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달환을 처음 본 건 2001년 여름, 영화 ‘두사부일체’를 찍던 수원공고에서였다. 주연 배우를 취재하러 갔다가 우연히 합석하게 된 그는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싹싹하고 예의 바른 단역 배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기자님 계속 볼 수 있을까요”라며 수줍게 전화번호를 건넨 게 벌써 14년 전 일이다.
▲ 50만원 커플 통장으로 데이트 비용 분담
지금은 쌍천만 감독이 된 윤제균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두사부일체’에서 합격점을 받은 조달환은 감독의 눈에 들었는지 차기작 ‘색즉시공’에서 확실한 자기 분량을 챙기며 배우로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어느덧 예비역이 됐고 생뚱맞은 탁구로 인지도를 올리는가 싶더니, 지난 연말엔 첫 주연한 ‘추한사랑’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상도 받았다. 좋은 일 역시 어깨동무하며 오는 걸까. 최근 상투까지 틀며 겹경사를 맞았다.
네팔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와 이태원에서 커피 한 잔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둘만의 착각이겠지만 “그대로네. 여전하다”며 덕담을 나눴고, 조달환은 “유부남 되니 어깨가 무겁다”며 손으로 자신의 한쪽 어깨를 토닥이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인생 반쪽은 어떻게 만났나.
“친한 사진작가 형님이 어느 날 ‘달환아 네가 찾던 이상형이 여기 있으니 빨리 와라’고 전화했다. 가보니 직감적으로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하게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참한 분이 앉아계셨다.”
-검색해보니 교제 기간은 1년 7개월 정도던데.
“맞다. 구김살 없고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결혼이나 소개팅 할 때 흔히 상대방 명함이나 연봉, 집안, 미모 같은 조건을 따지는데 그건 언제나 상실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저흰 좀 달랐다. 둘 다 상대 덕 보겠다는 생각 없이 저 사람의 결핍까지 내가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둘 다 어릴 때부터 홀어머니 모시고 산 공통점도 있었고.”
-그래도 어느 정도 조건을 보게 되지 않나.
“전혀. 15년 된 중고 마티즈 타고 데이트 실컷 했고 반지나 백, 구두 한 켤레 못 사줬다. 매달 각자 25만원씩 입금해 커플 통장도 만들었다. 성탄절에도 손잡고 도봉산 갔으니까 말 다했지. 제주도 올레길도 자주 갔는데 같이 가서도 따로 걸었다. 서로에게 너무 잘 해주지 말자, 때론 남같이 덤덤하게 대하자가 저희들 모토였다. 그 친구가 좀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인데 저와 관심사, 취미가 같아 만날 때마다 방언 터지 듯 대화가 멈추질 않아 서로 신기했다.”
-한때 서울 등지고 제주에서 살려고 했다던데.
“이효리씨 내려오기 전부터 제주도에서 4~5년 살며 정착을 계획했다.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실망, 분노, 무기력으로 힘들던 때였다. 올레 길 찾는 방랑객들과 만나며 위안과 에너지를 얻기도 했다. 막연히 서울은 잿빛, 삭막한 곳인 줄만 알았는데 게스트하우스 하는 형님 한 분이 ‘임마 정신 차려. 서울도 네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 제주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뚤 빼뚤 왼손으로 쓴 청첩장도 화제가 됐던데.
“뭐든 표현하지 않으면 허사이지 않나. 제 진심을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림과 캘리그래퍼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동안 영화사 로고나 식당 간판 글씨 써달라는 지인들이 꽤 있었다. 마동석 형님도 그 중 한 명이다.”
▲ 기교 부리기 시작하면 배우 인생 끝
-신혼집은.
“요즘 미친 전세라고들 하지 않나. 30년 모시고 산 어머니께 석계동에 조그만 집 하나 얻어드렸고 저희도 그 근처에 월셋집 하나 구했다. 내 뜻을 따라준 아내한테 고맙다.”
-신혼여행을 네팔로 간 이유는.
“프랑스 몽블랑, 울릉도도 생각해봤는데 둘 다 산을 좋아해 네팔로 정했다. 마침 그곳에서 학교 지어주는 일 하는 작가 형님도 계시고 해서. ‘해적’ 찍었던 이석훈 감독의 ‘히말라야’에도 잠깐 출연하는데 네팔에서 촬영팀과 마주칠 뻔했다.”
-오달수 박철민이 평생 함께 하고픈 후배로 점찍었다는데.
“영광이다. 오히려 제가 힘닿는 데까지 모시고 싶은 선배님들이고 오정세 형과도 굉장히 가깝게 지낸다. KBS 연기대상 받을 때 정세 형과 같은 단막극 부문 후보였는데 제가 상을 받아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정세 형이 전혀 질투 안 하시고 ‘받을 만 했다’며 어깨 두드려 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배우로서 최종 꿈은.
“가식 떨지 말고 아는 척, 멋진 척 기교 부리지 않는 거다. 그냥 지금처럼 조달환으로 성실하게 가자는 게 목표다. 글씨도 멋 부리기 시작하면서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나. 오달수 선배처럼 대체되지 않는 유니크 한 배우로 살아남고 싶다.”
-연 평균 4편 출연, 다작이 걱정되진 않나.
“올해도 개봉 앞둔 영화만 뷰티 인 사이드, 히말라야, 조선마술사, 더 폰 등이 있는데 아직까진 불러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간다. 특히 이석훈 감독님은 매 작품마다 저를 써주신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런 빚 진 많은 분들께 하루 빨리 도움이 되는 단단한 배우로 성장하는 거다.”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얘기인가?
“스타가 아니라 소문난 장작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작품이라는 큰 불덩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모두 태워 완전 연소되는 그런 마른 장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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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환 소속사 제공