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망가진다. 한없이 지질하지만, 어딘가 귀여운 구석도 있다. 영화 '스물'(감독 이병헌, 제작 영화나무)가 배우 김우빈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김우빈이 이렇게 코미디에 능한 배우였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김우빈의 지난 대표작들을 돌이켜 보자. 드라마 '학교 2013'(KBS 2TV, 2013), '상속자들'(SBS, 2013), '친구'(2013), '기술자들'(2014) 등 대부분 힘이 들어간 캐릭터들이었다. 사연이 많거나 터무니 없이 멋졌다. 특유의 남성미가 도드라졌다. 가느다란 선에 곱상한 외모를 지닌 또래의 남자배우들과는 다른, 김우빈만의 강점이기도 했다.
'스물' 속 치호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있다. 대학생 혹은 재수생이 된 친구들과 달리 치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발적인 백수가 된다. 낮에는 집에서 빈둥거리고, 밤에는 부모가 준 용돈으로 클럽을 전전한다. 허세는 있지만 가식은 없다. 엉뚱하긴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발랄하다. 이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김우빈의 친근함에 어느새 정들게 된다.
그의 애드리브가 빛나는 신도 있다. 아버지(김의성)에게 용돈 달라고 생떼를 쓰는 장면과 후반부 소소반점에서 건달들과의 대치 장면이다.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다양한 표정이 웃음 포인트다. 첫 번째 신은 김의성과 함께 만든 장면으로 "선배님이 잘 받아주셔서 좀 더 발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신 또한 "현장에서 합을 맞추다가 나온 장면으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물론 김우빈의 스무살은 이와 달랐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 중학교 땐 전교 5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했고, 모델을 꿈꾸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엔 석 달 동안 삶은 달걀과 닭가슴살만 먹으며 운동을 했다. 영화 속 낯부끄러운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만큼 뻔뻔하지도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부모에게 의지할 만큼 철부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또 코미디가 낯선 장르가 아니었다. 조기종영을 했지만 즐거운 기억을 남긴 MBN 시트콤 '뱀파이어 아이돌'(2012)이 있었다. 평소 코미디와 예능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이준호, 강하늘, 정주연, 전소민 등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전부 또래라는 점도 한 몫했다.
"망가지는 데 두려움은 없다. 그저 그 인물로 보여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고 말하는 김우빈. 그의 열연 덕분인지 개봉을 앞둔 '스물'은 3월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12일 언론시사 이후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실시간 예매율 역시 30%를 넘었다. 그의 바람이 관객들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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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