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간단히 말하면, '난 년'이죠."
정확한 워딩은 이랬다. 지난해 신곡 '진실 혹은 대담'을 내고, 이 곡을 관통하는 주제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나는 '난 년'을 대체 어떻게 순화해야 하나 고민하다 기사에 '난 여자'로 바꿔썼다. 물론, 가인이 말했던 그 쫀득한 어감을 살리진 못했다.
생각해보면 가인은 언제나 '난 년'이었다. 빅마마를 잇는 실력파 여성 보컬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막내로 데뷔, 퍼포먼스 퀸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는 꽤 일관성 있게 비범한 여자였다. 시건방 춤을 추고(걸그룹인데!), 섹스에 대해 노래했으며(여가수가!),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자들을 얄밉도록 멋지게 묘사했다.

가요에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라이브 실력에 의심을 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보여준 파격을 향한 일관성은 가인이 그 어떤 금기에 도전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역사가 된다. 다른 여가수와 달리, 선정성 논란이 오히려, 유독 더 '득'이 되는 이유다.
청순하게 시작해, 자극성을 점점 높이며 섹시함을 양념 치는 게 아니라 그는 줄곧 그 방면으로 적지 않은 도전을 시도하고 표현의 영역을 시험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매력을 먼저 알아차린 건 팬들이라고 한다. 가인의 데뷔 시절부터 함께 한 조영철 프로듀서조차도 일부 남성팬들이 가인의 성적 매력에 주목하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그런가?'라고 생각했을 정도. 작은 몸집에 작은 눈을 가진 가인은 노래만 하는 보컬그룹 멤버이면서도 묘하게 성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이중매력이 있었다,고 팬들은 주목했다.
팬들의 주목에 프로듀서도 길을 찾았다.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에서 걸그룹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시건방스러운 춤을 유행시키고, 성행위를 직접 묘사하는 듯한 안무까지 소화하면서 가인도 '남다른 섹시 코드'를 개발할 밑바탕을 꼼꼼하게 완성해냈다. 그리고 2010년 첫 솔로 '돌이킬 수 없는'에서 탱고를 접목하고 맨발로 농염한 춤을 추면서 '고품격 섹시'를 향한 스타트를 성공적으로 끊었다.
페미니즘과 섹시 콘셉트는 양립할 수 있는가. 이후 가인의 행보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인 듯 했다. 큰 히트를 친 '피어나'가 수록된 앨범 제목 '토크 어바웃 S'에서 S는 그 누가 봐도 섹스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베드신을 소화하고, 노래 가사에선 성에 막 눈을 떠서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은 황홀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는 가인의 춤은 또 어떤가.
다른 걸그룹이 했으면 날벼락 떨어질 법도 했을 이 설정들은 '첫경험에 대해 노래하는 여가수도 있어야지'라는 스토리텔링이 힘을 받으면서 큰 호평을 받았다. 중요한 건 가인의 주 타깃이 남성의 성욕이 아닌 여성의 공감대였다는 사실. 이 곡은 과연 여가수의 섹시 콘셉트에 새 장을 열었다고 할만했다.
다음 곡 '진실 혹은 대담'에서 이같은 행보는 더 탄력을 받는다. '피어나'의 히트와 별개로, '토크 어바웃 S'를 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루머는 끊이지 않는다. 여성들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철벽 중 하나다. 가인은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오히려 즐기는 경지에 오른, 흔히 말하는 '난 년'을 주제로 꺼내들었다. 다만 노래가 대중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반응이 좀 꺾이기가 무섭게, 역시 여자의 진짜 얘기를 푼 섹시 콘셉트는 안먹히는 게 아닐까 하는 풀이도 나왔다.
그래서 이번 새 앨범 '하와'는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컴백 전부터 초강력 누드를 준비했다던가, 극단적인 섹시 콘셉트를 한다는 등의 말이 들려왔다. 더구나 소재는 성경이었다. 보통 성경과 페미니즘은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통용돼왔다. 성경에서 가장 능동적인, 유혹의 여신을 꺼내들었다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저 그런 '주체적인 여성=악녀'의 공식만 강화할 수 있는 위험도 적지 않았다. (물론 가인, 혹은 가인 측이 우리는 페미니즘을 노래한다고 못 박은 적은 없다)
언론 시사 후 기자들은 이 작품이 예술로 받아들여질 것인지 외설로 낙인찍힐 것인지 쉽게 추측하지 못했다. 뮤직비디오 카메라는 가인의 엉덩이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힙라인에 집중했고, '벌크업'된 허벅지는 포털사이트를 도배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한발만 기우뚱해도 시시하게 결론이 난다. 앨범이 발표된지 3일. 그러나 가인은 여전히 양쪽 모두에서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뱀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춤, 앨범을 관통하는 저항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감하게 엉덩이 라인 노출과 '쩍벌'을 시도하면서 남성을 유혹하는 표정 대신 통일된 콘셉트를 향해 차곡차곡 긴장감을 쌓아올린다. 그래서 비슷한 노출과 동작을 시도했던 이전 걸그룹들의 논란을 사뿐히 피해갔다. 그러면서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물에 입술을 적시는, 충분히 '음란마귀'를 쓰고 볼 수 있는 장면도 살짝 뿌렸다. 역시나, 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다분히 논쟁적인 이 작품에 역시나 모두가 뜨겁게 화답 중이다. 지상파는 일부 춤 동작과 '애플'의 가사에 제동을 걸었다. 음원차트와 히트 동영상은 가인이 휩쓸고 있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가인은 또 한번 이슈의 중심에 서면서 존재감을 확인했다. 지지가 더 많다는 점에서, 다음 도발에도 힘이 실린다.
'난 년'이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흥미롭다. 그의 발걸음에 따라 외설과 예술의 경계선도 뱀처럼 자유자재로 휘고 있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인과 그 제작진은 분명 처음 맛보는 사과를 크게 한 입 깨어물었고, 그 맛은 꽤 달콤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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