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꽃할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터뷰]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4.02 06: 59

배우 박근형은 내내 인자한 미소였다. 한참 어린 찬열에게 '군'이란 호칭을 잊지 않았다. 신사인 동시에 남다른 재치를 자랑하는 입담꾼이었다. "'꽃할배'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출연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거침없이 일침하는가 하면, "윤여정은 듣기보다 말하기 좋아한다"며 상대역 윤여정과의 티격태격 에피소드로 웃음을 선사했다. 연기와 작품에 대해선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장수상회'(감독 강제규, 제작 빅피처)는 박근형의 주연작이다. 까칠한 70세 할아버지 성칠(박근형)이 꽃집 여인 금님(윤여정)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는다. 감정 표현이 서툰 성칠은 그를 위해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그 앞에서 괜스레 꺼내든다. 노년의 로맨스는 소년소녀의 그것처럼 풋풋하고 귀엽게 그려진다. 박근형의 오랜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배우로서 욕심을 드러내는 데 스스럼없었다. 그만큼 유연하다는 뜻이었다. 천생 배우인 박근형으로부터 영화 '장수상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6일 언론시사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텐데, 어떻게 봤나.
 
"그때 처음 봤는데 정신이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단지 영화가 힘있게 가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부드럽게 나아가는 걸 보면서 편집의 힘이 크다고 느꼈다. 강제규 감독님에게 고맙다고 했다. 편집의 힘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 영화 작업은 찍어 놓은 걸 이어 붙이는 정도였는데, 이제 다양한 기술들이 있는 것 같다. '장수상회'는 간접적인 표현 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를 한 것도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감동적인 드라마라고 느껴서다. 내적인 감동에 중점을 두고 연극처럼 한 신 한 신, 한 마디 한 마디 다 나눠서 어떤 감정으로 흘러가는가를 고민했다. 그게 딱딱할 수도 있는데 감독님이 잘 편집해주셨다. 다만 우리 상품이 좋다고 직접 말하는 게 몸에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 영화를 찍는 것보다 홍보가 더 힘들다. (웃음)"
=최근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 등으로 인해 각종 이벤트가 많을 텐데.
"나는 쭉 연극을 해왔다. 때문에 어느 한 인물을 표현하는 건 어렵지는 않다. 많은 장르를 했다. TV라는 속성상 비슷한 캐릭터가 많아 나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고심했다. 이번 '장수상회'에서는 감독님과 나의 첫 마디가 '머리'였다. 캐릭터를 위해 위해서 머리를 깎아야 겠다고 먼저 말했다. 그렇게 안 하면 나이 먹은 사람 표현도 어렵고, 너무 근사해 보일 것 같았다."
=캐릭터는 어떻게 다가갔나.
"성칠이 금님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은 나의 경험을 참고했다. 학창시절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주려고 간직하고 있다가, 손에만 쥐어주고 도망왔다. 그 여학생이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멀어졌지만, 마음에 담고 있었다. 동창생이어서 다시 만날 일이 있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 크리스마스카드를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60대에 나눴다. 나이가 먹어도 사랑을 느낀다. 짝사랑이든 첫사랑이든 그 감정이 10대나 70대나 같다고 생각한다. 표현에 대한 세대적인 차이는 있어도 사랑 그 자체는 고귀하다. 그래서 그런 형식을 빌어서 금님에게 가까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애들처럼 투정도 부리고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 감독님이 다행히 오케이(OK) 해주셨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처럼 행동할 수 있나.
 
"(영화처럼)여자 화장실 앞에서 노래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영화이기 때문에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감정이 연결된 거다. 현실에선 그렇게 못하지만, 영화 속이니까 가능하다. 감독님과 작가의 상상의 세계에 있는 거니까."
='꽃할배' 이후 로맨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실제론 엉터리다. (웃음) 박원숙씨를 비롯한 후배들이 '박씨 아저씨'라고 할 정도로, 허술한 사람이다. 성칠이란 역할을 표현할 때 연극할 때 배운 기승전결을 활용했다. 도입부와 전개 등 교과서적인 부분이다. 그런 걸 염두에 두어 두고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면, 갈등이 만났을 때 폭발할 수 있는 계산적인 부분이 있다. 실제론 어수룩하다."
=캐릭터가 주어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작품 전체를 해석한다. TV 드라마는 시놉시스가 나오지만 어디로 튈지 모른다. 캐릭터의 성격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려고 한다."
=그동안 TV 드라마를 자주했는데,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 와서 좋은 점이 있었나.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드라마 현장처럼 극본이 쪽지로 오진 않으니까, 시나리오를 머리에 담아두고 내내 생각할 수 있다. 현장에 있으면 모니터를 안 본다. 모니터를 보게 되면 내가 한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보는 사람 위주로 하게 된다. 그 역할에 들어가서 그 심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외형적인 표현을 할 우려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하니까, 연기력 부분에서 애매하다. 영화나 드라마나 다 움직이는 데서 출발했으니까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그런 표현을 많이 했으면 한다."
= '장수상회'여서 좋았던 점이 있나.
"학생 시절부터 연극을 했다. 신파에서 신극으로 넘어오고, 상업주의로 넘어가는 그 시절에 있었다. 그 시절을 보낸 사람이기에 연극에 대한 열정이 상당하다. 인물을 형성하는 과정들을 굉장히 귀하게 여겼다. 40일 동안 연습하면서 인물에 대한 연구가 하루에 8시간씩 이어졌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장르를 했다. 내게 내재돼 있는 낭만적인 면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영역으로 넘어와서, 자극적인 인물을 연기하다가 강제규 감독님이 이 작품을 권하기에 '이게 얼마만이냐' 했다. 그야말로 '바야흐로'였다. 젊었을 때나 멜로드라마를 했다. 앞으로 배우 생활에 굉장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젊음과 노년이 어우러져서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한다. 노배우라는 풍부한 자원들이 있다."
= 관객들이 '장수상회'를 보고 어떤 점을 느꼈으면 하나.
"웃기는 일이지만, 언론시사 때 울었다. 내가 하고 내가 울었다. (웃음) 이 영화가 가족이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경쟁 사회라 남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사회가 됐다.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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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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