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눈빛, 모두 심판 대상
사적인 카톡 한줄도 공적인 증거물이 되는, '나노 심판' 시대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이건 진짜 연예인들 숨도 쉬지 말라는 거 아닙니까."
이태임-예원의 갈등이 기사화되면서 공적 이슈가 되더니, 급기야 이 장면을 담아낸 영상까지 유출돼 잘잘못 따지기가 한창 이어지자, 많은 연예관계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들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누가 성격이 어떻네, 이태임 표정이 궁금하네, 말도 있었지만, 결론은 "정말 너무하다"였다.
결과적으로 동영상의 순작용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순 없다. 자극적인 찌라시와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하차 등의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태임은 훨씬 더 심한 욕을 했을 것이라고 급히 결론내려진 상태였다. 언론을 포함해서 말이다. 동영상은 당초 알려진 게 사실이 아니라는 팩트를 매우 쉽고 정확하게 알리는 역할을 해냈다. 이태임 개인적으로는 억울함을 덜었을 것이고, 언론은 정황 증거만 갖고 판단을 내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 해도, 영 찜찜한 건 사실이다. 진실을 알리는 데에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아마도 그 장면을 수차례 봤을 제작진은 이태임이 비난을 독차지할 때 가만히 있었고, 동영상 유출로 예원이 여론에 내몰렸을 때에도 뒤늦게 사과 한줄 했을 뿐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사태가 남긴 가장 확실한 것은 여자 연예인들의 히스테리가 얼마나 화끈한지가 아니다. 촬영 중 극히 사적으로 오간 대화 하나하나도 언제 어디든 (편집 혹은 누락을 거쳐)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전례다. 하물며 그 자료가 많은 사람들의 시원한 곳을 긁어주며 환호를 받아냈다. 영상을 유출시킨 누군가는 꽤 신나는 영웅심리에 취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방송에 안나갈 것을 전제하고 주고받은 대화가 하나하나 까발려지고, 또 이게 당연시되고 있는 이 상황은 분명 문제다. 이건 생방송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생방송 중에 두 사람이 그랬다면, 그건 또 완전히 다른 문제일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녹화시간은 그야말로 하루종일이다.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해도, 이 부분은 편집이 될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촬영 현장에서 출연자간, 출연자와 제작진간 갈등 폭발이 일어나곤 한다. 예능 출연자 간에 '쌍욕'을 하며 싸운다거나, 배우와 감독이 언성을 높이다 촬영을 접거나, 리허설 중 아이돌 멤버끼리 치고 받는 일은 꽤 잦다. 그때마다 영상이 유출된다면, 장담컨대 이태임-예원 사건은 맛보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이건 백번 양보해 '직장'에서 일어난 일이니 몸가짐을 좀 더 잘했어야지, 하고 꾸짖을 수 있다고 치자. 어찌됐든 카메라가 돌고 있는 곳에선 조심했어야 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나노 심판' 시대다. 작은 표정, 말투 하나하나가 모두 심판대에 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가장 사적인 대화인 지인과의 카톡 메시지마저 샅샅이 공개된다. 물론 카톡 메시지는 가장 사적이므로, 가장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국민이 휴대폰을 들여다볼 권리는 없다. 첨예한 법적인 문제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면, 판사만 보면 된다. 전국민이 카톡 메시지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여론 재판을 한다면, 그래서 실제 재판이 진행되기도 전에 사형수가 정해진다면, 법원은 왜 필요한가.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봐서 우리 국민들이 얻은 건 또 뭔가. '로맨틱, 성공적', '회장님 굿모닝' 등의 유행어를 얻었을 뿐이다. 재밌긴 했다. 그래서 실컷 비웃어주고, 욕하고, 비아냥댔는데, 이후엔 뭐가 남았을까. 우리는 이병헌 사건을, 클라라 사건을, 김현중 사건을, 정말 실체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는가.
클라라가 회장님한테 '굿모닝'이라고 인사했다는 사실까지, 김현중이 비행기에 타서 '그녀'의 화장품을 고심한다는 사실까지, 그런 '나노' 정보까지 우리에게 꼭 필요했을까.
한 가수는 "이제 친구들에게 보내는 카톡 마저도 신경을 쓰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오늘의 사소한 카톡이, 이후에 치명적인 비난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비단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의 카톡 메시지도 수시로 울려대고 있고, CCTV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ri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