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고아성이 조금씩 힘의 논리를 깨달으며 '한씨 왕조'의 왕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지난 31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 이하 풍문) 12회에서는 며느리 봄(고아성)을 친정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정호(유준상)과 연희(유호정)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동시에 봄(고아성)은 상류사회의 법칙을 배워 나갔다.
이날 정호와 연희는 사돈인 형식과 진애(윤복인)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정호는 형식에게 사업을, 연희는 진애에게 주택 수리를 권했다. 아나운서 지망생인 봄의 언니 누리(공승연)에겐 의상과 메이크업에 이용 가능한 현금카드를 선물했다. 정호와 연희는 새 족보를 선물해 그들을 뼈대 있는 집안으로 만들어줬고,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끔 적당히 자존심을 세워줬다.
사돈을 위하는 듯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는 정호와 연희, 그들의 그런 대접이 싫지는 않은 형식과 진애 모두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진애는 연희 앞에서 고장 난 변기에 대해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형식은 정호로 인해 자신을 깍듯이 대하는 정호의 비서 태우(이화룡)과 백고문(박진영)에게 젠체했다. 목적을 위해 속에 없는 말을 늘어놓는 정호와 연희도 웃음을 자아냈다.
그 가운데 변화를 보여준 인물은 봄이었다. 서민 집안의 당찬 소녀였던 봄은 서서히 한씨 집안에 물들어 갔다. 반가운 언니 누리와의 만남도 어색함이 감돌았다. 봄은 '만남은 차에서, 대화는 짧게'라는 연희의 지시를 철저히 따른 탓이었다. 예전 같지 않은 동생을 보며 "왕비가 왕비답게 되어 간다"던 누리였지만, 자신의 문자에 형식적으로 반응하는 봄에게 급기야 서운해 했다.
봄은 '갑질'도 배웠다. 봄은 이비서(서정연)의 약점을 눈치 챈 후 이를 이용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처음엔 이비서를 '이비서님'이라 부르며 어려워하던 봄이었지만, 이젠 '님'이란 호칭은 없었다. 정중하고 상냥한 말투였지만, 할말을 조목조목 하며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양새는 연희를 능가했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본 연희는 정호에게 봄에 대해 "힘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말했다.
'풍문'에서 서서히 한씨 집안을 장악하는 봄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봄에겐 신분 상승을 위한 간절함이나 주도면밀한 간사함은 없다. 빠른 학습능력과 타고난 영리함 덕분에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뿐이다. 가장 큰 강점은 강인함으로, 언젠가는 정호와 연희를 쥐락펴락할 터. 그런 봄을 통해 '풍문'은 무엇을 풍자하고, 또 쓴 웃음을 안길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풍문'은 매주 월,화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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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