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입이 돌아왔다. 힙합신을 휩쓸었던 그의 데뷔 앨범 ‘헤비 베이스(Heavy Bass)’ 이후 만 10년 만에 공개한 정규 4집 ‘스트리트 포어트리(Street Poetry)’는 한 편으로는 초심으로 돌아간, 또 한 편으로는 10년만큼 숙성된 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피타입은 “‘헤비 베이스 2.0’ 버전의 만족치를 채웠다”고 말했다.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은 아닐지 모른다. 데뷔 후 5년 간 힙합을 벗어났던 그는 지난 2013년 정규 3집 ‘랩(Rap)’을 발표하고 전격 복귀했지만, 그는 “당시에는 복귀 자체에 휘둘린 것 같다”며 조금은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이 그에게는 더욱 특별하다. 현재의 피타입을 오롯이 담아낸 앨범. ‘스트리트 포어트리’가 나오기까지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제 2의 ‘헤비 베이스’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측면에서 보면 11년 전, ‘헤비 베이스’의 2.0 버전을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회사는 컸는데 돈이 없었어요. 회사가 커도 힙합은 불모지였고, 그때 오리지널 힙합인데도 회사에서는 굉장히 실험작이라고 생각했죠. 제대로 못 했어요. 뮤직비디오도 나오긴 했지만 스스로 성에 안 찼어요. 그 당시에는 뮤직비디오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케이블 환경이었는데, 나가지도 못했어요. 녹음 부스 빌릴 돈도 없었고, 가내수공업처럼 작업했어요.”
힙합이 조금 더 생소했던 2004년. 피타입의 ‘헤비 베이스’는 앨범이 4만 장 이상 팔릴 정도로 히트했지만 정작 아티스트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피타입은 “당시 함께 작업했던 비트메이커들에게 곡비도 못 줬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심지어 앨범 재킷의 겉과 안의 철자가 달라서 ‘중의적 의미냐’는 질문을 받는 ‘웃픈’ 상황까지 있었다며 웃었다. 아직 어렸던 20대의 피타입에게 명반인 동시에 상처가 되기도 했던 데뷔 앨범이었다.
“그땐 모르는 게 많았죠. 어리석게 상처만 얻고 끝난 부분이 있어요. 지금 라이머 형 밑에서 좋은 둥지 틀고 있을 때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이번에는 아트워크도 꼼꼼하게, 클래식 앨범다운 아트워크가 되게끔 했어요. 개인적으로 발로 뛰어다니면서 진두지휘 했고, 사운드 면에서도 믹싱, 녹음도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후회 없는 앨범이에요. 모두 쏟아보자고 해서 만든 앨범이니까, 개인적으로 헤비베이스 2.0 정도 만족치를 채운 것 같아요.”
3집 이후 1년 4개월 만에 나온 4집 앨범에 무게가 다른 이유는 피타입 자신에게 있었다. 피타입은 랩으로 컴백은 했지만 힙합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던 것 같다며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완성된 4집 ‘스트리트 포어트리’는 힙합으로 제대로 돌아온 피타입의 자신감.
“힙합에 대해 스스로 되묻는 시점에서 다시 작업에 들어갔어요. ‘이런 식으로 해야지’, ‘이런 테마를 다뤄야지’라고 무슨 얘기를 할 건지 스스로 감이 잡힌 선에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꼬박 1년 4개월이 걸렸어요. 전작처럼 또 똑같이 채워지지 않은 뭔가가 생길 것 같아서 가을 한 철은 아예 놓기도 했어요. 스스로 채워지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찾은 다음에 작업을 다시 했어요. 지금은 충분히 만족해요.”
# ‘돈키호테2’, 그리고 나-세상-힙합
이번 앨범은 강진필(피타입 본명)과 그가 살아가는 세상, 그리고 그 안에 공존하는 힙합이 조화를 이룬 앨범이다.
“크게는 인간 강진필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그러면서 그가 돌아가고자 하는 힙합 색. 나, 세상, 힙합, 이 세 개의 테마가 어우러지면서 서로 관계 맞는 이야기들이에요. 나랑 세상을, 나랑 힙합을 분리할 수 없는 거고. 지금의 세상과 힙합을 분리할 수 없죠. 그런 이야기를 담고자 했어요.”
특히 눈이 가는 것은 타이틀곡 ‘돈키호테2’인데, 예전 ‘돈키호테’가 힙합신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만큼 이 제목으로 새로운 곡을 만들어낸 피타입에게도 부담은 컸다고 한다.
“제목부터 일단은 정말 부담이었어요. 스스로 만들어 낸 히트곡이었지만, 어느덧 이게 신을 대변하는 곡이 되다 보니 그냥 작품성만 놓고 웰메이드 트랙을 만들면 되는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그럼 많은 사람이 안 들을 텐데. 그럼 ‘돈키호테’ 이름이 창피하지 않을까. 그럼 많은 사람들이 듣는 노래를 해야 하나. ‘돈키호테’인데!”
결국 이 곡을 완성시킨 것은 역시 돈키혼테 마인드. 피타입은 “과거 돈키호테를 만들었던 피타입과 그를 바라보는 현재의 피타입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1집 낸 이후로 한 10년 동안 ‘돈키호테 같은 곡 또 안 나오나’ 하는 말을 들었어요. 이젠 좀 만들어 볼까 하고 접근하니까, 역시나 그 부담이 고스란히 왔죠.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돈키호테여야 하나’…막판에 가서는 그냥 ‘이 고민하고 있는 내가, 10년 지난 돈키호테의 모습이구나’ 생각했어요. 과거에 그 곡을 만들고 그 이후 10년 제가 슈퍼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중간에 판을 떠나기도 했고, 다시 또 밑바닥부터 하고 있고. 저를 포장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해서 그 영광을 못 누려서 초라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담아내고 내자 했어요.”
# ‘헤비 베이스’ 10주년을 기다린 팬들에게
이번 앨범은 피타입이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앨범. 작업은 일찍 시작됐지만 앨범이 발매되고 보니 11주년이 됐다. 지난 3집 앨범에서의 아쉬움을 지우고자 바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앨범 수록곡 전체에 피타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10주년 앨범이라고 해놓고, 겨울에 낸다고 해놓고 결국 봄 바람과 함께 내게 됐어요. 기다리셨다면 조금은 미안하고, 하지만 기다림만큼 부응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에게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려고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리듬도, 사용하는 언어도 많이 바뀌었고, 심지어는 바뀌기 이전의 모습도 온전히 앨범에 담았어요. 감추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캐치하면서 들으면 듣는 재미가 있을 거에요. 무엇보다 CD를 걸고 쭉 들었을 때 각 곡 간의의 케미컬과 연결까지 잘 챙겼고, 아트워크도 글로벌하게 인지도를 쌓고 있는 분들이 전례 없는 콜라보레이션을 했기 때문에, 음반으로 봐도 좋은 거에요. 꼼꼼하게 챙기면서 감상해 주시면 수고가 헛되진 않았다고 느낄 것 같아요.”
(2편에 계속)
sara326@osen.co.kr
브랜뉴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