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상회' 강제규 감독 "사랑에 대한 편견, 해소되길 바랐다" [인터뷰]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3.29 09: 59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3). 강제규 감독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흥행사다. 어쩌면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그의 영화라고 단정 짓기도 쉽다.
하지만 지난 2014년 내놓은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보면 우리가 아는 강제규 감독이 맞나 싶다. 뭉클한 멜로드라마다. 이번에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내놨다. 바로 9일 개봉하는 '장수상회'(제작 빅픽쳐)다.
'장수상회'는 까칠한 70세 노인 성칠(박근형)이 앞집으로 이사 온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전반부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맛으로 관객들을 설레게 하고, 후반부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국내에서 보기 드믄 노년의 로맨스를 통해 그는 "사랑과 세대에 대한 편견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그로부터 '장수상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르적으론 기존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멜로에 대한 관심이 생긴 계기가 특별히 있나.
"그동안 특정 장르를 고집한 건 아니었다. 장르를 떠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거다. 당시 한국영화에서 전쟁이든 첩보든 없기도 했고,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물론 멜로도 하고 싶은 유형의 장르였다. 공교롭게도 할 기회가 없었다. 관심사가 바뀌거나 내 영역 속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은 아니다."
=사람에 집중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이웨이'든 '태극기를 휘날리며' 등 대작들은 집중해야 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탱크나 파편이나 폭탄이 사물이고 대상이지만 일종의 연기자다. 총을 쐈는데 총이 나가지 않으면 그것도 엔지다. 파편이 제대로 튀지 않거나, 피가 덜 나와도 그렇다. 그때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아도 그 장면을 쓸 수가 없다. 외부적 요소나 환경이 지배하는 영화가 아닌, 배우에게 고스란히 집중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장수상회'는 눈 오고, 비 오고, 낙엽 뿌린 것 외에는 그런 요소가 없었다. 갈망하는 지점과 일치하는 영화였다."
=각본가가 따로 있더라. 각색하는 과정에서 주안점을 둔 것이 있나.
"이상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처음 썼고, 방은진 감독이 각색을 한 후 그 다음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같은 이야기 구조이지만, 내 식대로 변화를 줬다. 느낌이 참 좋은 시나리오였는데, 연출자가 연출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그런 지점을 중점적으로 작업했고, 내 스타일과 색깔을 담아내고자 했다.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좀 더 구체화 시키고 확장시켰다"
=극중 박양(황우슬혜)이 불량학생들을 혼내주는 장면이 상당히 코믹하다.
"초중반까지 경쾌하고 가볍게 흐름을 가져갔으면 했다. 그 범주 안에서 인물들이 어우러졌던 것 같다."
=후반부에선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진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색깔이 다른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수수께끼가 풀릴 때까지 가는 과정, 그 이후의 이야기에 있는데, 변환의 지점까지 표현이나 감정의 수위를 어떻게 변주해야 할지 까다로웠다. '장수상회'는 미스터리 극이 아니다. 미스터리면 차라리 트릭을 쓸 수 있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다. 사건과 상황을 치밀하고 정밀하게 조립해서 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전환점까지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들을 어떻게 끌어갈지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배우들도 이 부분을 초반에 힘들어 했다. 정밀성이 요구되는 지점이 있어 촬영 초반 단계에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제작보고회에서 '장수상회'는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드리는 헌사라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극중 캐릭터에 아버지의 실제 모습이 많이 담겨 있다"고도 말했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지 1년 됐다. 영화 촬영이 거의 끝날 때 심해지셨다. 촬영을 하면서 때론 먹먹해지곤 했다. 촬영하다가 아버지 생각이 나곤 했다. 하지만 나와 아버지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개인의 아픔만은 아니다."
= 그렇다면 성칠 캐릭터에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이 있나.
"없다. 성칠은 허구의 인물이다. 다만 '장수상회'처럼 조그만 가게에서 출발해서 마트가 되어 가는 과정은 우리 집안과 비슷하다. 부모님도 작은 가게를 일궈 자식들을 키우셨다. 부모님의 가게도 '00상회'였다. 그런 부분에서 남다른 애착은 있다."
=극중 수유라는 실제 지명을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영화 속 배경이 서울이라는 걸 아는데 굳이 가짜 지명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짜 지명을 쓰면 '이것이 가짜'라고 말하는 것 같더라. 실제 해당 지역에서 촬영을 했고, 그곳 주민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촬영을 했다. 극중 이미지와 맞는 곳을 촬영장소로 섭외했는데, 수유가 가장 잘 맞았다. 마트를 중심으로 세탁소와 중국집, 꽃집이 한 프레임에 들어올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마트와 세탁소는 실제 있는 곳이고, 중국집은 세트다. 꽃집은 빈 가게에 세팅을 했다.
=영화 속 지역공동체는 끈끈하고 따뜻하다. 마트와 세탁소, 중국집 직원들이 한 데 어울린다. 그래서 '착한 영화'라는 평가도 받는데.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얼마나 반영했느냐'에 대한 이야기인데, '장수상회'는 재개발을 둘러싼 생존 경쟁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를 운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적합한 인물들을 가져온 거다."
=박근형과 윤여정, 두 명의 '선생님'과 함께 했다. 영화계 대선배들과 함께 한 어려움은 없었나.
"사전에 대화를 충분히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두 분을 만났다. 촬영하는데 필요하거나 미리 알아서 도움이 될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윤여정 선생님은 오전 촬영이 힘들다고 했다. 박근형 선생님은 밤이 되면 알레르기가 생기고 눈에 실핏줄이 생겨서 밤 촬영이 힘들다고 했다. 두 분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시간뿐이었다. 조금 힘들지만 그걸 맞추면 되는 거였다. 덕분에 두 선생님 모두 현장에 오면 편하다고 해주셨다.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해주셨다. 그렇게 서로 믿음도 생겼다.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연기적 부분에선 걱정이 없었을 것 같다.
"많이 배웠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여러모로 도와주셨다. 왈츠 수료식 장면은 박근형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셨다. 당초 금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로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수정되면서 성칠과 금님의 사랑이 절정이 이루는 장면이 됐다. 내가 여기에 덧붙여서, 장수(조진웅)와 동네 사람들이 응원 오는 설정을 넣었다. 이 정도로 응원하면 재개발에 반대하는 성칠이 도장을 찍어 주지 않을까 했다. (웃음)"
=박근형, 윤여정 만큼 조진웅의 연기가 빛나더라.
"평소 잘 울지 않는데,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2009)을 보면서 조진웅 때문에 울었다. 그때 저런 배우가 있구나 했다. 조진웅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에서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자식은 가슴에 묵직하게 앉은 돌덩이 같은 것이라고'라는 대사가 있다. 조진웅 만큼 그 대사를 맛있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 했다. 편집할 때마다 조진웅이 그 대사 하는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글썽거렸다. 남자를 울리는 남자다."
=아이돌 멤버 출신인 찬열의 합류는 어떻게 이뤄졌나. 귀여운 이미지와 잘 맞는 역할이다.
"생각한 극중 이미지랑 잘 맞았다. 처음엔 엑소 멤버인줄 모르고 이미지 자료만 보고 캐스팅했다. 캐스팅한 후에 엑소 멤버라고 하더라. 눈이 얼마나 맑은지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게 된다. 항상 웃고 다녀서 현장의 '해피 바이러스'였다. 찬열이가 현장에 나오는 날은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연기가 처음이라 부담이 크고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역할과 이미지에 맞게 충실하게 해줬다."
=극중 백일섭과 임하룡이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하더라.
"좋아하는 분들이다. 백일섭 선생님은 개인적 친분이 없어서 부탁을 드리기 애매했지만, 장의 문자를 보냈다. 솔직한 심정을 담았다. 작은 역이지만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알겠어요'라고 답이 왔다. 임하룡 선배님도 비슷했다. 워낙 좋아하는 분인데 역할이 작아서 민망했지만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두 분에게 큰 빚을 졌다."
=같은 날 임권택 감독의 '화장'이 개봉한다. 두 거장 감독의 대결, 노년 혹은 중장년의 사랑 등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화장' 쪽도, 우리도 개봉을 두고 굉장히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이것이 서로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본다. 4월 영화 시장은 전통적으로 비수기 중 비수기다. 4월 영화 시장이 차갑기 때문에, 관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과열을 시킬 필요가 있다. 경쟁을 해서 서로 관객을 뺏어 오는 게 아니라, 뺏어 먹을 게 없다. 서로 영화 시장을 달구고,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성수기에는 같은 개봉일이 민감할 수 있지만, 비수기이다 보니 함께 연대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장수상회'를 보고 관객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사랑이 완성되는 시점은 결국 가족의 사랑이 아닐까 했다. 그런 사랑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또 세대와 사랑에 편견이 이 영화를 통해 해소되길 바란다.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한국영화의 최근 흐름이 다소 안타깝다.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가가 필요한데, 관객이 영화인들을 끌고 간다. 투자를 위해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관객에게만 맞춰가는 부분이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면 '그건 한국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예 싹을 키우지 못하는 거다. 영화인들이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야와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장수상회' 이전부터 준비하던 시나리오가 있다. 4월 하순에 시나리오가 나온다. 액션영화는 아니다. (웃음) 1900년대가 배경이 되는 영화다. 신명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jay@osen.co.kr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