남다르다. 특히 자신의 유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허름한 돼지 고기 식당에서 게걸스럽게 립을 뜯는다. 이 솔직한 욕망은 언더우드의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지만, 그래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도 온다. 어린 기자한테 한방 먹기도 하고, 방송에 나가 바보짓을 해서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차곡차곡 복수에 성공한 그는 결국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자신이 그 자리까지 올라간 상태. 이달말에 시작되는 시즌3에서는 프랜시스 언더우드 정부를 출범시키지만 범상치 않은 시련들이 몰아닥칠 예정이다.
그는 분명 '추악하게' 권력을 얻어 승승장구 하고 있는데, 시청자는 이상하게도 그를 응원 하게 된다. 물론, 세심하게 쓰여진 캐릭터 덕분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하우스오브카드' 연출자 중 한명인 존 데이비드 콜스는 "극중에서 언더우드를 연기한 스페이시가 악행도 하고 정치적으로 부도덕한 일을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기 때문에 바로 그부분에서 사랑받지 않았나 한다. 드라마 중에서 보면 스페이시가 카메라를 보고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연출하는데 그 부분이 시청자에게 실제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다.
'펀치' 속 인물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비슷하다. 머리 속에는 나쁜 생각이 가득하지만, 카메라가 이를 매우 타이트하게 잡음으로써, 오히려 시청자들이 그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들만의 리그'로 보일 수도 있는 배경이지만 짜장면 등 서민 음식을 계속 노출시키고, 이들을 상징으로 이용해 인물 간 권력관계를 쉽게 풀이한 것도 인기 비결.

조재현은 “어떤 기사를 보니 (김)래원이는 멋있게 먹고 조재현은 맛있게 먹는다고 하더라. 성공한 사람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어릴 때 먹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이태준은 가난했던 사람이니 음식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허겁지겁 먹는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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